우리 면에는 4개의 국민학교가 있었고 중학교는 하나였다
6학년 2학기면 우리는 중학교 반편성시험을 대비해야 했다
시골이라도 경쟁은 있었다
면소재지 A국민학교는 자존심 때문에 1등을 해야했고
나머지는 A를 이기고 싶은 욕심에 1등을 배출하고 싶어했다
우리 때는 A학교 김이 1등 후보였다
군 주최 경시대회에서 김은 늘 입상을 해왔다
그래도 나머지 3개 학교의 각 1등들도 후보로서 손색이 없었다
더욱이 A다음으로 컸던 우리 학교는 내심 1등에 대한 기대가 컸다
우리 학교에서는 한이 1등 재목이었다
6년 내내 거의 1등을 도맡아하던 아이였다
한에 치여 만년 2위던 나는 3위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와 한 외에 후보로 꼽을 만한 친구는 없었다
6학년은 1개반이었고
5등 뒤로는 순위가 어떤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시험 날 아침에 꼴을 베고 오지 않았다면,
아침을 굶었다면,
1등 옆에 앉으면
순위가 바뀌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명예를 건 입시가 본격화되면서
나와 한은 수업 후 남아 특강도 받았다
소문에 A의 김은 읍내로 나가 과외를 받는다고 했다
나머지 두 학교의 에이스들도 학교의 보호를 받으며 공부한다고 했다
한 달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시험은 끝났다
결과가 발표되자 네 개 학교는 물론 면 전체가 들썩였다
1등은 우리학교에서 나왔다
한도 나도 아니었다
홍이 1등을 차지했다
홍은 6년 동안 3위 안에도 들어본 적이 없던 친구였다
그래서 '1등을 했다'가 아니라 '차지했다'이다
김, 한 그리고 나, 아니 거의 모든 학생들이 1등을 홍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홍의 전략은 단순했다
'자전거'였다
홍의 엄마는 3킬로미터 떨어진 중학교 통학을 위해 홍에게 자전거를 경품으로 걸었다
당시 15만원은 줘야 좋은 자전거를 살 수 있었다
홍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
그때 우리는 4~5학년 때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으나 홍은 아니었다
홍은 자전거를 갖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다고 한다
공부에 안 썼을 뿐이지 홍의 머리는 충분히 좋았던 것이었다
1등에게 눈길이 쏠리는 건 당연했다
암행어사 출두처럼 개학식에서 1등 홍에 걸린 눈길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홍은 그런 것에 전혀 상관 안 하듯 덤덤했다
홍의 눈길은 반짝이는 자전거에만 머물렀다
홍은 개학식 때 단상에 올라 학년대표 선서도 하고
개학 이후로도 몇 차례 교무실에 불려가 1학년 대표로서의 역할을 주문받았다
그러나 홍에 대한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었다
홍이 너무도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홍은 자전거와 기름 때 묻은 공구에만 관심을 두었다
다시 홍은 국민학교 때처럼 조용한,
자기만의 학교생활을 보냈다
물론 동기가 없어졌기에 성적도 예전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친구 사귀는 것에 신났던 우리들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다
하교 종이 치면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바빴고
집으로 사라지면 그 후엔 보이지 않았다
3학년이 되자 우리는 다시 입시모드로 바뀌었다
공부 잘 하는 애들은 이웃 큰 도시로 갔고
중간 성적이나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은 읍내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읍내 고등학교는 두 개가 있었는데
인문계와 농고였다
홍은 읍내 인문계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번 입시에는 아무 것도 걸 수 없었다
홍은 인문계에 갔지만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오후면 학교를 나와서 농고로 갔고
중학교 친구들과 학교 뒷산에 올랐다
셋은 나란히 누워
구름보다 큰 연기를 피워올리고
하늘보다 큰 꿈을 꾸었다
꿈은 꿈일 뿐,
그들은 등허리를 찌르는 돌부리에 이내 현실을 깨닫고
막걸리를 먹다 내려왔다
농고 애들은 대개 오토바이를 탔다
