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게 아닐지도...
얼마 전에 친구가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너는 ‘할 수 있다! 아자아자 파이팅!’ 스타일은 아닌데, 어떤 일도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 하고 싶은 걸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기도 하고.
‘안되면 되게 하라!’, ‘뭐든지 맘만 먹으면 해낼 수 있다!'는 확실히 제 성향과 맞지 않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못해 못해 절대 못해. 그냥 살아'도 아니니까 친구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퇴사를 했을 때, 아파트를 떠나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뉴스레터를 발행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는 듯 ‘그래, 너는 결국 진짜 다 하는구나'라는 반응을 보였어요.
저는 언제나 스스로를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생각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들이 놀라웠어요. 항상 저의 가장 큰 단점이 실행력 부족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해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내심 기쁘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한 실행력 있는 사람이란 결심한 즉시 거침없이 쭉쭉 밀고 나가는 전사 같은 모습이었어요. 남들은 감히 시도해 보지도 못할 일을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멈춰 서서 고민하기보다는 ‘그래! 일단 한 번 해보는 거야!’라고 용감하게 발을 내딛는 사람들이요.
반대로 저는 하염없이 고민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 할 수 있어!’와 ‘아냐, 절대 못 해!’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서 끝도 없이 생각합니다. 얼굴은 ‘할 수 있어!’ 쪽을 향해 있지만, 몸은 ‘절대 못 해' 쪽으로 틀어져 있는 채로요. 고민하는 시간에 열 번도 더 실행했을 법한 사소한 일을 붙들고는 이러지로 저러지도 못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뉴스레터를 발행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한 지 일 년이 지나서야 저는 드디어 첫 메일을 보낼 용기가 생겼습니다. 주택에 살아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건축탐구 집' 같은 프로그램을 매일매일 찾아보던 것도 수년은 되었을 것이고, 퇴사할 결심은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대체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은 편입니다. 언제나 ‘해낸 일'보다 ‘하고 싶지만 아직 못한 일'이 훠얼씬 더 많은 삶을 살고 있어요. 한 때 버킷리스트를 잔뜩 적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인터넷에서 ‘버킷리스트'를 검색해서, 다들 어떤 것들을 적나 흘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마추픽추 가보기', ‘사하라 사막과 킬리만자로 가기', ‘스카이다이빙 해보기', ‘돌고래와 수영하기' ‘3개 외국어 마스터하기' 등 제 인생인지 인디아나 존스의 인생인지 모를 항목들로 가득 찬 리스트를 완성했어요.
그리고 ‘자기 계발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일들(운동하기, 외국어 공부하기, 미라클 모닝, 책 50권 읽기 등등)까지 ‘올해의 할 일' 리스트에 추가하면, 12월에 느낄 좌절감은 불 보듯 뻔하죠. 하지만 저는 그게 제가 실행력이 부족한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00개가 훌쩍 넘던 리스트는 지금 아주 많이 간소해졌습니다. 여전히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이 환상적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 삶에 없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아쉽진 않아요. 제가 새벽 6시에 일어나 중국어 공부를 하는 날이 올 거라는 기대도 내다 버린 지 오래고요(대신 아무 목표 없이 순수한 재미로 프랑스어를 공부 중입니다. 꼬몽싸바?)
성격이 급한 편인 저는 많은 일들이 생각한 즉시 ‘실행 완료'가 되길 바라요. 계속 생각만 하고 발가락만 움찔거리고 있는 제가 언제나 답답하고요.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시도하지 못하는 제가 무능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년이 걸리고, 5년이 걸리고, 10년이 걸려서 그렇지 결국은 해내고야 마는 일들이 하나 둘 생기는 걸 목격하니까 조금은 기운이 납니다. 기대하는 만큼의 거창한 일을, 원하는 만큼 빠르게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은 아니에요.
수많은 ‘좌절의 12월'을 보내고, ‘버킷-인디아나존스-리스트'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에 의미를 남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이요. 그리고 어쩌면 저는 이 일들을 아주 천천히,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루게 될 거라는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저는 실행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냥 성격이 겁나 급한 것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번 연말에는 2024년 목표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천천히 해보고 싶은 일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의 40대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