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자원과 함께 만드는 화음
4년 전 미국에 살던 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공연에 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각종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터라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만, 우리나라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미국 펜실베니아 시골 우리 학교에 와서 공연을 한다니! 그것도 학생 티켓은 15달러라니! 철없는 생각으로 덥썩 티켓을 예약했고 공연장에 가 앉았습니다. 제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귀한 건지도 잘 모른 채.
인생 처음으로 음악 공연에 가 본 터라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시간이 되어 공연의 막이 올랐는데, 저는 다른 공연에 잘못 온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은 아름다웠습니다만 조성진 공연이라고 해서 왔는데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이 보이질 않아서요. 당황스러움을 속으로 숨긴 채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감상했습니다. 의문은 곧 풀렸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수십 분 정도 이어진 후에 박수갈채를 받으며 조성진이 등장했습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 독주를 감상하는데, 사람이 건반을 누르는 게 아니라 건반이 사람에게 가서 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때로는 조성진의 독주, 때로는 오케스트라의 합주가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가 일어서서 열렬히 박수를 치고 있더라고요. 반쯤 홀린 상태로 운전하다가 번뜩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언어로 소통하는 것도 오케스트라와 비슷하지 않을까.
면대면 의사소통은 언어, 표정, 몸짓, 눈빛, 목소리의 톤, 억양, 주변 사물, 환경, 맥락 등이 모두 함께 화음 혹은 불협화음을 만들어 갑니다. 지각을 해서 조심히 회사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상사가 “지금이 몇 시야?” 라고 목소리를 낮춰 물을 때와, 기차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하고 있는 친구가 “지금이 몇 시야?”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을 때, 문장은 같지만 의미는 크게 다릅니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비대면 소통 역시도 언어, 메신저 및 회의 프로그램의 인터페이스, 그림, 스티커, 이모티콘, 온라인 회의 프로그램의 가상배경, 카카오톡의 해쉬태그 검색, 사진, 영상, 챗봇 등이 함께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잘했어” 와 함께 어피치가 하트눈을 하고 입술을 내민 스티커를 붙이는 것과, “잘했어” 와 함께 네오가 우는 스티커를 붙이는 것 역시 의미가 다릅니다. 80바이트의 문자 안에 모든 걸 꾹꾹 눌러써야 했고, 화상회의는 딜레이가 너무 심해서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는 언어의 중요성이 높았습니다. 언어는 정보를 가장 압축적이며 경제적인 형태로 전달할 수 있는 의사 소통 도구니까요. 기술의 발전 덕에 쓸 수 있는 의사 소통 도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납작하던 소통 방식이 좀더 입체적으로 바뀌었고, 동시에 입체적인 정보를 해독해 내고 전달하는 능력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습니다. 오케스트라로 비유하면, 우리는 독주가 아니라 합주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언어라는 한 악기를 잘 다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악기와 합을 잘 맞춰야 아름다운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숨쉬듯이 편하게 쓰고 있었던 의미 생성 도구를 쓰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만약 느껴 보고 싶다면 낯선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보세요. 똑같은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하더라도, 면대면 소통, 메신저 소통보다 전화의 난이도가 더 높은 이유는 사용할 수 있는 의미 생성 도구가 현저히 제한되고 즉시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면대면 및 메신저 소통은 합주에 가깝습니다만, 전화는 독주에 가깝습니다. 음성언어, 목소리의 톤, 크기, 속도 정도 외에는 쓸 수 있는 도구가 없으니까요. 우리의 의사소통 세계는 입체였는데, 전화를 하게 되면 납작해집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화 공포증이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젊은 층이 살아온 세계는 입체적 의사소통 세계입니다. 굳이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스마트폰 앱의 인터페이스를 통해 음식 배달을 시킬 수도 있고, 사람과 소통한다 하더라도 굳이 음성언어를 통할 필요 없이 자신에게 편한 소통 도구를 이용합니다. 입체적으로 소통하다가 납작하게 소통하려면 불편한 게 당연합니다. 항상 합주만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독주를 하라고 하면 어색하겠죠.
