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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알라 Dec 16. 2018

리스본 첫날 저녁

리스본: 두 번째 이야기






리스본 시내로 돌아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지금까지 헤매지 않고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뿌듯했다. 밤늦게까지 여행 준비한 게 보람이 있었다. 르투갈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유독 많이 많이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나는 가방 끈을 손목에 두 번 감싸 쥔 채로 잠들었다. 잠깐 자고 눈을 떠보니 종착점에 이르렀다. 시각은 오후 여섯 시 반. 원래 계획대로라면 상 조르즈 성을 올라가서 황금빛 노을을 감상하고 싶었는데 새벽바람부터 집을 나서는 바람에 그리고 진 빠지는 더위 때문에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어서 계획을 살짝 수정했다. 산타 주 스타의 엘리베이터를 보러 가기로 했다.







리스본에는 언덕이 왜 이리 많은 건지.. 쿠션감 없는 운동화를 신고 온 게 후회스러웠다. 골목골목 길을 지나다 보니 드디어 조금씩 엘리베이터의 모습이 드러났다. 비좁은 옛 건물들 사이로 고풍스러운 자태의 탑 하나가 자리했다. 정말 언뜻 보면 탑 같았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엘리베이터라고 상상조차 못 했을 만큼 화려했다. 







리스본 구시가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엘리베이터는 1902년에 에펠탑의 설계자인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리스본 구시가를 감상하고 싶어 엘리베이터 앞쪽으로 향했다. 리스본에 언덕이 많은 건 알았지만 서서 기다리는 줄 조차 내리막길이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녁노을 아래 리스본을 좀 더 높은 곳에서 감상하고 싶은 건 국적 불문하고 모두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하지만 나는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아 전망대를 포기하고 서둘러 근처에 끼니 때울 곳을 찾아 나섰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다. 구글맵에 주소를 넣고 안내를 시작했다. 구글맵은 나를 점점 오르막길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 있는 가파른 계단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구글맵은 다 좋은데 평지인지 언덕인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는 게 짜증 났다. 아니 사실 내가 모르는 걸 수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고 분명 언덕 위에는 식당들이 많이 붐벼 있을 거라는 기대로 발걸음을 떼었다. 36도 푹 찌는 더위 속에서 십분 동안 계속 오르막길을 걸었다. 앞으로 나보고 6분은 더 걸으란다. 말이 6분이지, 오르막길이라 최소한 1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나 혼자 여행했더라면 오기로라도 도착지에 갔을 테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더 이상은 안될 거 같아서 도중에 포기하고 앞에 보이는 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착석해서 음식을 주문했다. 담배 냄새가 양쪽에서 풍기기 시작했고 파라솔 아래 고정되어 있는 야외 전등도 고장이 났는지 불이 나가 있었다. 주문한 디쉬가 다 같이 나와서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아쉽게도 시원한 맥주가 제일 맛있었다. 







담배 냄새로 가득한 이 자리를 빨리 뜨고 싶어서 음식도 남긴 채 서둘러 계산하고 미리 알아봐 둔 유명한 나타 가게로 향했다. 이 곳은 리스본 시내의 유명한 나타 체인점 Manteigaria. 구글 평점도 좋은데 칭찬 일색이었던 곳이다. 







조금 걷다 보니 아담한 규모의 가게가 보였다. 가게 바로 앞에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트램 28번이 서 있었다. 어두컴컴한데도 눈에 확 띈 노란 트램이 참으로 예뻐 보였다. 나타 가게는 곧 문 닫을 시간이었는지 손님들은 두 명뿐이었다. 







카운터 옆쪽에는 이미 다 만들어진 나타가 유리 진열대 안에 가지런히 놓아져 있었고 바로 그 옆에는 파티시에 세 명이 유리 벽면으로 보이는 좁은 공간에서 손수 나타를 만들고 계셨다. 유리 벽면이라 그런지 괜히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몰래 훔쳐보는 느낌을 주어서 그런가 -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요인인 게 분명했다. 리스본에서 처음 맛보는 나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너무 맛있었다. 취향에 따라 시나몬 가루와 슈가 파우더를 뿌려 먹을 수 있다. 갓 구워 나온 나타의 페이스트리는 바삭하고 속은 촉촉 달달했다. 


이렇게 리스본에서의 첫날은 정신없고 피곤했지만 달달한 나타 덕에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많은 곳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리스본을 있는 그대로 느긋하게 느끼기에는 충분했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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