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가우디를 만나다 (1) 사그라다 파밀리아
런던에서 비행기로 2시간 반 여 거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다녀왔다. 원래 계획에 없던 여정이라 잠시 망설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
5박 6일을 보내고 런던으로 다시 돌아온 뒤, 스페인 여정을 더 길게 잡지 않았던 것이 후회된다. 약간의 여운을 남겨두고 왔으니 언젠가 다시 찾게 되겠지 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다음번 여행의 핑곗거리를 만들어 두기로 한다.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1852-1926).
바르셀로나를 찾은 단 하나의 이유였다.
스페인이 사랑하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 그가 설계하고, 건축한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가족 성당)를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6일의 짧은 여정은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겠지만, '세계적 거장'의 걸작을 면전에서 영접한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충분했다.
가우디는 당시 진행되던 성당 공사의 총감독을 갑자기 맡게 되었는데, 원래 진행되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만 30세가 되던 1883년에 공사에 착수했다. 1926년, 74세에 갑자기 트램 사고를 당해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가우디는 40년 이상 성당 건축에만 매진했다. 노년에는 성당 내부에 숙소를 마련해두고 몰두했을 만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모든 것을 걸고 전념했던 건축물이었다. 트램 사고의 후유증으로 가우디는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지만, 공사는 세계적 수준의 건축가, 조각가들의 손을 통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계속 건축 중이다.
(주(註). 파사드 : 건물의 얼굴이 되는 정면, 혹은 건물의 외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주요 요인이 되는 부분)
성당 내부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사실적으로 정교하게 표현된 꽃과 식물, 곤충들로 장식된 성당의 출입구는 철조각으로 만들어진 철문이었다. 활짝 젖혀진 문을 지나며 거대한 숲으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혈(心血)을 기울인다는 말이 진짜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성당의 내부를 둘러보고 난 뒤, 확신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가 자기 심장의 피를 쏟아부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가우디의 건축은 그가 빛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의 건축에 적용했는지를 알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었다. 태양이 이동하는 방향에 따라 성당의 내부는 사계(四季)를 넘나들었고, 무한히 빛을 내리쪼이는 하늘의 투명한 빛을 그대로 받아 머금은 이곳은 순백의 나무가 자라는 숲 속의 성스러운 둥지가 되기도 했다. 공간 가득히 빛이 머무르기에 마치 어미의 자궁 같은 따사로움마저 품고 있었다.
예수의 탄생과 생명을 표현한 성당의 동쪽 파사드 내부는 푸른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표현한 성당의 서쪽 파사드 내부는 노란색과 붉은색 계열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투과하여 내부로 스며드는 빛감에, 황홀하다는 말은 이런 광경을 두고 쓰는 표현인 것 같았다.
스산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영국을 잠시 떠나, 완연한 봄기운으로 따스함에 물들고 있는 바르셀로나에 잠시나마 머무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을 받아야 했다. 내 삶의 겨울 같은 시즌이 지나고 봄이 오고 있다는 걸 암시하기라도 하듯,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찬란하게 밝혀주고 있는 빛은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됐다.
빛이 쏟아지는 성당의 내부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고 있으니, 한동안 흑백인 것만 같았던 기억들이 비로소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색의 질감과 온도로 되살아난다.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로는 이 감상을 다 담아내지 못한다. 성스럽고 경이로운 하늘의 빛과 인간의 손이 빚어낸 순전한 구조물이 환하게 어우러져 이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를 은혜하고 있는 듯하다.
The Temple of the Sagrada Failia will be bright. Religious emotion will not come from the fear of shadows only just penetrated by a ray of light, but will be born from the bright mystery of the harmony of light, from the sense of wellbeing that comes from sunlight filtering through a tree with the thousands of nuances of its leaves. It will, thus, be the Temple of harmonious light. Everything must be designed to highlight the architectural forms, to give a perfect vision of the symbolic decoration throughout the inside of the Basilica and, therefore, reach the greatest spiritual efficiency.
- Antoni Gaudi -
(주(註). 글쓴이 번역본 - 의역되었으니 내용을 파악하는데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전은 환할 것이다. 신앙적인 감정은 빛줄기 하나로도 관통되고 마는 어둠에 대한 두려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빛의 조화가 보여주는 환한 신비로 인해 생겨나고, 수천의 색감을 지닌 이파리들이 달린 나무에 스며드는 햇살이 주는 행복감으로부터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조화로운 빛을 보여주는 성전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건축상의 형태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설계되어야 하고, 성당 내부의 곳곳에 있는 상징적인 장식에 완벽한 시야를 줄 수 있도록 도안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최고치의 성스러운 효과를 드러내야 한다." - 안토니 가우디 -
안토니 가우디의 고결한 마음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는 분명 자신의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처럼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지하 무덤에 고이 잠들어 있는 20세기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그의 걸작 덕분에 인생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또 하나 생겼다. 머지않은 훗날, 네 면의 파사드가 모두 완공되면 안과 밖 모두를 완전히 비추는 빛의 향연을 맞으러 이곳을 다시 찾으려 한다. 그때엔 천사들의 노래가 들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