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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Apr 01. 2024

세월호와 김훈, 논픽션

김훈식 문학저널리즘

2016년 4월 6일 나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에 있었다. 70여세대, 주민 160여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섬은 팽목항에서 하루 한 번 있는 배편으로 3시간쯤 걸리는 곳이다. 동거차도를 향하는 배 안은 별다른 이유 없이 고요했다. 평소보다 갑절은 많아진 승객 무리는 여기저기 풀썩 앉아 저마다의 짐을 안고 몸을 웅크린 채 바닥 혹은 천장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서로 합의하지 않은 적막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동거차도 정상


섬에 도착할 즈음 하늘에서 굵직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처 우산을 챙기지 못한 이들이 육지에서 챙긴 짐보따리들을 안고 섬으로 뛰기 시작했다. 몸보다 카메라를 먼저 사수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퍽 처절해 보였다. 이 섬에 나를 비롯한 기자들이 대책 없이 몰렸던 까닭은, 이 섬이 가라앉은 배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육지였기 때문이고, 각자의 특집기획에 담기 딱 좋은 목소리가 거기에 몰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배가 가라앉은 지 꼭 2년이 되던 때였다. 이 섬은 수습 딱지를 간신히 뗀 나에게 '기자의 일'이란 무엇인지 알려준 장소였다. 기자가 해야할 일이란, 상처를 건드리는 것이었다. 막 굳어 새살이 돋기 직전의 상처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 기어코 피를 보고마는 것이었다. 그 섬이 터전이 아니지만 그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을 여러 명 인터뷰했고, 그렇게 나는 별 볼 일 없는 첫 르포 기사를 쓸 수 있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044226?sid=102


이듬해 4월 나는 다시 한 번 동거차도에 가게 되었다. 가라앉은 배를 인양한다는 소식이 서울에까지 전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낯설었던 첫 방문 때와 달리,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년배 경찰 기자들과 함께였다. 배 안에는 나름의 훈기가 돌았다. 가벼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배 한 구석에 김훈이 있었다. 전년에 했던 것처럼 거기서 나는 동료들과 기사를 썼다. 김훈도 기사를 썼다. '김훈 특별기고'라는 이름으로 그가 쓴 기사는 기사라기에는 차라리 소설 같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그를 평가절하했다. 나는 그때까지 김훈의 작품을 읽어 본 적도 없었고,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기자 출신이라는 점과 '대단한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라는 것뿐이었다. 그가 쓴 기사를 몇 줄 읽다가 덮었다. 이게 무슨 기사냐, 는 분노 비슷한 것이 들어서였다. 그의 글은 내가 아는 기사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과잉되어 있었다. 섬은 그와 나에게 같은 장소였지만, 동시에 전혀 별개의 장소였다. 그는 내가 전혀 보지 못한 것들만을 고르고 골라 글 안에 눌러담았다.


뜬금없이 이 낡은 기억을 꺼내는 것은, 오늘자로 김훈이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다시 한 번 한겨레신문에 장문의 특별기고를 썼기 때문이고, 그 글을 보며 전에 없던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고, 이런 식의 문학저널리즘을 볼 기회가 더 많아지면 어떨까, 하는 어림 없는 상상을 출근길에 해봤기 때문이다. 동거차도에서 멀찍이 그를 본 이후 몇 년이 흘러 기자로서 방황하고 있던 때 다시 읽은 그의 몇몇 '특별기고'들은 저널리즘의 정답은 아닐지언정, 지향해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느낌을 주었다.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공동체와 삶과 죽음에 대해 상념하는 비일상적인 감각을 체험하고 싶다면, 그의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그의 글은 논픽션과 소설, 그 가운데 어딘가 놓여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83315?sid=10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360707?sid=103

https://m.khan.co.kr/national/labor/article/201911250600045#c2b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2441#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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