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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Jul 12. 2016

PB&J 크럼블 바

고소한 땅콩버터 사이로 달콤함이 스며들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분주하게 버터 바르는 소리가 아침을 연다.


이른 아침,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서의 하룻밤은 고단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간단한 채비를 마치고 꿈틀꿈틀 이층 침대의 사다리에서 내려온다. 아니 뛰어내린다는 말이 더 옳은 표현인듯하다. 드디어 땅을 밟은 나는 간단하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방을 나선다.


'호스텔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조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먹자'라는 주의인 나는 눈을 뜨자마자 시간 맞추어 부엌으로 내려오곤 했었다. 부엌문을 열고 들어서면 슬금슬금 식빵 봉지 더미로 다가간다. 마트표 특유의 그 얇디얇은 식빵 두 쪽을 꺼내 토스터기에 집어넣는다. 부엌을 기웃대며 기다리다 보면 띵! 하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고소한 토스트 냄새가 풍겨온다. 재빠르게 노릇노릇한 토스트를 주워 담고 나이프를 든다. 그리곤 나도 사각거리는 합주의 대열에 들어선다.


여행 중에는 먹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에게 관대해지게 마련이다. 특별한 이 순간만의 특권이랄까? 내게 주는 특권을 발휘해 버터를 한 뭉터기 관대하게 올려준다. 그리곤 녹아내리는 버터를 나이프로 펴 바르는 작업에 몰두한다. 갓 구워진 바삭한 토스트와 나이프와 만나 까슬거리는 그 소리. 조용한 아침, 부엌에 울려 퍼지는 그 사각거리는 버터 바르는 소리가 나는 너무 좋다.

여행자였던 내가 너무나도 그리워진다.


땅콩 크럼블 재료를 준비한다. 사진엔 설탕이 빠졌다.
땅콩을 잘게 썰어준다.
크럼블 형태가 될 때까지 손으로 비비듯 섞어준다.
마지막으로 땅콩을 넣고 섞는다.

내가 처음으로 배낭여행, 즉 온전히 내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여행을 떠난 것은 4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그 해 여름의 여행은 급작스럽게 정해졌다. 그 시절의 나는 용기가 부족했던 학생이었다. 교환학생 신청을 준비하다 홀로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원서조차 내지 않았으며(물론 됐을 거라는 보장은 전혀 없었다.) 늘 외국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할 뿐 배낭여행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한 번 그려보지조차 않았던 작은 나였다.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은 동요했고 여행을 떠나게 되었었다. 나의 마음에 불을 지핀 것은 우리 언니였다. 대학 진학 후, 타지에서 사촌언니와 생활하던 언니는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사촌언니의 여파로 여행을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나에게는 꿈결 같은 생각에 불과하던 여행이라는 것이 점차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고 어느새 우리는 비행기 표를 끊었었다.


땅콩버터 케이크 재료 준비
완성된 버터 혼합물에 가루류를 넣고 섞은 뒤, 우유를 넣고 마지막으로 섞는다.


우리는 돈을 아끼기 위해 4, 6인실, 많게는 10인실까지 하는 호스텔에서 숙박했고 총 7개의 호스텔에서 여행자의 밤을 보냈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우리들은 조식이 포함되어있는 호스텔을 선호했고 눈을 뜨자마자 부엌에 내려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물론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저렴한 호스텔에 묵었던 터라 토스트와 시리얼이 기본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 버터란 아주 희귀한 것이었다. 아주 가끔씩 팬케익을 해 먹겠다며 혹은 파스타를 해 먹겠다며 조금씩 사는 정도였다. 그런데 호스텔의 부엌에는 버터, 잼, 땅콩버터 그리고 누텔라 등이 거대한 통째로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마다 '여행 중이니까, 돈에 포함되었으니까, 매일 이렇게 먹지는 않으니까' 하는 갖가지 이유를 붙여 버터를 듬뿍 바르고 잼을 듬뿍 발랐었다. 호스텔에서의 아침이 하루씩 늘어갈수록 내겐 '아침엔 토스트'가 익숙해졌고 점점 버터를 바르는 손놀림도 날렵해졌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마지막 조식을 먹을 때 내 귀에는 버터 바르는 소리가 아련하게 울려퍼졌고 우리는 얘기했었다.


"이 버터 바르는 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 같아."