언어는 혼자 존재하지 않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의미도구와 함께 얼기설기 엮여서 의미를 만들어갑니다. 같은 악보라도 누가 어떤 악기로 어떻게 연주하는지에 따라 곡의 느낌이 크게 변하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언어 사용 역시 그렇습니다. 분명히 같은 말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도구와 함께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크게 바뀝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언어와 다른 의미 생성 도구를 여럿 엮어서 뜨개질하듯 의미를 엮어갑니다. 우리는 이 의미 생성 체계를 창의적으로 써 가며 소통하고요. 이 개념을 복합양식성(multimodality)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소통할 때는 언어도 다른 의미 도구들도 모두 친근합니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소통할 때는 언어도 새롭고 의미 도구도 낯섭니다. 외국어 자체도 어렵지만, 지금까지 한국어로 만들어 왔던 복합적 의미 생성 체계를 다 부수고 다시 한 땀 한 땀 쌓아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 화자가 영어로 채팅을 할 때 의외로 큰 불편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ㅋ를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할 때입니다. ㅋ의 연타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이 분명히 있는데, 이 코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간의 관계에서는 쓸 수 없으니 답답해집니다. 일본어는 w, 태국어는 5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상대방이 이 기호의 의미를 모르면 써 본들 의미가 없습니다. 답답함을 이모티콘이나 스티커, gif 사진 등을 보내면서 풀어보려고 해도 ㅋ만이 나타낼 수 있는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하기는 함듭니다. 외국어로 어떻게 표현해 보려고 해도, 개그를 설명하면 더 이상 웃기지 않듯이, 웃긴 감정도 설명하기 시작하면 더 재미가 없어집니다. haha 정도의 짧은 말로만 대체하게 됩니다. 그래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아 찜찜합니다.
다른 예로,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 해외에 나가 비 아시아권의 사람을 처음 만나 “당신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를 표현하려고 할 때, hello, nice to meet you를 외치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을 흔들면서 고개를 숙이게 될 때가 있습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명확하고, 써야 하는 단어도 정해져 있는데, 몸 속에서 두 의미 체계가 충돌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몸짓을 만들어냅니다. 언어도 의미 도구도 익숙하지 않을 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외국어 중에서도 영어를 배워 소통하는 거 특히 더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영어로 소통하는 공간이 보통 미국, 캐나다, 한국 등 단일한 문화에 속해 있는 게 아니라, 각양각색의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제3공간(third space)에서 소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제1언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어지만, 가장 많은 사람이 제2언어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입니다. 영어는 모국어로 사용되는 경우보다 세계인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셈입니다. 제3공간에는 정해진 규칙이나 규범이 없습니다. 영어와 기존의 의미 도구를 함께 사용하며 그 자리에서 규칙과 규범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영어 의사소통을 위해 요구되는 능력은 의미 도구 사용 능력뿐만 아니라, 대화 상대와 함께 그 자리에서 어느 문화나 장소에도 속하지 않는 규칙을 만들어가는 유연성도 필요한 셈입니다.
우리는 영어를 쓰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새로운 의미 도구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의사소통 질서를 만들고, 다시 해체하고, 재구성해 갑니다. 이 과정은 독주가 아니라 합주입니다. 영어 단어, 문법, 발음, 구문 등을 단순히 외우기만 하면 불완전한 독주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항상 주변의 자원을 십분 활용하고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어야 합니다.
복합양식성의 시대, 삶 속에서 영어 의사소통을 시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어는 정복해야 될 대상이나 넘어야 할 산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 사고 체계는 이미 한국어로 견고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영어학습은 한국어 체계를 몽땅 무너뜨리고 영어 세계를 다시 짓거나, 한국어 체계와 완전히 별도로 영어 체계를 다시 쌓아올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미 튼튼하게 지어온 한국어 체계와 엮어서 영어 체계를 지어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속에는 언어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각종 의미 자원과 유연성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한국어, 영어, 모든 의미자원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