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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Jan 23. 2024

전남편의 인스타

마침내 봐버렸다. 호기심이 이성을 이긴 순간.


인스타그램 같은 것은 거의 안 하던 사람이었고 같이 살 때에도 내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기에 거절을 눌러버릴 만큼 관심 밖이었는데 왜 봤을까.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내 이혼에 대해 자조 섞인 농담을 할 정도로 지금 상황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눈으로 봐버리니 마음을 바로 세우기가 힘들다. 솔직하게 인정하기는 싫지만 정말 착잡하다. 그냥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염탐했다고 생각하고 넘겨버리고 싶은데 사실 지금 그게 잘 안된다. 이미 봐버렸기에 보기 전으로 되돌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는 일인데 거기에 나 혼자 휘말리고 나 혼자 휘둘리는 게 참 속상하다.


못 살 이유도 없지만 인스타그램 속에 전남편은 너무나도 잘살고 있었다. 호기심의 끝에는 실의에 빠진 나의 수많은 괜찮음이 있었다. 이제 그 괜찮음은 괜찮지 않아 졌고 낙담했다. 나만 생각해서는 그 사람이 확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이 파편조차 모두 잘게 부서져 존재했다는 흔적도 찾을 수 없기를 바랐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럭저럭 넉넉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렇다고 나보다 잘살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결혼생활을 할 당시 꿈꿨던 것들을 그 사람 혼자서 이뤄내는 것들을 보자 결혼 기간을 포함한 1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자책하게 된다. 이혼 후 힘들어한다고 1년, 그 힘듦을 이겨낸다고 1년. 그리고 결혼 생활 10년. 총 12년이 갑자기 무척이나 아깝게 느껴진다. 소금이 분명 짤걸 알면서 얼마나 짠지 궁금한 마음에 한 움큼 집어먹은 기분이다. 끝에 닿은 기운이 짜다 못해 쓰고 고통스러운 쓴맛에 두통이 몰려온다. 이제 이걸 어떻게 소화시켜야 할까. 아니 소화시키고 말 것도 없이 소금이 녹아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면 될까.


겨우 갈피를 잡은 것 같은 내 마음이 다리 하나가 부러진 테이블 같아졌다. 휘청휘청. 그리움이나 후회보다는 열패감이라는 게 차라리 다행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승리를 향한 원동력은 그리움보다는 열패감쪽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기에. 그 승리라는 게 과연 이번 삶에서 존재할지, 그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게 옳은 방향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기지 못해 분하다. 하루라도 더 빨리 잘살지 못한 내가 언제쯤 잘 사는 것에 도달할지 조급해진다. 이 옹졸함에서 아직 밖으로 나가지 못한 나는 한동안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겠지. 


다시는 그 사람의 소식에 일말의 관심도 두지 말아야겠다. 잘 살고 있다면 잘 사고 있는 자체로, 못살고 있다면 못살고 있는 자체로 머릿속의 공간을 하나 내어 일정 시간 동안 그 사람을 떠올려야 하는 것 자체가 낭비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처리하며 나아가도 충분히 버거운 삶인데 낭비까지 하고 있을 수는 없지.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혼에 대해 할 얘기가 있는 걸 보면 이혼은 평생 안고 가야 할 지병 같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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