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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찬 Sep 20. 2022

정재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코로나로 멈춘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지도 2년이 훌쩍 넘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갔다. 직장 동료들과 삼겹살에 소주잔을 기울이거나, 부모님 생신잔치에 온 가족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던  일 같은 것들 말이다.

 친구나 가족과 함께 즐기던 소소한 즐거움만 잃어버린 사람이라면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식당이나 술집, 노래방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문에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다. 손님이 없어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가고 대출이자는 쉬지 않고 늘어나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에도 수많은 사장님들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며 멍하니 출입문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한편으로는 본질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안겨주었다. 이를테면, 나는 누구인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지 같은 문제들 말이다.

 명나라 시대의 문인 진계유(陳繼儒)는 “연후(然後)”라는 시에서 “守默然後知 平日之言燥(수묵연후지 평일지언조), 閉戶然後知 平日之交濫(폐호연후지 평일지교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침묵을 지킨 다음에야 평소에 말이 소란스러웠음을 알았고, 문을 닫아건 다음에야 평소에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공부하느라, 돈 버느라,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들 건사하느라 하루하루 버티는데 급급했던 나도 코로나가 시작된 연후에야 오랜만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코로나가 바꾼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 책이다. 책은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소유라는 7개의 주제로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하나가 책으로 써도 될 만큼 묵직한 주제이기에 저자는 각각의 주제에 충분한 지면을 할애하지 못했다. 애당초 인생이라는 테마를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모한 시도인가. 저자는 인생이라는 거대한 산맥을 꼼꼼하게 안내하는 게 아니라 주요 봉우리에서 잠시 멈춰 간략한 설명을 들려줄 뿐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멀리서 보면 비슷한 것 같아도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란 모두 개별적이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 나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이해한다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헤쳐나가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인생이라는 산을 오르는 독자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책이 인생을 논하면서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책에서는 좋은 대학에 합격하거나,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거나, 매력적인 이성과 결혼하거나, 임원으로 승진하는 영광의 순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지겹게 반복되는 밥벌이의 고통이나, 부모님과 이별하는 슬픔, 자식과의 갈등,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인정욕구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가 인생을 이야기하며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언급하는 이유는, 인생이라는 것이 결국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조금 전 월드컵 결승전에서 역전골을 넣은 선수에게 “당신에게 축구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리포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수가 나이가 들어 경기장을 떠날 때가 되면 어떤 리포터라도 그와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인간이란 영광과 승리의 순간이 아니라 고통과 패배의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인생에서 마주치는 슬픔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마냥 무겁고 우울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책을 처음 펼치는 순간부터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저자가 전하는 따스한 온기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부터 일관되게 유지되어 온 저자의 인간미 넘치는 문체 덕분일 것이다.

 문체뿐만 아니라, 저자의 진솔함도 이 책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이 책은 다른 책들처럼 근거 없는 낙관론을 퍼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저자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없습디다. 남들처럼 화려한 곳에 뜻을 두고 따라가다 보면 길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너무 많은 이들이 몰려 내 차지가 아닙디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덧붙인다. 뜻을 이루기 위해 길을 찾는 것도 훌륭하지만, 이 길에서 뜻을 찾는 것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고. 긍정의 힘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고,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믿음, 그것은 헛될 뿐만 아니라 위험합니다.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주장은 사이비에 가깝습니다.”라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거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당신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뜻이 없었기 때문이라거나 마음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성공이 눈앞에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알맹이 없는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시대에 저자의 이런 조언이 얼마나 귀한가.

 저자는 자신의 허물도 포장하거나 감추지 않는다. 책에서는 저자가 학문의 길에 들어섰을 때 스승과 선배들을 질투하고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기억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저자에게도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자신의 능력에 실망해 좌절에 빠진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자에게 큰 위로가 된다.

 이 책은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는 하지만, 저자는 영화나 대중가요 등 다른 장르도 폭넓게 활용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시”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군데군데 중간계단을 설치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마도 오랜 기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저자가 깨달은 노하우가 적용된 결과겠지만, 저자의 이런 배려 덕분에 독자들은 더 손쉽게 시와 친해질 수 있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를 처음으로 알게 된 “시를 잊은 그대에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책은 오랫동안 기억의 구석에 봉인되어 있던 시를 다시 읽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배웠던 “시”를 생각하면 반어법, 직유법, 은유법, 공감각적 심상 같은 단어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울러 시험을 치르기 위해 밑줄 친 부분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암기해야했던 고통스러웠던 기억도 떠오른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를 배우는 일은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됐던 건 윤동주나 김소월의 시를 읽을 때 이따금 느낄 수 있었던, “비록 내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안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는 막연한 감동 같은 것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이를 먹어도 시를 이해하는 능력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고, 시는 끝내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로 자리 잡았다. 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은 지기 싫어하는 젊은 날의 승부욕과 결합했고, 시란 허세와 허영심으로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에 이르렀다.

 이후로 오랫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내 앞에는 더 이상 시험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시를 읽어야 할 필요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강의”라는 부제에 낚여 우연히 읽게 된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시를 읽는 즐거움을 깨우칠 기회를 주었고, 이 책 덕분에 그 깨달음이 조금 더 깊어졌다.

 물론 시를 읽는다고 해서 우리 인생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서 인용한 키팅 선생의 말처럼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가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일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 아니겠는가. 또한 책에서 인용된 신형철 평론가는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결국 시란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자,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시를 읽는다는 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수단에 이르는 것이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는 지난날을 성찰하는 기회를 얻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성찰이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로 지구 전체가 잠시 멈춘 시기에 개개인의 성찰이 모아져 인류 전체의 지난날을 돌아본다면 어떨까한다. 인간은 이성에 입각해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켜왔다. 이미 오래 전 달 표면을 밟았고, 화성까지 탐사선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사람과도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실로 눈부신 발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전염병 하나만으로도 인류 전체가 통제 불가능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는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에 취해 신이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는 코로나가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온실가스, 핵폭발, 자원부족 등이 언제든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인류의 자만은 코로나에서 끝나야 한다. 우리가 코로나를 통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면 더 끔찍한 비극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인 백무산은 “정지의 힘”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달리는 이유를 안다. /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코로나로 세상이 멈춘 시기 우리는 달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며 다시 나아갈 힘을 비축해야 한다. 그 힘이란 단순한 동력이 아니라 각성이며, 우리가 반성 없이 동력만 비축한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폭주가 시작될 것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지만 나를 돌아보는 성찰에 이 책과 아름다운 시들이 함께 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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