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준
책을 다 읽고 나니 풍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몇 살 때인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온 가족이 웬일로 놀이동산엘 다녀오는 길이었고, 웬일로 내 손에는 은색 몸체에 놀이동산 마스코트가 새겨진 풍선이 들려 있다. 나는 물론 기분이 아주 좋다. 싸우는 사람도, 돈 걱정도 없는 하루. 어쩐지 그런 날이 선물처럼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풍선이라니. 나는 내 키보다 높이 떠 있는 풍선을 자주 올려다본다.
다음 기억은 내가 울고 있는 장면. 손에서 풍선을 놓쳤고, 풍선을 잡으려고 몇 번 발을 굴러보다 실패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운다. 그걸 본 가족들은 내 얼굴을 흉내 내며 아이고 속상해서 어쩌누, 풍선 상희 건데 잃어버려서 어쩌누, 반쯤 나를 놀리고 반쯤 나를 달래고. 그 말에 더 속이 상해서 엉엉 운다. 내 거였는데, 잃어버렸다. 그런 거구나. 나는 이제 목 놓아 운다. 마치 오늘 왔던 행복도 그 풍선에 실려 사라져 버린 것처럼.
스물 몇 살 때쯤, 저 날을 다시 떠올리고는 그 기억이 꼭 사는 일에 대한 은유 같다고 생각했었다. 사는 일이라는 게, 내 것이었는데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자 더 슬퍼지던 마음 같은 것이라고. 그래서 뭐든 내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날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손에서 훌쩍 떠나버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는 했다. 내 것이 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고는 했다. 여전히 그 떠남을 받아들이지 못해 아파하면서, 아파하지 않는 척, 그 갈망은 내 것이 아닌 척하던 날들이 오래 흘렀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시인은 말했지. ’쥐고 있던 풍선들을 놓아준 뒤 필요할 때 하나씩 다시 불어두어도 좋았을 텐데.’ 그러게. 내 것이 아닌 척 할 필요도, 그것이 떠나서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이. 모두 놓아주고 때때로 하나씩만 가만히 불어봐도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시인의 말처럼, 너무 많이 가졌고, 너무 많이 가져야만 하는 줄 알아서, 놓쳐버린 풍선을 오래 잊지 못하고, 보내주지 못한 채로 지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나도록 꼭 쥐고 있던 어떤 풍선 하나를 살며시 놓아준 기분.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 풍선을 떠올리며 작게 눈물 흘릴 수 있게 된 것만 같은.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사랑하는 이의 등을 외우던, 다락이 필요하던, 말이 전부여서 말에 아프던, 그 많던 지치고 슬픈 마음들을 접고 접어 누군가에게 보내주려고 애쓴 시간에. 그 마음들 덕분에 내 마음에 오래 남아 때때로 둥둥 벽을 치던 풍선 하나가 휘리릭 날아갔다고. 놓아줘도 괜찮고, 다시 불어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소풍을 가기 좋은 계절이 오고 있으니 꼭, 소풍을 다녀오시라고. 저도 그러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