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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fu Mar 04. 2021

토니스 초콜릿


초콜릿을 좋아한다. 마음이 울적한 날, 조심스레 초콜릿을 조각내어 하나씩 꺼내 먹으면 입안에 기분 좋은 달콤함이 퍼지면서,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예전에는 참지 못하고, 한 번에 한 판을 뚝딱 먹곤 했는데, 요즘은 조금씩 음미하며 먹는 게 좋다. 딱 아쉬운 만큼 먹어야 그 달콤한 여운이 오래간다. 특히 오후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 즐긴다. 그 시간에 먹으면 당으로 가지 않는다나 뭐라나. 믿고 싶은 건 참 잘도 믿는다. 애정 하는 초콜릿은 넘쳐나지만, 오늘 소개할 초콜릿은 '토니스 초콜릿'이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초콜릿 토니스는 굉장히 쨍한 컬러의 패키지를 가져 꼭 불량식품처럼 생겼지만, 제법 성분도 착한 친구다. 밀크 카라멜 씨쏠트, 시나몬 비스켓, 헤이즐넛, 피칸 코코넛, 누가, 프레첼 토피, 라즈베리 슈가크래커 등 다양한 맛을 개성 있는 패키지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토니스를 처음 만난 건,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서다. 환승으로 인해 거의 하루를 보낸 곳이었다. 이럴 때 나는 네덜란드를 간 것이라 해야 할까, 가지 않은 것이라 해야 할까. 개인적으론 가보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얼마 전 L과 논산을 지나면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논산의 도로를 지나간 것이 전부지만, 논산을 가보았다고 하는 L과 그것은 간 것이 아니라고 하는 나. 정답이 없는 애매한 문제다. 내가 네덜란드에 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곳을 목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직항이 있었으면 얼마든지 지나쳤을, 어쩔 수 없이 거쳐 간 곳이기 때문이다. 가봤다고 하기에 네덜란드 땅을 밟으며 마주한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비록 나의 몸은 네덜란드를 거쳐갔지만, 가봤다고 할 순 없었다.


 그런데 오며 가며 보낸 스키폴 공항에서의 하루에 정들었는지, 어느새 내게 네덜란드란 단어가 각별해져 있었다. 우연히 네덜란드에 관련된 것을 발견하면 괜히 반갑고 눈이 갔다. 환승 대기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공항 곳곳을 둘러보며 네덜란드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긴 했었다. 네덜란드는 미피의 고향이었고, 꼭 가보고 싶었던 안네의 집이 있는 곳, 촘촘히 귀엽게 붙어있는 집들과 튤립을 빼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토니스 초콜릿이다. 토니스는 일반 초콜릿에 비해 크고, 두툼하다. 아무 정보 없이 가성비 괜찮아 보여서 산 초콜릿의 맛도 훌륭했다. 뒤늦게 많이 사 올걸, 후회되는 초콜릿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네덜란드 직구 사이트에서 토니스를 발견했고, 이제는 집에서도 편하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초콜릿 하나로 직구를 한 건 처음이었다. 기회다 싶어 궁금했던 네덜란드의 다른 간식들도 담아 보았다(그렇게 스트룹와플에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오래 걸리는 배송기간에 답답해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네덜란드를 그리며 멀리서 천천히 나를 만나러 오고 있는 초콜릿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다.


 거의 보름 만에 도착한 택배는 꼭 네덜란드 펜팔 친구가 보내온 선물 같았다. 하루, 이틀 만에 도착했다면 오히려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평소보다 더 정성스럽게 언박싱을 했다. 당시에 맛보지 못했던 다양한 맛의 초콜릿을 아껴가며 먹고 있다. 토니스 초콜릿의 창업자인 '토니 반 퀴겐'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로, 카카오 생산과정의 불공정을 알리는데 힘썼다. 그 후 초콜릿 회사들의 아동노동, 여성 착취 등이 없어도 초콜릿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것이 '토니스 초코론리'라고 한다. 100% 공정 무역 초콜릿으로, 네덜란드에 '윤리적 소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게 만들었고, 지금도 그 노력은 진행 중이라고 한다. 초콜릿 패키지 안쪽에 장문으로 적혀있던 글들이, 이러한 실상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독특한 초콜릿의 디자인도 인상 깊었는데, 알고 보니 쇠사슬이 엉켜있는 듯한 모습은 초콜릿 생산과정의 모든 불공정을 담았고, 조각으로 나눠진 초콜릿은 카카오의 주 생산국들의 지도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더 의미 있는 초콜릿이다. 앞으로 마음 놓고 토니스 초콜릿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가봤다고 할 순 없지만, 어느새 다녀온 사람처럼 그리워하고 있는 네덜란드. 언젠가 네덜란드 본토에서 토니스를 행복하게 음미하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네시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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