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2
잘 살아요? ('살아요?'에 방점을 찍어요)
여긴 북경이에요. 한국보다 1시간 전의 과거에 살고 있는 셈이에요.
회사 일로 갑자기 나와서, 돌아갈 기약 없이 꼬박 두 달째입니다.
한동안 누구에게도(애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만큼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아침 출근길에 그냥 5톤 트럭 같은 거에 부딪혀버리면 좋겠다...하는 생각.
무엇 때문인지는 저도 명확히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요.
그 시간들 사이에, 당신이 나오는 꿈을 꿨어요.
되게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에 커다란 실크쿠션을 등에 대고 둘이 나란히 앉아 있는데 당신이 가방을 뒤적뒤적하더니 내게 크라프트지로 만든 연습장 묶음 같은 걸 보여줬어요. 거기에는 자신이 굉장히 힘들었던 순간순간을 새겨넣은 것만 같은, 그런 글들이 있었어요. (내용은 잊었고, 맥락의 느낌-이었어요, 그건) 드문드문 악보 같은 것도 있었구요. 마치 여고생들의 교환일기장 같이, 어디선가 오려붙인 콜라쥬 같은 것들도 있었구요.
어쨌든 그걸 다 보여주고 나서 당신은 그거랑 똑같은, 하지만 아무 것도 적힌 것이 없는 빈 노트 한 권을 내게 주더니,
'써요'
라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빙긋이 웃고.
그걸 받아들고 나는 '고맙다'고 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엔 꿈에서 깼어요. '뭐지? 뭐지?'하면서 씻고 출근했어요.
중국에 오니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이 마구마구 샘솟아요. 이상한 꿈도 많이 꿔요. (아, 저 꿈은 한국에서 꾼 거지만...)
손가락은 여전히 머리보다 느리고, 새로 장만한 노트북도 여전히 MS 오피스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어쨌든 그 언젠가의 'one story glory'를 쓰기 위해 살아요. 살아있다면 쓰겠죠.
아무튼, 잘 살아요?
언젠가 오래 전 편지에 밝혔듯 나는 되도록이면 내 주위의 모든 남자들이, 군대 같은 덴 가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있나요. 그저 제게 위문편지를 쓸 영광을 주신다면 감사하겠어요.
건강해주세요, 매일매일 더 건강해지세요.
국경의 국경을 너머 우주 끝까지 기원합니다.
ps. 머릿 속에서 5톤 트럭을 떠올릴 때마다 버릇이 하나 생겼어요.
그럴 땐 '죽고싶다'는 말 대신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러면 묘하게 살고 싶어져요.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내가 살아서, 이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오래전의 일기라 지금 여기는 북경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