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음(知音)들의 놀이터로 원정을
오후 서너 시가 되면 집 근처 놀이터에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하나둘 나타난다. 왁자지껄 소리를 지르며 뛰고 구르고 놀이기구를 타며 논다. 색색의 옷을 입은 꼬마들이 놀이에 한창인 동안 부모들은 부모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어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왔고, 어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다. 이 시간에 아빠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궁금해지다가, 안될 건 또 뭔가 싶다.
놀이터 안에 놀고 있는 아이들 중 어느 하나도 즐겁지 않은 아이가 없다. 단순히 즐거워하는 것을 넘어 신이 나있고, 흥분해 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는가 보다.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았을 텐데 같이 놀기 위해 지켜야 하는 나름의 규칙을 정하고 알아서 잘 지킨다. 티격태격하다가도 또다시 같이 놀기 위해 당연한 듯 화해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투닥거리다가도 다시 깔깔거린다.
혼자만 즐거운 건 없다. 옆의 친구가 즐거우면 나도 즐겁고, 같이 노는 것이 혼자 노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다. 가르치지 않아도 동네 놀이터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재미있게 노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간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보면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 입장 자격에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장 2절)
저 작은 아이들은 이미 천국에 있다. 저들의 세계야말로 진짜 유토피아다.
어른이 되어도 논다는 건 참 좋다. 무얼 하든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대로, 그러고 싶은 만큼, 내 자유대로 할 수 있다는 건 정말이지 큰 즐거움이다. 잘하고 말고 차원의 평가가 필요하지 않고, 판단받을 필요도 없는 일이다. 노는 것엔 달성해야 하는 성과나 목표치가 없기 때문이다. 결과를 생산성의 잣대로 계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느낌 가는 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그걸로 된 것이다.
놀기의 효능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고 해도 일단 놀 때만큼 집중력이 높아지는 때가 없는 것을 보면 놀기엔 분명히 무언가 있다.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몸을 움직이는 신체활동과도 관련이 있으니 건강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분명하다. 혼자 잘 놀면 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기술이 늘고, 친구들과 잘 놀면 사회성이 길러진다. 여러모로 좋은 거다.
인생이 노는 일이면 좋겠다. 잘 노는 삶과 잘 사는 삶이 동의어이면 좋겠다.
사전에서 '놀다'의 뜻을 찾아보면 크게 세 가지가 나온다.
놀다 [놀ː다]
1.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
2. 직업이나 일정히 하는 일이 없이 지내다.
3. 어떤 일을 하다가 일정한 동안을 쉬다.
(네이버 국어사전)
흥미로운 건, 같은 단어인데도 어린아이들에게 적용할 때는 대개 1번의 의미로 이해하고, 성인들에게는 2번이나 3번의 의미를 적용한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아이들에게 논다는 것은 즐거운 개념이 되었고, 어른들에게는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포함하고 있어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동사 표현이 된 듯하다.
어느 정도의 기간을 '오랜 기간'이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부정적이고 다소 부담스러운 동사를 지난 5개월 여 동안 몸소 실천했다. 다행히도 놀기를 그만두기로 애초에 계획해 둔 시점과 정서상 만족치가 최고에 이른 시점이 잘 맞아떨어져 놀기를 마친 지금 더 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하튼 실컷 잘 놀다 왔다.
뜬 눈으로 지새우며 잠들지 못하던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너무 많이 잘 잔다. 책장을 한 장도 읽어 넘기지 못할 만큼 흐트러졌던 집중력도 제법 돌아왔다. 그동안 책을 읽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닥치는 대로 읽어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화불량과 미슥거림에 시달리던 위장은 배고픔이 한 끼도 거르지 않고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방문하시는 덕분에 면적을 확장해 대느라 바쁘다. 먹고 마시는 일이 다시 즐거워졌고 자동적으로 사람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숨 쉬는 것 자체가 불편하고 버거울 때마다 사람들을 피해야 했고, 다른 이들의 처지까지 신경 쓸 이유나 여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젠 별 말 않고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다가 맞장구까지 쳐주는 나를 새삼 발견하고 피식 웃어 보일 만큼 상태가 나아졌다. 행복 호르몬이 충전되었다. 잘 놀고 온 덕분이다.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놀이 후에 돌아가야만 하는 집이 있기에 더 소중하다. 밥 먹으러 집에 돌아오라고 엄마가 부르기라도 하면 못 들은 척하거나, 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며 울고 불고 한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 놀 수 없기라도 한 것처럼 미련 없이 논다. 그러다 해가 져 어두컴컴해진 탓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집에 가야 할 때에도, 아쉬움에 발걸음을 느릿느릿 옮기면서까지 멈추지 않고 놀며 간다. 그리고 내일 다시 만나 또 같이 놀 것을 기대하며 즐거움을 잠시 접어둔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인생의 청사진을 발견한다. 내 삶이 이러했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이 놀이터 같아서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허울 없이 친구가 되고, 함께 어울려 신나게 노는 상상을 한다. 뛰고, 구르고,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고, 소리 지르고 환호하며 같이 노는 즐거움을 계속 발견해내면 좋겠다. 연신 깔깔대며 같이 논다는 것 자체로 즐겁고 행복해하는 벗들이 한가득 있으면 좋겠다. 부모가 누구인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어떤 집에 사는지, 부잣집 아이인지 형편이 여의치 않은 집 아이인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몇 살인지 상관없이 같이 노는 게 즐거운 걸로 친구 할 수 있는 (어른)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다행히 지금까지 같이 잘 노는 아이들을 제법 사귀었다. 함께 있으면 재밌게 잘 논다. 같이 놀면 놀수록 재미있어져서 자꾸 만나고 또 만난다.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애들도 기회를 만들어 어떻게든 만나서 논다.
그러고 보면 이번 여정은 예전에 같이 놀던 동무들 찬스를 적절히 활용해 가능했다. 바다 건너 여기저기 퍼져 살고 있는 지음(知音)들의 놀이터로 해외 원정을 다녀온 셈이다. 감사하게도 잘 사귄 착한 친구들 덕분에 큰 부담 없이 안전하게 잘 지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을 보는 게 그냥 좋아서, 함께 놀고 싶어서, 다른 기대 없이 떠난 것이 사실은 진짜 재밌었다.
잘 노는 건 별 게 아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된다. 함께 시간을 보내고 어울리며 물들면 된다.
놀고 오길 정말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