집에서 읍내까지 버스로 50분, 오토바이로는 20분이었다
효율을 떠나 고등학생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
납부금도 겨우 내던 홍이었기에 홍은 친구 뒷자리에 얻어 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홍은 늘 웃고 다녔고
누구보다 학교, 아니 집밖의 생활을 즐겼다
나는 이웃 도시로 고등학교를 갔다
기숙사에서 지내다가 한 달에 한 번 집에 왔다
우리집을 가려면 홍의 집을 지나쳐야 했다
지나가면서 불러보면 늘 집에 없었다
그러다가 저녁에 친구들과 모이면
홍은 늦게서야 농고 애들과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공부는 손을 놓았고 손재주가 있으니 미용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 친구들은 두어 달에 한 번씩 만나서 놀았고
홍은 서너 달에 한 번씩 등장했다
이런 만남도 고3이 되면서는 멈췄다
대학으로 취업으로 거의 모든 친구들이 고향을 떠났다
홍은 고향에 남았다
진학도 취업도 아니었다
어머니 곁에서 농사를 도와준다고 했지만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대신 오토바이를 탔다
타지로 떠난 농고 친구에게 오토바이를 십만원에 샀다
새 자전거를 손에 넣었던 중딩 때처럼
헌 오토바이지만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탔다
홍의 기분만큼 오토바이 안장은 더 높아졌고
아슬아슬하게 곡예하는 홍의 운전은 홍에게 또 다른 공간이 되는 듯 했다
친구들이 사라진 텅 빈 고향에서 홍은 그렇게 자신이 채우는 새로운 공간을 즐겼다
대학에서 첫 방학을 맞은 나는 고등학교를 나온 도시로 돌아왔다
고등학교 동창과 노가다 알바를 하기 위해서였다
첫날 우리는 친구 자취방에서 새벽밥을 먹고 인력사무소에 나갔는데
아침밥을 다시 자취방에서 먹었다
누가봐도 멸치급인 나와 누가봐도 초등학생만한 내 친구는 누구의 부름도 받지 못했다
둘째날도 새벽밥 먹고 나갔지만 다시 아침에 돌아왔다
밥 먹을 기분도 아니라 우린 자버렸다
셋째날 우린 드디어 현장에 나갔다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자재를 치우는 일이었는데
하루 일 하고 이틀을 아파서 누워있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이토록 험난하구나라고 느끼고
뜨거운 자취방에서 타는 목마름을 견디며 속을 태웠다
그래도 다시 우린 이틀을 더 일했다
삼일 일하니 이제 몸이 익숙하게 움직였고
이 정도면 한 달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렇지만 토요일이었기에 나는 일 끝나자 마자 고향으로 넘어갔다
8월에 고향친구들과 바다여행을 가기로 해서 모임이 있었다
십여 명이 모여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을 때
홍에게서 전화가 왔다
읍내에 있는데 아홉시까지 오겠다는 전갈이었다
그때 오랜만에 홍의 소식을 들었는데
홍은 직장 없이 집과 읍내를 오토바이로 오가며 지낸다고 했다
읍내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뭘 한다는 얘기도 있고
친구들과는 놀 뿐이고 집 농사만 거든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홍을 기다리며 홍의 머리가 아까우니 서울 가서 뭐라도 해보자고 말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홉시에 온다는 홍은 시곗바늘이 훌쩍 넘어섰는데도 오지 않았다
열시가 거의 다 될 무렵 술집으로 경찰이 들어왔다
경찰은 술집 100미터 앞에서 홍이 사고가 났다고 전했다
홍은 읍내에서 다른 친구들과 있었다
9시에 가까워지자 홍은 시골친구들에게 가야한다며 일어섰다
읍내 친구들이 서운하게 도중에 일어서냐고 핀잔을 줬지만
니들보다 시골친구들이 더 좋다고 일갈하고 일어섰다고 한다
홍은 그리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쇼바가 높은 오토바이를 타고
한여름 밤의 더위를 날리려 헬멧도 쓰지 않고
바다를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 채 달려왔을 것이다
우리 마을 표지판을 지나고
직선으로 쭉 뻗은 신작로를 달리면서
소실점 끝에 있는 술집을 보면서
저 반짝이는 불빛에 친구들이 있을 것을 기대하며
조금 속도를 냈을 수도 있다
술집의 불빛이 달처럼 커졌을 때
마음은 더 급해졌겠고
핸들 잡은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갔겠고
정직한 엔진은 속도를 높였겠다
