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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 Kim Apr 20. 2022

이론을 몸으로 살아내기

이론-실천, 관념-경험, 정신-몸 등의 이분법을 부수기


책에도 썼지만, 2016년 박사과정 때의 어떤 날, 학과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는 아마 제 교직 커리어 내내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때 해주신 말이, 우리는 이론을 “들고” 가서 현장에서 “쓰는”게 아니라는 거.




해당 글을 썼던 때는 작년 중반이어서 잘 몰랐는데, 작년 후반기를 지나오면서 더 알게 된 게 있습니다. 이론은 머릿속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몸과 존재하는 거 아닐까? 이론-실천, 관념-경험, 정신-몸으로 뚝뚝 잘라서 생각하면 이미 나뉜 프레임 안에서 분별하여 생각하게 되는데, 아니 사실은 그 모든 게 다 몸과 함께 (몸 ‘안’이 아님) 있는 거 아닐까? 하고요…


혼자 생각하게 되는 건데, 책에서 이론을 읽고 동료와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쓰는 그 모든 순간 순간이 몸으로 그 이론을 잘근잘근 씹어 먹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한번 이론을 몸으로 씹어 먹은 사람은 무엇을 실천하게 된다고 해도 예전과는 다르겠죠. 몸이 변했으니까. 몸이 자랐으니까. 얼마 전에 <장애학의 도전>의 첫 부분을 읽었습니다. 처음 부분부터 선 위치에 따라 시선이 달라지는 걸 도식으로 나타냈어요. 선 자리에 따라, 눈의 높낮이에 따라 보이고 감각하는 게 완전히 다릅니다. 같은 튤립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키가 저보다 큰 제 친구(적록색약입니다)는 노란색의 꽃봉오리 윗부분을 보고, 저는 붉은색 꽃봉오리 아랫부분을 보는 거죠. 물론 같은 튤립입니다만, 자신의 위치 및 감각해온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죠. 


무언가 이론을 계속 읽고, 생각하고, 씹어먹고, 나누고, 문제의식을 가져보고, 경험으로 풀어보고 한 사람들은 이 경험치가 쭉쭉 쌓여오는 거 아닌가? 의식을 고양시킨다는awareness-raising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중요한 건 의식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살아내다 보니 삶에서 접한 모든 것들이 재료가 되더라고요. 14시간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라푼젤, 동료 언니가 알려주어서 보았던 유튜브 채널, 출퇴근길에 들었던 라디오, 어디서 지나가듯이 들은 노래 등등. 이 모든 게 수업 자료가 되었습니다. 뭔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삶 안에 도서관, 박물관, 영화관 등을 차곡차곡 쌓아 놨다가 하나씩 꺼내 쓰는 거 같습니다. 지향하는 방향으로 계속 몸이 끌려 가더라고요. 예전에 그냥 재미로 보았던 것들도 다시 해석하게 되고요. "내가 너무 편향된 자료만 쓰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뭐...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학생은 이 교수 수업만 듣는 게 아니라는 거... 다른 수업에서/다른 학기에서 또 많은 것들 접하고 있겠죠... (무책임)



경험이 하나하나 다 모여 수업도 실천도 만들어가는 거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특히 가르치는 사람은 뭐든지 하나 적성이 없는 걸 끈질기게 배우는 게 좋은 거... 같습니다... 예 저는 취미발레 7년차인데 전공/준전공자 고인물들과 수업을 함께 들어서 수요일 밤마다 항상 초보자 및 재능 없는 학생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더라고요...예.....


그리고 이 모든 건 일단 교사/활동가 자신에게 여유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 학기는 4학점짜리 수업이 하나 빠져서 정말 여유있는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지난 학기는 너무 스트레스가 심했어서 어떤 무례를 접하면 "왜 저래 아 다 때려치고 싶다" 같은 생각부터 들었는데, 여유가 생기니까 심호흡 한번 하고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자신을 챙기는 것 너무나 소중하고... 교사/활동가/직장인 등등의 셀프 챙김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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