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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찻집 주인장 Mar 28. 2020

[안녕, 바르셀로나] 천진난만한 햇살이 춤추는 곳

안토니 가우디를 만나다 (2) 구엘 공원

스페인은 햇살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경쾌한 음조로 'Hola!'를 외치는 스페인 사람들의 유쾌한 기상은 아마도 화창한 날씨에서 비롯되었을 것 같다. 2019년 2월, 스페인의 햇살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행하기에 딱 적당했다.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의 기념품 가게에서


스페인은 애초 여행 계획에 없었다. 런던 숙소에서 같은 방에 묵었던 손님이 스페인을 여행하다 왔다며 들려준 이야기에 즉흥적으로 바르셀로나에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가우디의 나라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볕이 따뜻하다기에 마음에 들었다. 마침 무엇보다 광합성이 필요했으니까.


바르셀로나 람브라스 거리 부근의 구엘(Güell) 저택 골목


낮시간 동안 바르셀로나의 햇살은 눈이 시릴 만큼 환하고 눈 부시다. 해가 비치는 곳은 어디나 밝고 따뜻하다. 덕분에 건물의 윤곽이나 색깔이 훤히 잘 드러나 보인다. 빛이 반사되며 드러내는 건물과 조형물의 색감들은 바닷가의 모래알이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것처럼 영롱하게 반짝인다.

 


구엘 공원 입구에 자리한 관리인의 집, 'Casa del Guarda'


안토니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 (Güell)' 백작의 이름이 붙여진 구엘 공원은 스페인의 햇살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도마뱀 분수와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 모두 정오의 뜨거운 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원래 이곳은 공원이 아니라 귀족들을 위한 고급 주택 단지로 지어졌는데 분양에 실패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바르셀로나 시의회가 매입하여 현재까지 공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래 취지대로 분양에 성공하지 못한 것이 가우디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바르셀로나의 후손과 관광객들에게는 천만다행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양이 성공적이었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기도 한 이곳을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즐기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반짝이는 것들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구엘공원의 자연 광장에 들어서며 받은 첫 느낌이었다. 한없이 환한 정오의 햇살 아래 가우디의 손길로 꾸며진 구엘 공원의 벤치는 마치 총천연색 파도 같았다. 과자로 지어진 헨델과 그레텔의 집이 연상되기도 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오르기도 하는 건, 아마도 타일로 꾸며진 건물과 벤치가 자연과 천연덕스럽게 어우러져 넘실대는 듯한 모습이 재미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은 천진난만하다.


구엘(Güell) 공원 내 자연광장의 벤치


구엘(Güell) 공원 내 자연광장의 벤치 타일 장식


완전한 사각 모양의 타일을 작은 조각들로 깨뜨려 해체하였다가, 깨진 타일 조각들을 다시 조합하여 독창적인 작품으로 재창조한 가우디의 예술성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화려한 타일의 패턴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면서 인위적임에도 거북스럽지 않았다.


구엘(Güell) 공원 내 자연광장의 벤치 타일 장식


흥겨웠다. 자연과 인간의 조형물이 흥겹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덩달아 경쾌한 마음이 든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타일로 장식된 벤치에 앉아 쉼을 청하고, 왁자지껄 대화를 나눈다. 강렬한 햇살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지긴 해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 공간이 주는 즐거움 자체로 즐거워 보인다. 장소와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한다.  


구엘(Güell) 공원 내 자연광장의 벤치 타일 장식

이곳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휴식과 즐거움을 주었을까. 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흥을 선사할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창조해 낸 가우디가 사뭇 부러워진다.

   

처음 주택 단지를 설계하고, 벤치를 제작하면서 가우디 자신이 이미 흥이 넘치고, 즐거운 마음이었으리라고 상상해 본다. 누군가의 작품이나 창작물은 최종 결과물로 그 사람을 드러내고, 그 결과물이란 결국, 과정 하나하나가 축적된 산물인지라, 과정 또한 결과물에 묻어나게 마련인데, 가우디의 벤치에는 그 과정과 가우디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무나 가우디스럽다.

구엘(Güell) 공원의 벽면 타일 장식


공원 벽면의 타일 장식은 햇살이 반사되어 원래 가진 빛보다 더 반짝거린다. 문양이 있는 타일의 가운데를 오목하게 처리해서 그런지 입체감이 느껴진다.  벽면이 물결친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왠지 가우디는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예술가였을 것만 같다. 그의 건축물과 작품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바이브(vibe)는 바르셀로나의 경쾌한 분위기와 매우 닮아 있다.  


구엘(Güell) 공원의 벽면 타일 장식


대부분 사람과의 대화, 만남을 통해서 힘을 얻지만, 때로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감동을 주는 작품을 대면할 때, 밝은 기운을 전달받기도 하고, 마음이 드넓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나 자신에게로만 갇혀 있던 시선이 밖을 향하여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마주 보는 작품, 사물, 혹은 공간에 대한 추억이 생겨나고, 무언의 사고가 확장되고, 시야가 새로워진다.


여행이 선사하는 큰 선물이자 도전이다. 내가 속하였다가 잠시 떠나온 곳의 익숙한 것들과는 다른, 이방의 것들이 내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말을 걸어올 때, 그 이질적인 느낌과 여운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더 두고 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다만, 오롯이 내 몫이다.  


가우디환상과 열정이 담긴 이곳에 대한 여운을 두고두고 추억하려 한다. 말로는  표현할  없는  공간의 내음과 공기와 기운을 마음에 고이 담아두고, 가끔씩 기억을 열어 꺼내보려고 한다. 바르셀로나의 강렬한 햇살이 그리울 때마다, 사람 냄새나는 왁자지껄한 광장의 소음이 듣고 싶어  때마다 가우디의 선물을 자꾸만 꺼내  것만 같다.


자연 광장을 떠받치고 있는 다주실(기둥이 많이 세워진 홀)로 주택 단지의 시장(市場) 공간




2020년 3월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스페인의 상황이 하루 속히 해결되어 다시 경쾌한 스페인의 분위기를 되찾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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