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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22. 2024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김원영

”이른바 소수자로서 주류의 시선 앞에 자기를 드러내는 사람은 최승희가 직면한 딜레마를 피할 길이 거의 없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장애인의 삶을 알리며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려는 사람들도 같은 고민에 직면한다. 장애를 ‘팔아서’ 구독자 수를 늘리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어떤가? 나는 장애인의 몸, 장애가 있는 몸들의 이야기를 그저 글로 ‘팔아먹고’ 있는 건 아닌가?“


남편과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먹으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을 본다(듣는다).

”사정이 딱해 보이기로는 장애만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고요.“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이 피고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기도록 해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자는 상사의 말에 우영우가 한 대답이다. 남편이 나에게 묻는다.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딱하게 보일까?“


나는 리모컨을 조작해 화면을 멈춘다. 티브이 소리가 멎고, 거실은 고요해진다. 지금 나온 주제로 이야기를 더 나눠보자는 신호다.


남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론이지“다. 나는 농담을 섞어 말한다. ”자기 허우대가 너무 멀쩡해서 더 딱하게 여길지도 몰라. 잘생긴 얼굴의 단점이지.“ 남편과 나는 웃는다. 웃음이 멎으며 다시 고요. 물론 내 대답이 과장만은 아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이가 많은 보호자나 간병인들은 남편을 참 좋아했지. 어쩜 이리 잘생겼느냐, 얼굴이 하얗고 키도 크다, 성격이 좋다(어떻게 아시는지?) 등등. 물론 그 말 뒤에는 언제나 긴 말줄임표가 따라붙었다. 표정과 말투를 통해 짐작해보자면 ‘그런데 어쩌다가 쯧쯔’ ‘허우대가 멀쩡하면 뭘 해’ ‘가엾다 가엾어’와 비슷한 종류의 말이었겠지. 내 상상이 과한 걸까?


대화는 이어진다. 남편은 당신도 나를 딱하게 여길 때가 있느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다. (아닐지도 모른다) “당신이랑 싸우고 나서 당신이 침대 끝에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응시하거나 하면 그게 그렇게 딱해 보이더라. 억울해. 부부로서 이 문제를 좀 더 치열하게 얘기해 보고 싶은데, 자기 그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일단 양보하고 싶어지거든.” 남편은 말한다. 딱해 보일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그런 걸로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싶지는 않다고. (믿어도 될까?) 남편은 생의 어느 때보다도 자주 오해받는다. 게다가 남편에게 주어진 오해는 (모든 오해가 그렇듯이) 이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나도 알아. 그래서 내가 끝까지 안 지잖아. 역효과인가?” 우리는 다시 웃는다. 실제로 나는 저런 마음이 들어도 쉽게 양보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가 ‘딱해 보여서’ 뭔가를 양보하려는 마음은 없다. 하지만 양보해 버리고 싶은 마음과 다투는 일은 매번 곤란하다. 순간순간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드니까. 나는 그럴 때 그와 나를 동등하게 느끼고 대하는 일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허둥거린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마음에 쉽게 지지는 않는다. 마음이 복잡한 건 복잡한 거고, 문제는 문제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태도가 야멸차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 나를 도와주는 건 나의 취약함이다. 나 역시 남편처럼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약하다는 걸 인정한다. 남편이 보이지 않고 내가 보인다는 사실이 남편은 불완전하고 나는 완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걸 어렵게 깨우친다.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남편에게 손쉽게 양보해 버리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나의 깊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마다 이 책에서처럼 “누군가의 능력 앞에서 우리는 종종 좌절하지만, 누군가의 힘을 목격하면 더 큰 세상에 접속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는“거다. 그건 당신은 못 보고 나는 보는 능력의 세상에서, 그런 능력과는 별개로 당신과 내가 함께여도 괜찮은 힘의 세상으로 건너가는 일일지도.


“예술가든 아니든, 장애가 있든 없든, 우리 모두 각각의 ‘닫힌 세계’를 끌어안고 삶에서 각자의 춤을 춘다.” 정말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덧. 이 작은 계정에 남편과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도 때로는 꺼려진다. 남편의 ‘안 보이는 상황’을 전시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 마음을 이야기하면 그때마다 남편은 ‘그게 우린데 뭐 어떠냐’고 말해준다. 그럼 나는 그가 가진 힘에 순순히 기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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