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내가 쓴 글이나 읽고 있는 책의 어떤 구절을 남편에게 읽어주곤 한다. 가끔은 OTT를 통해 나 혼자 본 영화의 줄거리를 들려주기도 하고. 그때마다 남편은 흥미롭다는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뒤에 이어질 내용을 추리해보기도 한다. 남편이 갑자기 안 보이게 된 후로 우리에게는 ‘함께 즐길 거리‘가 너무 많이 줄어서 곤란했었는데, 어느새 이런 것들이 우리의 놀이가 되었다.
<구의 증명>을 읽던 날 밤, 나는 이 소설을 조금만 읽고 잘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를 했었다. 기대와는 달리 단숨에 소설을 다 읽어버리고 침대에 가로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고 있는데, 남편은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 걸 눈치채고는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묻는다.
나는 길다면 길, 짧다면 짧을 이 소설의 내용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야기 한다.
“서로 좋아했구나”
남편이 물으면
“응 서로밖에는 없다는 말이 더 맞을 거야”
내가 대답했고
“헤어졌다고?”
남편이 물으면
“아니 그냥 떨어져 있었던 거지. 도저히 함께 있을 수 없어서”
라고 답했다.
우리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죽었어?”
라고 남편이 물었고
”. . . . .“
나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눈물이 범벅된 남편이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 거야. 왜 이렇게까지 쓰는 거야”
질문 아닌 울음을 울었고
나는 무슨 대답을 했던가.
그냥 눈물을 닦은 기억 뿐.
표시해 둔 몇몇 문장을 더 읽으려다가 이 문장에서 멈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착해지는 것 같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착해지는 것 같았던 사람들을 결국 지키지 못했다는 마음이 무겁게 우리를 짓눌렀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걸 피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