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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ansGoog Mar 07. 2017

가족, 그게 뭐길래.

글쓰기에 비유하면, 마침표를 찍고 문단바꾸기를 하려는데 망설인달까

가족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내가 지켜야 할 존재들의 집단 정도로 생각했다.

그 생각에 금이 가고 그 어떤 것도 안하고 싶은 요즘이다. 


어머니의 투병생활은 지난해 9월 부터 시작되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생명과학 전공이랍시고 'cancer', 'anti-cancer drug' 이란 단어가 익숙했는데 내 가족이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어머니는 뇌종양 4기로 판정 받아 각종 방사선치료와 화학적 항암치료가 병행되었고 현재 다섯달째 치료중이시다. 다섯달전 어머니의 응급실행과 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동생을 통해 처음 들었을때의 마음은 다시 생각해도 아득해지고 숨이 가빠져오는 순간이었다. 면허를 받고서 그렇게 운전을 비상 깜빡이를 계속키고 해본적도 없었고 다시는 못할 짓이었다. 광주부터 서울대병원까지 3시간이라니...


가족에게 난 늘 부채감이 있었다. 뭔가 모르게, 막연하게. 그 이유는 차차 이야기 하겠다. 어머니가 그렇게 쓰러진 날은 내 부채감이 스스로가 감당하기 힘들지경으로 와닿았다. 나에게 3시간은 어머니가 살아있기만을 이 악물며 달려갔던 시간이었기에. 내가 떨어져있는게 죄스럽게만 느껴졌다.


그 부채감의 시작은 이렇다.


대학 잘 가보자는 마음에 서울에 살던 내가 기숙사 고등학교를 가면서 부터 난 집에서 12년간 떨어져있었다. 혼자 살아본 사람들은 알거다. 어머니의 집밥이 얼마나 그리운지. 난 고등학생부터 빼놓지 않고 매일 전화를 했었다. 보통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었고 균형 맞춘답시고 아버지한테 전화했었다. 그리고 떨어져 사는 동안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지못했고 (대강 굵직한 일들, 사건들만 어머니의 입을 통해 겪음)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일들은 가족들도 굵직한 일들 이외에 모른채 살았다. 


그 시간동안 가족들과 나 모두 각각 말은 못했지만 힘든 일이 굉장히 많았음을 알 수 있었다. 요즘 어머니 병간호를 하며 말이다. 그 소식들을 듣기 시작할때 나도 모르게 소위 '부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부채의식은 지금 덜커덕 생긴게 아니고 내가 몰랐던, 가족 구성원 스스로가 감당해야했던, 힘든일의 정체나 실체를 확인하면서 부터였다. 그 부채감은 알게 되는 사실의 양에 비례했다. 대학을 서울로 가고싶었던 이유도 그들과 함께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뭐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야지 말이다. 


근데 동생과 아버지의 실체를 알고 보면 볼수록 이건 나하고 안맞는 사람이다 싶었다. 두살터울인 동생은 두살쯤은 가뿐히 뛰어넘는 과격한 언사로 잦은 충돌이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즐기셨고, 몇몇 다른 가족들에게도 있는 일처럼 주폭을 서슴없이 시전하기도 했다. 내가 서울집에 부재했던,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 상황이 악화되었던 모양이다. 전해들은 이야기 이기에 백퍼센트 확신은 어렵지만 상당부분 예측이 가능했다.


현재 내 상황은 타지역 병원 부속연구소에서 병특으로 근무중인지라 이직도 쉽지 않고,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옮기고 싶지도 않았다. 1년정도 남은 상황에 다른 병역특례업체에서 받아주지도 않았다. 어떤 첫째로서의 의무감이라는 말이 그 몇개의 업체 지원 동기라면 동기겠다. 


결국 지난주에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동생과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그리고 내가 어머니의 간호에 적극적 개입이 어렵고 한다 해도 가능치 않다는 걸 인정했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가봐야 싸우기만 하고.


과연 가족이 뭔가, 정답은 그냥 서술해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살고 그럼되는데 뭔가 모를 무력감은 참 참기가 힘들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 처럼 살아 나갈거지만 가족 상황에 급변은 내 정서적 독립을 가속화 시킨거라고 믿는다. 


가족과 모든일을 같이 하지 못햇음에 대한 부채감도 이제 놓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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