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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B Jun 09. 2016

우리 영국에 왔어요

영국 Day-1

런던 히드로 공항에 대한 첫 느낌은 역시 인천공항이 최고다 였다.

하지만 약간은 낡은 시설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진 공항은 첫 설렘으로 가득찬 냄새가 났다.



런던의 티머니 오이스터


 준비가 철저한 친구를 둔 덕분에 런던의 버스카드인 오이스터카드를 구매하고 목적지인 핌리코 역까지 가는 것은 수월 하게 진행되었다.  친절한 런던지하철의 폴리스아주머니에게 도움을 받으며 우리는 영어못해도 해외여행 별거 아니네! 라는 생각을 했다. 숙소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말이다.





해외의 지하철 이라고 한국과 별 다를게 없다.

우리나라도 각 호선이 색으로 구분되어 있듯이 런던의 지하철도 색으로 호선을 구분 하면 된다.

우리의 목적지는 Phimlico역 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도착하니 오후3시정도 였다.

숙소를 가기 위해서는 우선 공중전화가 필요했다.

위치가 복잡하기 때문에 민박주인의 안내없이는 불가능 했다.


오이스터 카드를 구매하고 남은 거스름 돈으로는 공중전화를 사용하기에는 약간 부족 했기 때문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동전을 받기로 했다. 길가의 작은 구멍가게같은 가게에 들어가 물을 한병 사고 나니 꽤 넉넉한 양의 동전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사용해 본지 15년도 넘은 공중전화 였는데 외국에서 처음 사용하는 공중전화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런던 도착이후 이곳 까지 문제없이 왔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감 외에는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호가 가다 이내 끊어져 버리고 알 수 없는 안내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황당함과 당황함이 교차되며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결국 우리는 가지고 있는 동전을 다 버리고도 또다시 동전을 받아 그 동전을 다 쓸 때까지도 전화를 쓸 수 없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첫 지하철 까지는 잘 탔는데 이렇게 숙소조차 찾지 못한채 국제미아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만은 없어 간략히 소개되어있던 숙소주소를 따라 가기로 했다.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핌리코역에서 현재 우리가 있는 핌리코아카데미 까지 온 후 24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야 했다. 물론 내린 후 는 주인의 안내없이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저앉아 있는것 보다는 뭐라도 해보는 것이 더 나았다.


런던에서 버스를 탈 때는 주의해야 한다.

한국은 대부분의 버스가 내린곳에서 반대방향으로 가야할때는 바로 건너편 정류장을 이용하면 되지만 런던은 도로 자체가 워낙 좁고 복잡하게 엉켜 있어 아무리 제법 큰 도로일 지라도 건너편 정류장에 버스정류장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버스를 탈 때는 버스앞면 위에 전광판에 씌인 방향뿐만 아니라 타고 왔던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가야할 때 어느 정류장으로 가야하는지를 잘 알고 타야 한다.


우리는 운 좋게 핌리코 방향으로 가는 24번 버스를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종점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우선 정류장에 내리면 뭔가 해결책이 있을거라던 우리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우리는 정확한 주소도 없었을 뿐 더라 그곳은 아파트 단지 였다.

이제 방법은 정말로 숙소주인과 통화가 연결되는 방법밖에 없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공중전화 박스를 찾았지만 여전히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오기 시작했다.

처량하게 그 비를 맞다 시피 하는데 땅콩의 절규가 들려왔다.


"나 머리에 껌 붙었다"


비도오고 짐은 많고 돌아다니느냐 다리는 아파죽겠는데 누군가가 공중전화수화기에 붙여놓은 껌까지 달랑달랑 매단 땅콩을 보고 있자니 집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났다.


그 때 한무리의 교복입은 청소년들이 손에 담배를 든채 걸어왔다.

전 세계 어느곳이나 비행청소년을 마주하는 것은 내가 성인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심장떨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별 다른 선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전화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물론 내가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장점은 사람이 둘 이라는 것이다.

나는 길가는 사람 붙들고 무조건 물어보는건 잘 하지만 당췌 뭐라고 대답하는지를 못알아 듣고 

땅콩는 물어보는건 꺼려하지만 대답하는걸 귀신같이 알아듣는 귀를 가졌기 때문에 꿍짝이 잘 맞았다.


우리의 꼴이 정말로 불쌍했던 것인지 원래 착한 학생들 이었는지 학생들은 제 일 처럼 나서서 도움을 주었다.

공중전화로 걸었던 전화가 계속해서 끊어지자 자신들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연결이 되지 않자 우리는 한 줄기 빛 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방법은 주인에게 메세지를 남기는 방법 이었다.

우리는 절박한 심정으로 'free wifi'를 외쳤다.

그리고 학생들이 태워준 버스를 타고 떠났다.

핌리코역에서 꽤나 떨어진 빅토리아 역으로 말이다.


