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잊혀지고 '나'만 남은 자리
눈 내리는 날의 보리수/ 20161210
사진을 찍은 것은
눈이 소복이 쌓이던, 햇빛이 쨍쨍히 내리 쬐는
맑은 날이었다.
외로움에 지치고, 숨 돌릴 틈 없었던 달리기에 지쳐서 '무기력증'이라는 욕탕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런 날.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그리고 그 위에 그림을 더했다.
별 것 아닌 그림에 3일을 소모했다. 마음에 불을 끄기 위한 소모전이었다.
아, 결혼하고 싶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뜬금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른 하나라는 나이를 생각하면 뜬금 없지만은 않다. 인스타그램에 종종 올라오는 친구들의 아기 사진이나 웨딩 사진을 보노라면 부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독거노인이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평생 이 외로움을 만성 피로 마냥 달고 다녀야 한다는 것도 지긋지긋 하거니와 썸을 타고, 연애를 하면서 하지도 못하는 '밀당'을 한답시고 소모할 에너지도 이제는 없다.
이 모든 문제와 고민은 '결혼'하면 해소 될 것이란 믿음으로 결론이 난다. 기, 승, 전, 결혼.
늘 결혼이 하고 싶다.
결혼한다고 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 나도 안다. 알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것 뿐.
어둠 속을 끝도 없이 걷고 있으면 이 끝에는 빛이 보일거란 믿음. 환상. 혹은 허상.
궁금하다. 왜 결혼이 하고 싶을까.
현모양처 코스프레에 대한 로망인걸까.
아니면 평생 내 편이 되 줄 사람에 대한 욕망인걸까.
'결혼'을 상상한다.
무작정 내편이 되어주는 남편과의 외롭지 않고, 즐겁고 재밌는 결혼 생활. 예단, 예물 따위 없이 소소하게, 예식장이 아니라 색다른 곳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축하를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결혼식.
귀여운 아이와 알콩달콩 모여 앉은 소박한 밥상.
그러나
한 해 한 해 지나가고,
연애의 끝에서 씁쓸함을 맛보고 나면
나는 점점 더 결혼이라는 목적지에서 멀어진다.
나의 인생 네비게이션은 외쳐댄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벗, 경로를, 경로, 경,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길치의 위력은 이런 쓸데없는 곳에서도 발휘 되나보다.
사랑을 속삭여도 속으로는 늘 떠나감을 준비한다.
끝나버린 연애의 씁쓸한 맛이 마음에 남아서 마음은 늘 텁텁하다. 덕분에 미각을 잃어서 달콤한 말도 달콤하지 않다. 모두 언젠가는 시간의 먼지가 될 말들이니까 곧이 들리지 않는다. 날 진짜 좋아서 얘기하는 건지 의무감인건지 단지 육체적 관계 만을 위한 사탕 발림 인건지, 온갖 음모론이 가지를 뻗는다. 저 말들이 내 결혼식 청첩장이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담겨질 것을 생각하면 슬퍼진다.
이런식으로 하는 연애가 잘 될리가 없다.
달콤하고 행복한 연애를 해도 모자랄 판에 씁쓸하고 텁텁하고, 쓰레기 봉투나 상상하는 건 상대에게도 몹쓸 짓이다.(-서로에게 몹쓸 짓일지도 모르지만.)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은 진리다.
늘 그들은 떠나간다.
그들이 떠나고 나면 눈이 내려 마음을 하얗게 덮는다.
보이지 않아서 괜찮을 줄 알았던 상처들은
봄이 오고 눈이 녹으면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운다. 아프다. 쓰라린 꽃이다.
상처 투성이 마음을 안고 연애와 결혼이 하고 싶다 외쳐댄다.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 허무한 몸부림 이다.
이상하게도 지쳐갈수록 결혼에 대한 욕망은 커져간다. 나도 날 이해할 수 없다.
아, 춥다. 추운 겨울이다.
얼마 전에 만난 어떤 이가 물었다.
"이상형이 뭐에요?"
"만화 책방에서 다른 만화 책을 보면서도 즐거 울 수 있는 사람이요."
"너무 어렵다."
"마주 앉아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요."
어렵다.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간다.
상처는 점점 더 곪아간다.
언제가 되어야 예쁘고, 달콤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은, 아프다.
너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