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현금을 안 쓰는 시대라지만, 주머니 속에 3천원은 품고 다녀야 하는 계절이 왔다. 차가워진 손과 위장을 따뜻하게 녹여줄 겨울간식을 사기 위해.
거리를 걷다 보면 포장마차 멀리서도 어떤 겨울간식을 팔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부스러기를 긁어내어 탁탁 털어내고 있는 곳은 붕어빵집, 동글동글한 빵이 철판을 둘러싸고 있으면 국화빵집, 봉투에 무언가 자잘한 걸 많이 넣고 있는 게 보이면 땅콩빵집. 기계가 철커덩 철커덩 하며 모든 과정을 돌리고 있다면 호두과자. 반죽과 계란 한 판이 층층이 쌓여 있으면 계란빵집. 100미터 밖에서도 냄새로 느껴지면 델리만쥬.
최근에는 찍먹 부먹, 민초 반민초를 넘어서서 겨울간식에도 취향 전쟁의 서곡이 울려퍼지고 있다. 팥붕과 슈붕의 대결이다. 아니! 팥붕만 붕어라고 생각한 나의 세계가 와르르 깨지는 순간! 언제나 유행의 최전선을 달리는 한국인들은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고 겨울간식의 고정관념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팥붕 슈붕을 넘어서 고구마붕, 피자붕, 흑임자붕, 완두앙금붕, 크림치즈붕 등등. 한국에서도 타이야끼(붕어빵처럼 생겼지만 좀더 두꺼운 일본의 겨울간식)를 파는 집도 있었다. 그야말로 붕어빵의 세계는 국경을 넘어 무궁무진하게 넓어지고 포스트모던하게 해체되고 있었다. 이제는 겉만 봐서는 팥붕인지 슈붕인지 흑임자붕 타이야끼인지 알 수 없는 시대가 와 버렸다. 팥붕파에게는 사문난적의 시대겠지만, 포스트모던 붕어파에게는 그야말로 “물 만난 붕어”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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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 논쟁을 인터넷 안에 남겨두고, 후쿠오카에서 열리는 일본의 영어교육학회에 갔을 때였다. 크로아티아 출신, 박사학위자 영어 선생님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를 발표하고 있었다. 면접에 갔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일본인 남편 어떻게 만났습니까?” “저녁 7시에 수업을 맡을 수도 있는데 가족이 싫어하지 않나요?” “당신 나라는 언제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했습니까(크로아티아는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적이 없다)?” “일본인 남편의 부모를 간호할 건가요?”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도대체 21세기에 면접자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인가! 경악하면서 학회장을 떠났다. 그 다음날, 발표자 선생님을 호텔에서 딱 마주쳤다! 너무나 반가운 표정으로 뛰어가 영어로 말을 걸었다. “헬로 굿모닝! 어제 너의 발표에 있었던 미소킴이라고 해! 너랑 너무 얘기하고 싶었어!”
선생님은 영어로 단숨에 답했다. “오마이가쉬나도너랑너무이야기하고싶었어근데나지금공항가야하니까너도공항가는길이면같이걸으며얘기할까!” 그런 후에 덧붙였다. “아! 니홍고 다이죠부데스까(일본어 괜찮아요)? 어느 학교 학생이에요?”
나는 분명히 영어로 말을 걸었고, 학회는 전부 영어였는데! 왜 제 겉모습만 보고 영어 못하는 사람이라 넘겨짚고 일어로 얘기하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저는 일본인처럼 보이지만 한국인인데! 또 학생처럼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미 가르친 경력만 부풀려서 8년차고 저도 선생님처럼 박사학위 갖고 있는데 학생이라니요! 저는 교수입니다!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지만, 상대의 오해를 정중히 정정했고 계속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선생님께서 얘기하셨다. “혹시 D 알아? D의 라스트 네임이 코리안인 거?” “응? 그 친구 라스트 네임이 코리안이라고?” D의 성은 김, 이, 박, 사공 같은 한국인 이름이 전혀 아니었다. 의아해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덧붙이셨다. “아니, Korean이 아니라 Croatian! 내가 Croatian이라고 하면 다들 Korean이라고 알아듣더라고 하하!”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가 무슨 붕어인지 계속 다시 발견해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일본의 학생 타이야끼라고 생각했겠지. 실제로는 한국인 선생 붕어빵이었는데. 나도 /k/ 음소로 시작하는 단어는 Korean일 거니까, D선생님이 K-붕어라고 생각해 버렸지 뭐야. 실제는 C-붕어였는데.