마후라에서는 밤을 찢는 소음이 일었고
너는 잠시 졸음에 사로잡혔고
갑자기 나타난 가로등 불빛은 네 눈을 가렸다
길은 사라졌고
너는 계속 내달렸고
쇼바가 높았던 오토바이는 가로등을 들이박고 날아갔다
소실점이 사라졌다
우린 술집을 나와 현장에 가서 처참한 잔해를 확인 후 오열했다
택시를 불러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을 찾아갔으나 홍을 만날 수는 없었다
홍은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후였다
허망한 죽음에 장례는 빠르게 진행됐다
삶도 죽음도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는데
홍의 장례는 빨리 흘러갔다
허망하다는 평가에 동정과 원망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화장을 하고 지리산에 올랐다
우리 친구들은 친구가 백만원 주고 산 중고 봉고차를 타고 올랐다
홍은 오토바이를 타고 가끔 성삼재에 올랐다고 한다
성삼재에 오르면 우리 고향이 보인다
홍은 집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우리와 이별했다
어머님이 분골을 몇 줌 뿌리더니
우리에게 유골함을 넘겼다
친구들을 좋아했던 아들이니 친구들이 같이 보내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우리는 하얀 장갑을 끼고 한 명씩 한 줌 쥐어 뿌렸다
바람이 산을 타고 올라와 뿌린 분골이 다시 우리를 덮치기도 했다
그걸 보고 홍이 가기 싫어한다고 한 친구가 오열했다
내 차례가 됐다
유골함을 받고 반쯤 남은 분골을 한 줌 쥐었다
따뜻했다
서늘하고 푸석할 것만 같았던 분골이
따뜻하고 부드러워 당황스러웠다
그 온기에 소름이 돋았다
친구에 닿고서 소름 돋는 내 자신이 경멸스러웠다
그 이상한 기분은 산을 내려갈 때까지 나를 짓눌렀다
내려갈 때 나는 조수석에 탔다
터덜터덜 거친 기계음을 내는 봉고는 십여명의 절망을 달래는 듯 했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꽤 가파르다
올라갈 때는 차가 힘을 잃어 미끄러질까 걱정했다
내려올 때는 차가 무게를 못 이겨 내달릴까 걱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덩치는 크지만 힘이 없던 봉고는
열 명의 덩치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브레이크가 차를 이기지 못해 미끄러졌다
운전하는 친구는 핸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커브를 아슬하게 돌았고 브레이크를 달래며 차를 제동시켰다
하지만 눈 앞의 엔진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바로 앞에서 연기를 맞는 나는 공포를 느꼈다
운전하는 놈을 보니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손잡이를 부여잡고 의자에 눕다싶이 자세를 취했다
길을 벗어나는 대로 천길 낭떠러지행이다
아우성이 차를 터트릴 정도로 커질 때
차는 겨우 모래로 된 갓길에 멈출 수 있었다
"휴... 죽을 뻔 했네."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내뱉은 첫 마디
두 다리를 땅에 붙여서 안도해서 한 말
친구를 하늘로 보내고 내뱉은 말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그날 우린 다시 그 술집에 가서 친구를 추모했다
친구가 오기로 한 그 술집에서
친구가 들어올 것 같은 문을 마주보며
친구와 함께했던 나날을 추억하며
많이도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사고현장으로 가서
한켠에 나자빠져있던 친구의 오토바이에 애먼 분풀이를 했다
누군가가 다시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겠다고 했고
또 누구는 우리 중에 오토바이를 타는 놈이 있다면 다리몽뎅이를 분질러 놓겠다 엄포를 놓았으며
또 누군가는 내일 당장 오토바이 팔러 가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스무살 여름이 쓸쓸히 저물었다
한 달 뒤 나는 학교 때문에 다시 떠나야 했다
겸사겸사 다시 술집에 모였는데 두 놈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스무살은 그럴 때다
단순하게 내키는대로
불타면서도 겁 많은
여린 대나무같은 사내들이었다
그 대나무 하나만 어린 나무로 하늘에 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