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나는 '중고 신입'이 되었는가
다른 사람들보다 늦은 나이에 첫 직장을 얻었다. 졸업 후 약 일 년 만에 회사에 들어갔다. 그동안 쓴 이력서가 백장 가까이 됐다. 이유조차 알 수 없는 서류 탈락들, 겨우 붙은 면접에서는 번번이 고비. 한 군데 붙은 곳이 있었지만 도저히 갈 수 없어서 포기했다. (그곳은 세전 1600에 반찬 값을 내가 내야 하며, 점심때 내가 직접 쌀로 밥을 지어야 했다.) 그곳을 포기한 후 다시 이력서를 넣었지만 처음처럼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한참이지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합격했다. 급여도 복지도 좋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와 친구들은 그곳이 보통이라며 수긍했다. 그래도 앞에 합격한 회사보다는 훨씬 회사라는 구색을 맞추고 있었기에 다니기 시작했다. 더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직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전 직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야근과 주말·공휴일 업무는 필수였다. ‘설마 그런 곳이 있겠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곳은 존재했다. 생각보다 아주 많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을 이곳에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일이 힘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일도 곧 잘 해나가 나름 인정도 받았다. 그런데 일이 늘어가면서 스스로를 위한 시간이 없어지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 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마음. 작은 여유조차 없어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갈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 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첫 직장을 나왔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났다. 그동안 옷 도 안 사 입으며 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탈탈 털었다.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나는 그리 부유하지 않으므로 유럽 여행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중 직원으로 일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몇십 년 후에나 다시 유럽을 갈 수 있겠다는 믿음에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자세한 유럽 여행기는 나의 다른 매거진 ‘두 번째 유럽’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 한 동안은 무기력하게 지냈다. 그리고 다시 직장을 찾기 시작했다. 전 직종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번 나의 목표는 아예 새로운 직종으로 신입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 본 결과 나와 비슷한 사람을 ‘중고 신입’이라고 칭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확한 뜻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전 직장에 1년 6개월 이상을 버틴 것이 효과는 있었나 보다. 처음보다는 면접이나 취업이 수월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느꼈다. 회사는 신입이지만 경력이 있는 신입을 원한다는 것.
불합격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합격했다. 연봉도 복지도 정상의 궤도에 있었다. 정상인 것이 당연했지만 그동안 수많은 ‘비정상’을 접했던 나에게는 그 체계가 너무나 낯설었다.
출근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렇게 멍청했었나?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었나라는 자괴감에 빠져있다. 내가 수많은 아르바이트와 일을 병행하면서 듣지 못했던 말들을 지금 모조리 듣고 있다. 팀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사촌과 나눴던 대화에서 ‘첫 직장이 제일 좋았다’라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그 말을 연신 부정하고 있다.
앞으로의 중고 신입기는 내 변명과 한탄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그저 나는 이 회사에서 내가 폐가 되지 않길 오늘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