언어조차 팥붕들의 언어에 맞추어져 있어서, 우리는 우리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조차도 갖지 못했다. 팥붕의 세계에서, 팥붕과 조금 다르게 생겼고 조금 다른 언어를 쓰는 우리는, 서로를 반쯤 설익은 팥붕이라고 생각해 버렸는지도. 우리의 다름을 세심히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던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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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는 팥붕들의 세계였다.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여권을 가지고, 금발과 푸른 눈을 하고 영어를 가르치는 팥붕들의 세계. 우리는 팥붕과 같은 언어를 쓰고는 있지만 팥붕이 될 수는 없었다. 팥붕이 아닌 자, 자신을 설명할 지어다. 팥붕을 납득시킬 책임은 비-팥붕에게 있나니. 감히 팥붕에게 반기를 들다니 무엄한지고.
비-팥붕으로 태어난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거였다. 어쩔 수 없이 설명한다. 우리가 가르치는 일본 학생들도 팥붕이 아니지 않습니까. 팥붕의 언어를 외국어로 배운다고요. 그리고 팥붕의 언어는 지금 슈붕, 고구마붕, 피자붕, 완두붕, 국경을 넘어 저어기 타이야끼까지, 모든 붕어라면 다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비-팥붕이라도 팥붕의 언어를 가르칠 수… 아니 제 말이 끝날때까지만이라도 좀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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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가지 틀이 나를 찍어내었다. 마치 100미터 밖에서도 냄새를 맡으면 델리만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내 얼굴만 100미터 밖에서 본 사람들은 내가 당연히 어린 여자일 거라 넘겨짚고,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어린 여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했다. 손녀나 딸이 생각난다며 너무 예쁘게 대하거나, 반말을 하거나, 수상한 목적을 갖고 말을 걸거나. 동그랗게 나열된 모습만 봐도 국화빵이라고 넘겨짚는 것처럼, 내 명함만 본 사람들은 내가 등장했을 때 나를 찾는 걸 어려워했다. 킴 교수님 제자니? 아니요 제가 킴인데요.
팥붕의 세계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타이야끼의 세계로 가 본다. 아 여기는 그나마 내가 있을 곳인가? 여기서도 “너는 타이야끼가 아니잖아!”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 여기도 아니구나. 짐을 싸서 계속 가 본다. 델리만쥬의 세계, 국화빵의 세계… 그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멀리서 봤을 때는 타이야끼처럼 보여서 집어들어 봤더니 타이야끼처럼 두껍지 않은 붕어빵이었고, 당연히 팥붕이라고 생각해서 갈라 봤더니 노란색 크림이 흘러나와서 슈붕이구나! 하고 깨물었더니 치즈 크림 맛이 나는, K-치즈붕어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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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기 힘든 붕어들. 슈붕과 치즈붕과 완두붕과 자색고구마붕에 대해 생각한다. 메뉴판 없이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붕어들. 메뉴판을 내밀어도 자신의 섬세한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붕어들. 아니 저는 완두붕이긴 한데 완두앙금팥붕어라고 혹시 들어보셨나 모르겠어요. 저는 속이 초록색이긴 한데 완두붕이 아니고 보성녹차붕이에요. 저는 슈크림이 들었긴 한데 슈붕이 아니고 슈크림타이야끼에요. 우리 붕어들은 서로를 이해하기도 어렵다. 메뉴판 맨 앞에는 항상 팥붕이 있으니까. 우리가 쓰는 언어도 팥붕의 언어니까.
넘겨짚지 않는 것. 붕어 모양만 보고 당연히 3개 1000원어치 팥붕이라고 짐작해 버리지 않는 것. S대학 출신이라고 당연히 공부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달콤한 크림 냄새에 델리만쥬를 덥썩 사버린 이후 맛이 냄새만 못하다며 실망하지 않는 것. 금발 머리를 하고 있길래 당연히 미국인이라 넘겨짚고 바이든과 트럼프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
읽히기 힘든 붕어로서 생각한다. 우리는 사문난적이 아니라고. 팥붕은 팥붕 그대로 고유하듯, 우리는 우리 붕어 그대로 고유하기를. 부먹과 찍먹, 민초와 반민초, 모두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 비-팥붕도 존재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기를. 물 만난 붕어‘들’로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