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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 Dec 06. 2016

고래의 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Danny boy. 20161126. By.seohyun

 어릴 적에 나는 내가 고래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물고기 인 줄 알았더니 그 무리에는 낄 수 없는 포유류라는 사실을 안 이후부터 나는 고래와 혼자만의 묘한 동질감을 형성했다.


 나는 늘 고래였다.

 어릴적에도,

 서른하나라는 나이가 된 지금도  나는 고래다. 

 

 이래라 저래라 삶의 방식을 참견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곤 한다. 전쟁터에서 이기고 돌아 온 이순신 장군 정도로 자신을 포장해가며 자기의 인생 굴곡들을 늘어놓고 난 뒤의 결론은 모두 같다.

 "나를 따르라!"

 내 입에 풀칠하는 것과 각종 사건, 사고들에 온갖 신경이 곤두서서 퍽퍽하다 못해 뻑뻑한 내 머리엔 한 가지 생각만 든다.

 '에라이. 아직 세상이 살만 하신가 보네요.'


 모든 이의 상황과 기준이 다르다.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만큼은 합법과 불법, 도덕과 비도덕,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를 빼고는 공통적인 잣대나 기준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도 그들에게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다들 나를 바꾸지 못해서 안달인걸까.

 삶의 방식이 사지선다 문제집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외우면 될텐데. 삶의 방식에 딱히 정해진 정답은 없다.

 어쩌면 모두 물고기인척 하는 고래일지도 모르는데. 종종, 혹은 자주 그들은 내게 물고기가 되라 한다.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냈다. 버티는 것인지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되물었다.


 유치원때부터 스물 아홉 즈음까지 난 딱 서른이 되는 내 생일에 죽고 싶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죽음에 대한 의지도 강했다.

  절친하게 지내던 이에게 5T(오톤) 해머급의 뒤통수를 맞고 패인 마음의 상처는 그동안 얻은 마음의 생채기를 곪아 터지게 만들었다. 그 화()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 꼬이고 꼬인 것만 같은 사건들로 활활 타오르던 죽음에 대한 욕망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 아, 죽고 싶다.

- 왜 살지.


 이 두마디를 읊조리며 나는 일.을.했.다.

 나는 직업란에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글자를 싹싹 지우고, 어린이 율동 동요 컨텐츠의 작가, 카드뉴스 디자이너라는 길고도 장황한 설명을 집어 넣었고, 인간이 사는데 필수적이라는 의식주를 충족시키기 위해 때때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댔다.

 72시간 잠 못자는 일은 부지기수일 정도로 일은 끝이 없었다. 불행일까, 다행일까.  난 죽음 대신 과로를 얻었다.


 나를 상담하던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분이시네요."


 나도 알고 있다.


 죽고싶다는 생각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터 였으나 제대로 시도해본적은 딱 한 번 뿐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호기롭게 2층 베란다에서 뛰어 내렸으나 시멘트 공사 중이던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음 날 공사 하던 아저씨가 시멘트에 누가 이따위 장난을 쳤느냐고 궁시렁 대던 기억이 난다. 내 머리는 혹 하나 없이 멀쩡했으나 그 시절 도로엔 내 흔적이 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없어져 버렸겠지만 내 기억속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이후로는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은 유서 때문이었다.

 새벽 4시의 감성 즈음으로 써놓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유서를 10년이 넘게 찢고, 찢으면서 내가 기형도나 존레논이 되기 위해선 한참 더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책을 읽고 글을 쓰자!'


 내 자살 시도는 늘 이렇게 엄청난 학구열로 결론이 났다. 뜬금없이.


 스물아홉이 되서야 나는 만족할 수 있을 만한 유서를 쓸 수 있을 때까지,로 내 생명을 연장했다.


 서른 한살의 가을.

 한 여름에 친한 이에게 맞은 뒤통수는 아직도 회복이 되지 않았고, 사회 생활을 하며 얻은 마음의 생채기들과 질병은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추석을 맞이하여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듯 부모님 집으로 짐을 싸들고 내려갔다.

 

 한 여름밤의 악몽이 끝났다.

 라고 끝맺을 줄 알았겠지만.

 새로운 악몽이 시작 되었다.

 

 나는 아직도 죽고 싶다.

 하루에도 여러번 상상 속에서 생(生)과 사(死)를 오간다.

 그러나 늘 악몽의 연속인 내 삶 속에서 나는 버티는 방법을 배워간다. 늘 해피엔딩을 꿈꾼다.

 사실 유치한 유서 따위는 핑계에 불과하다.

 버티고 버텨서 해피엔딩을 보고 싶것 뿐.

 딱 그것 뿐이다. 대통령이 되겠다거나 지구 정복이나 우주 정복 같은 엄청난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그 분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대통령 할 수 있을 것만 같지만서도) 때로는 작고 사소해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커다랗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버틸 수 있으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떤 파도도 헤쳐나갈 수 있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는 그 말처럼

 버티다보면 지나간다.

 그렇게 믿는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 흔하디 흔한 한마디.

 내게는 너무도 절실했고, 절실한 그 장면.

 고래는

 그래서 오늘도 어둠 속을 표류한다.


 서른 한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곧 서른둘.

 서른하고도 두살에는 어떤 바다를 만나게 될까.

 나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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