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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희 Oct 27. 2024

돈을 좇는 사람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회계사가 특정 산업군의 전문가와 함께 재무제표 분석을 통한 통찰을 제공하는 포맷인데, 얼마 전 본 영상은 음악 페스티벌 산업에 대한 내용이었다.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그들의 산업은 파편적이었다.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산재함에도 재무제표를 분석할 만큼 규모 있는 기업은 국내에 단 두 곳에 불과했다. 심지어 두 회사 모두 단 한 번의 공연 흥행 실패도 용납할 수 없을 만큼 빡빡한 재정 상태를 기록하고 있었다. 돈은 그렇게나 벌기 힘든 산업이면서 업무강도까지 ‘제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라고 했다. 


궁금했다. 그들은 왜 돈도 되지 않는 일에 큰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뛰어든 것일까? 그리고 동시에 남 일 같지 않았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를 바라보며 애초에 노력에 비해 큰돈을 벌기 어려운 직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들과 나는 비슷한 점이 있어 보였다.     



고대하던 상담대학원 합격 후, 꿈에 부풀어 있던 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 2년 동안 대학원 다닐 등록금 동기들이랑 다 같이 모아서 지금 그냥 학교 앞에 가게 하나 차리는 게 상담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어.     


우스갯소리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정말 그 정도는 각오하고 와야 했다. 아니다, 각오하고 왔다 해도 크게 달랐을까.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투자하는 돈, 시간, 노력, 그리고 내가 받는 대우와 금액을 비교해서 저울질할 때마다 머릿속에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은 듯 그 한마디가 반복 재생되었다.     


아무도 강요하거나 속이지 않았지만, 억울한 느낌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심지어 전문상담교사로서 교직 사회에 속한 뒤에도 나의 분통은 가시지 않았다. 먹고살기 급급했던 80년대도 아니고, 상담도 공교육도 얼마나 가치 있는 필수적인 일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몰라주다니! 담임도, 수업도 하지 않는 상담교사는 성과 평가에서 항상 뒷전이었고 이는 낮은 성과급으로 돌아왔다. 내가 얼마나 하드코어한 사례를 많이 맡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열정을 상담에 소요했는지 따위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는 교원 성과평가제도 자체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긴 했으나, 그래도 조직 안에서 나의 노고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애초에 성과급 액수의 단위가 일반 사기업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회는 물론 내가 속한 조직에서조차 나의 업무가 하위권의 평가를 받는다는 느낌은 사기를 꺾기 충분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이 모든 것이 부조리하게 느껴져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직장을 때려치울 만큼 강단 있는 사람은 되지 못했다.     



우선 상담업계와 교사 집단 모두 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상담이 한국에 처음 도입되던 시기에는 종교단체에서 봉사 성격으로 상담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자연스레 정당한 금전적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식으로 굳어진 면이 있었다. 실제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의 경우 상담사 집단의 무신론자 비율이 일반 집단보다 높다고 하지만, 한국은 반대로 상담사 집단의 기독교 신자 비율이 일반 집단에 비해 높게 느껴진다. 교사 집단은 국가를 위해 일하며 청렴한 삶을 요구받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돈 이야기는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은 중요하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으로 나간다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물질만능주의는 곤란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돈의 중요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예전의 나는 돈은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여기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의식주를 해결할 정도’를 20대 초반의 내가 온전히 가늠할 수 있다고 자만한 것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는 상담 선생님께 개업하지 않고(개업 상담은 모객이 필요한 사업의 영역이므로 제외하였다) 조직에 소속된 상담가의 보수가 현실적으로 생활이 가능한 정도인지를 몰라 망설여진다,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상담사의 봉급을 저연봉으로 대표되는 몇몇 직업들에 빗대서 에둘러 설명해 주셨는데, 나 자신이 안분지족의 삶을 추구한다고 착각했던 그 당시에는 이 정도면 혼자 의식주를 해결하기에 여유로울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 부모님 그늘에서 이미 온전한 주거와, 원한다면 식사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나였기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상상이었다. 진정한 경제적 독립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누워서 숨만 쉬고 살아도 어마무시한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30대가 되면서 나와 친구들은 더 이상 1인분에 3,300원짜리 싸구려 대패삼겹살을 찾지 않고 15,000원 받고 종업원이 구워주는 두툼한 삼겹살을 먹게 되었으며, 주전자 하나에 만 원짜리 요구르트 소주가 아닌 한 잔에 만 원짜리 하이볼을 마시게 되었다. 각종 회비, 경조사비처럼 사회생활을 위해 여기저기 내야 할 돈도 많아지고 소비 습관이 달라지면서, 대학교를 졸업할 때만 해도 먹고살기에 넉넉하다고 여겼던 월급은 더 이상 넉넉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봉은 단순히 재화를 구매하는 효용의 가치를 넘어 여러 사회적 상황에서 나의 업무적 능력과 성과를 증명하는 수단으로 여겨진다는 점이었다. 20대 초중반에는 모두가 사회 초년생이므로 고연봉자와 저연봉자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각자 업계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쌓이다 보면 그 차이가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져 비교가 무색할 만큼 다른 액수를 보수로 받게 되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장인을 부러워할 때는 단순히 그가 가진 경제적 풍족함 뿐 아니라 그렇게나 크게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점까지 선망하는 것이다. 이는 곧 내가 또래에 비해 낮은 봉급을 받고 있으니, 직업인으로서의 효용 가치 또한 낮게 인정받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연결되었다. 


상담은 돈이 되기 어렵다.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 내에서 상담은 기업 실적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없는, 그저 지원 부서의 역할에 불과하다. 조직의 목표가 이윤 추구라면 실적에 도움 되지 않는 부서에는 큰 열매를 내어줄 수 없다. 


교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학교는 돈을 벌기 위한 조직이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관점에서 학교는 지금 당장 사회의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없으며 먼 미래를 위한 투자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상담도 학교도 중요하게 여겨져야 옳으나 현실적으로는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종과 업계를 택해야 했다. 가치 있는 물건을 생산해서 이윤을 내거나, 금융회사처럼 직접 돈을 굴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기깔나는 고액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을 돕고 성장시키는 가치를 우선시하고, 보람을 얻고 싶어서 상담을 전공하고 교사가 되었다. 돈보다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으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에서 큰 경제적 보상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었으면서도 남는 시간에 글이나 써보겠다는 나 자신을 보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을 넘어선 가치를 놓을 수 없는 나의 성향은 떼어버릴 수 없나 보다. 정말 돈을 간절히 더 벌고 싶었으면 글을 써보겠다고 배우고 노력할 시간에 부동산 공부나 투자 공부를 한 자라도 더 해야 했을 것이다.      



적자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인디밴드들을 위한 음악 페스티벌을 고집한다는 감독은 유튜브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당장의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연과,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덜 유명하지만 공연은 잘하는 아티스트들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유한다는 가치를 뚝심 있게 지키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길게 봤을 때 언젠가는 경제적인 수익도 따라올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멋들어진 말들 뒤에 그녀는 확신 없는 표정과 조그마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말 그럴 수 있겠죠…?


그녀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겠으나, 응원하고 싶다. 사회의 공공선을 위한 가치를 꾸준히 지키면 언젠가 보상이 따라올 것이라는 그녀의 믿음을, 그리고 나의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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