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수분을 머금은 채 하루 온종일 눈치만 보며 한두 방울 정도의 빗물만 떨어트리던 먹구름이
금요일 저녁 퇴근길, 설레는 혹은 고단한 발걸음으로 지하철 역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이때다 싶어 물폭탄을 퍼부어 버린다.
불쾌할 정도로 높은 습도와 지하철 내 인구밀도 덕에 이미 땀으로 끈적대는 몸뚱이 위로 우산을 치켜들고, 들이치는 빗물로부터 최대한 몸뚱이를 보호하기 위해 좁은 보폭으로 종종 거리며 걸음을 서두른다.
두 눈뜨고 보기 처참한 몰골로 종종거리는데 꼬릿한 은행향이 코끝으로 들이쳐 기막힘에 코웃음이 터져 나온다.
9월 중순. 35도를 육박하는 열대야로 지구온난화야말로 진정한 재앙임을 절감하며 오지 않는 가을을 부르짖고 있건만, 가을의 유일한 단점인 쿰쿰한 은행내음만이 영민하게도 열대야에 속지 않은 채 9월임을 알아차리고는 부리나케 온 거리를 가득 채우다니.
지구 온난화란 재앙은 착실히 우리 발치 앞으로 도래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첩첩으로 쌓여있는 고난들이 단단한 기반을 다진 게다.
두 달 뒤면 이 세상에 도래할 조카의 앞날도, 우리 모두의 남은 수명동안의 앞날도 전부 다 파이팅.
오늘의 비 이후 드디어 도래할 예정인 시원한 가을은 비록 쏜살처럼 왔다 갈 테지만
확실하게 오긴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