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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Sep 10. 2018

안녕 낯선 사람 나는 이방인

세상에서 제일 긴 나인 투 식스 

※이 글은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혹시 나 아냐 싶으면 그냥 기분 탓이니 후임에게 잘해주세요. 아쉽게도 사이다는 없습니다. 사이다를 날릴 수 있는 댓글을 남겨주세요.


출근

이미 형성된 '무리'에 홀로 들어가는 건 힘든 일이다. 회사는 학교처럼 1년마다 반이 바뀌지도 않는다. 대학처럼 학기별, 과목별로 인원이 바뀌지도 않는다. 얼마나 오래인지 모르지만 혹은 짧은 기간이지만 무리가 존재한다. 어색한 웃음과 나름 신경 쓴 복장으로 어색하게 문을 두드린다. 첫, 출근.


출근시간 15분 전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출근을 일찍 하는 편인데 대부분 그 시간은 직원들이 없다. 회사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신입의 경우 주간회의가 있는 월요일은 원래 출근 시간보다 늦게 출근하라고 알려준다. 한 회사의 경우는 수요일에 출근하기도 했다. 뻘쭘하게 문 앞에 서있다가 제일 먼저 출근하는 직원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지만 높은 확률로 타 부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선 정리가 덜 된 컴퓨터 앞에 앉아 귀를 쫑긋 세운다. 혹여나 사수가 올까 잔뜩 긴장해있지만 사수는 오지 않는다. 출근 시간이 되자 직원들끼리 인사를 건네는데 내 자리는 벽과 파티션으로 둘러싸여 인사하기도 애매하다. 사수는 언제 오나 여전히 귀만 움찔거린다. 


부장님이 먼저 출근했다. 사수는 아직 감감무소식. 왜 항상 나의 사수는 늦는가. 나와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직원이 급하게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직감했다. '사수'다.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급하게 두드린다. 5분 정도 방치되고 사수의 인사와 함께 간단한 PC 세팅을 마친다. 어색하게 부서에 인사를 하러 돌아다닌다. 전 직원 앞에서 홀로 인사한 인생 최악의 경험도 있었다. 어쨌든 인사를 마친다. 


본격적인 업무에 가기 전 사수는 업무에 필요한 인수인계, 정보들을 제공한다. 여기서 사수의 성격이 보인다. 파일로 완벽하게 매뉴얼을 적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말로만 설명하기 때문에 눈치껏 수첩을 들고 적는다. 무조건 적어야 한다. 안 알려주고 알려줬다고 하는 경우가 매우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한 사수는 파일 순서도 엉망진창으로 넘기고는 알려줬는데 기억 못 한다고 박박 우겼다. 구두로 설명하기 때문에 기록이 남을 리는 전혀 없다. 이건 차후의 일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점심

점심시간이 다가 온 다. 이 회사에 홀로 떨어진 나는 점심 먹을 사람이 사수와 팀 밖에 없다. 내 친구는 신입 첫날 사수가 자신을 두고 팀원들과 밥을 먹으러 가서 혼자 밥을 먹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는 원통해한다. 다행히도 이 사수는 잊지 않고 나를 잘 챙겨 점심을 먹으러 갔다. 메뉴는 대충 정하고 가는 것이 좋은데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사수가 잘 가는 식당으로 안내한다. 첫날 점심이야 말로 tmi 대방출의 시간이다. 나의 주옥같은 상사들 중 상당수는 점심시간 대화에서 성향이 티가 났다. 나는 사람들은 다 좋다고 믿었기에 웃기만 하다가 뒤늦게 '진짜'를 깨닫고 후회했다.


오후 업무 

첫날 오후 업무는 회사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하는 서류를 주고 이해하는데 상당 부분을 쓴다. 한 사수께서는 아무런 자료도 주지 않고 구두로 '이런 업무를 해요~'라고 새로운 업무가 등장할 때마다 말했다. 눈치 보면서 업무 전체를 익히는데 열정을 쏟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리고는 당당히 알려줬다고 뿌듯해했다. 사수는 상사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갖고 있었다. 이미 형성된 무리의 이방인은 나였다. 말해봤자 이상해지는 것은 나라는 걸 알았다. 속시원히 말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겠지.


퇴근

퇴근 시간이다. 아무도 갈 생각을 안 한다. 의자에 본드가 붙었나. 눈치게임을 하나. 오늘 출근한 내가 할 일이 쏟아질리는 거의 없다. 있다면... 10분 정도 머뭇거리며 모니터를 봤다. 사수는 "우리는 자기 할 일 끝났으면 가는 거예요"라고 왜 안 가서 귀찮게 하느냐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냥 퇴근하라고 곱게 말하면 입이 삐뚤어지나 싶다. 그다음 회사부터는 칼같이 퇴근을 시작했다. 경험상 칼퇴 찬스는 지금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입사 2주 차 지옥의 야근이 시작됐다.  


Photo by David Iskand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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