마지막 희망으로 빅토리아 역으로 왔지만 우리는 와이파이를 쓸 수 없었다.

free wifi는 맞지만 우리는 외국인 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말 마지막 방법은 전화연결 뿐이었다.

빅토리아역 한구석에서 작은 매점에서 전화를 잠시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

콧수염을 잔뜩 기른 인도아저씨는 초콜렛하나를 집어들며 이걸 사면 동전을 주겠다고 했다.

역시 세상은 공짜는 없다.

별수 없으니 생각에도 없던 초콜렛하나를 사고 꽤나 많은 동전을 받았다.

그 동전을 가지고 한켠에 있는 공중전화에서 계속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은 되지 않았다.

한국과 다르게 영국의 공중전화에서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동전은 반환되지 않는다.

밑빠진 독에 물 붓듯이 동전을 계속 넣을 수도 없고 그래봤자 전화는 연결되지 않으니 절망스럽고 막막한 심정이라 빅토리아역 한구석에 주저 앉아 버렸다.


"우리 이러다 국제미아가 되는게 아닐까.."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며 쪼그리고 앉아있었더니 인도아저씨가 우릴 부른다.

전화를 걸어주겠다고 말이다.

우리가 정말로 불쌍해 보이긴 했나보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소희가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는 또다시 묵묵부답.

인도아저씨가 이 번호가 잘 못된 번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자 우리가 사기를 당한건 아닌가 하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우린 노숙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저씨에게 매달렸다.


"one more Plese!!!! Plese!!!"


아저씨는 직접 전화를 걸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약간 미심쩍었으나 달리 방법은 없었다.

아저씨가 수화기를 든지 채 몇초가 지나지 않아 전화가 연결되었다며 우리에게 눈빛을 보냈다.

갑작스런 희망에 우린 직접 통화하겠다며 수화기를 넘겨달라고 했으나 아저씨는 넘겨주는 대신  두명의  소녀가 너를 기다리고 있으며 이곳은 빅토리아 역이라는 몇마디 대화를 주고 받았고 이내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용은 이러했다.

그와 전화연결이 되었으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땅콩은 기쁨에 찬 얼굴로 연신 thank you를 외쳤지만 나는 그런 친구를 슬그머니 뒤로 잡아끌며 말했다.


"인도사람 믿으면 안되"


이건 인종이나 국가 차별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마 인도를 다녀온 모든 사람들은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인도사람에게 시간약속이란 오늘이 일주일 후고 잠시후가 한달 뒤 인 것과 같으니 말이다.

내가 인도에 있던 2주동안 겪은 바가 있으니 한국도 아닌 머나먼 인도에서는 더더욱 주의를 요해야 한다.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선은 믿어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도 없었다

빅토리아역 입구가 가장 잘 보이는 벽에 기대에 앉아 있자니 이게 뭔일 인가 싶기도 하고 지치기도 하고 벌받는건가 싶기도 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1분이 1시간 같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친근한 동양인의 얼굴이 입구에 들어섰다.


"숙소예약하신 분이세요?"


세상에!! 후광이 비치는 느낌 이었다.

우리는 경찰서에 들어서는 엄마를 만난듯 달려들어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아저씨라고 하기엔 젊어보이는 숙소사장님은 이러한 우리가 황당한 눈치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걸 신경쓸 정신조차 없었다. 그저 국제미아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더불어 다짜고짜 의심부터 한 인도아저씨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고마웠다.

우리는 몇번이나 땡큐를 외치며 사장님과 빅토리아역을 나섰다.

인도아저씨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인도사람 거짓말 잘한다는건 역시 케이스바이케이스인가  보다.

심지어 아저씨가 사라고 요구했던 초콜렛도 엄청 맛있었다.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사장님은 우리같은 경우는 처음본다는 이야기부터 하셨다.

언제 부터 헤매고 돌아다닌건지 여긴 왜 온건지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고생담을 이야기 했지만 24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다녀온것은 절대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정말로 창피했으니까 말이다.

핌리코아카데미 근처를 헤매가 학생들에게 와이파이를 물어봐 여기까지 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정도까지였는데 사장님은 머리를 부여 잡았다.


"Mamamia!" 를 외치며 말이다.


쫄래쫄래 사장님을 따라 드디어 숙소에 안착했다.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다리가 풀려 한참을 짐정리도 없이 바닥에 앉아있었다.


첫날 이었지만 장시간 비행에 지치기도 했고 몇시간만에 진이 빠진 덕분에 나갈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저녁으로 얼큰한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우리의 첫 숙소는 아담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창문을 통해 템즈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는 것이었다.


템즈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영국의 숙소


고생은 좀 했지만 깨끗하고 이국적인 풍경에 우리는 금새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한 방을 쓰게된 동생들과 말 몇마디 나눠보지 못한 채 우리는 금새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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