크럼블 바를 완성시킬 준비
케이크 반죽을 틀에 담고 평평하게 펴준다.
젓가락으로 휘져어진 딸기잼
마지막으로 땅콩 크럼블을 얹어준다.
오븐에 들어갈 준비 완료


토스트라곤 늘 딸기잼을 바르거나 기껏해야 포도잼 정도를 발라먹던 내게는 이것저것 잔뜩 바르고 또 바르는 외국인 여행자들이 무척이나 신기했었다. 호스텔에서는 여러 명이 한 부엌에서 식사를 하므로 몇 개 있는 토스터기를 사용할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나는 내 차례를 기다리며, 그리고 빵이 다 구워지길 기다리며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을 힐끔거리곤 했었다. 하루는 금발 머리를 찰랑이는 한 여자를 보게 되었고 홀린 듯 그녀의 손놀림을 바라보았었다. 그녀는 따끈한 토스트 양쪽에 버터를 듬뿍 발랐다. 그리곤 한쪽 빵에는 딸기잼을 덧바르고, 나머지 한쪽에는 땅콩버터를 덧바르기 시작했다. 그 작업을 마치자 그녀는 그 두 빵을 포개었고 사뿐히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처음에 나는 너무 의아했다. '땅콩버터랑 잼을 같이 먹다니? 과연 그게 맛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를 따라 만들어 먹어본 그 순간 이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토스트는 땅콩버터와 딸기잼 토스트가 되었다.


이후, 이 조합을 영어로 피넛버터 앤 젤리 (Peanutbutter&Jelly;PB&J)라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짭쪼름한 땅콩버터와 달콤한 잼이 만나 최고의 맛을 낸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이 쓰이는 말인 단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PB&J 는 북미 지역에서 아주 인기 있는 맛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흔하게 먹는듯하다. 영국 유투버인 cupcakejemma나 다른 유투버들 또한 PB&J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토스트 이외에도 땅콩버터와 딸기잼을 사용해 컵케이크를 자주 만들곤 했는데, 프로스팅이 귀찮을 때면 크럼블을 얹어 바 형태(브라우니처럼 납작한)로 만든다. 땅콩버터 향이 가득한 부드러운 케이크 위에 달콤한 딸기잼을 얹고 마지막으로 땅콩을 듬뿍 넣은 크럼블을 뿌려주면 완성이다. 포슬한 식감의 PB&J 크럼블 바는 우유 혹은 커피와 함께 먹으면 아주 좋다. 부드러운 케이크 한 입이 들어가기가 무섭게 또다시 포크질을 하게하는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


완성된 PB&J 크럼블 바


RECIPE

(20X20cm 사각틀 분량)


땅콩 크럼블 재료

통밀가루 40g

간 땅콩 20g

비정제 설탕 20g

무염버터 25g, 부드럽지만 찬김이 있는

땅콩 50g


땅콩버터 케이크 재료

박력분 65g

통밀가루 70g

비정제 설탕 50g

백설탕 20g

무염버터 125g

계란 2개

베이킹파우더 1/4ts

우유 1Ts

땅콩버터 50g

딸기잼 3~4Ts


1. 틀에 식물성 기름을 바르고 유산지를 깔아 준비한다.

2. 땅콩을 잘게 썰어준다. (토핑용이므로 기호에 맞게)

3. 부드럽지만 아직 찬김이 남아있는 버터를 잘게 썬다.

4. 볼에 썬 버터, 통밀가루, 간 땅콩, 비정제 설탕을 넣고 손으로 비비듯 섞는다.

5. 3이 크럼블 형태가 되면 썬 땅콩을 넣고 섞어준 뒤, 냉장고에 보관한다.

6. 다른 볼에 부드러운 실온 상태의 버터와 땅콩버터, 설탕을 넣고 휘핑기로 크림화한다.

7. 버터 혼합물이 부드럽게 섞이면 실온 상태의 계란을 1개씩 넣고 잘 섞는다.

8. 6의 혼합물이 잘 섞이면 밀가루, 베이킹파우더를 체에 쳐 넣고 스패츌라로 접어 올리듯 섞는다.

9. 틀에 반죽을 담고 평평하게 펴준다.

10. 평평하게 핀 반죽 위로 군데군데 딸기잼을 조금씩 떨어트린다.

11. 젓가락을 사용해 딸기잼을 살살 휘저어 케이크 반죽과 섞이도록 해준다.

12. 만들어둔 크럼블을 반죽 위해 흩뿌려준다.

13. 180도로 예열된 오븐에 22분 정도 굽는다.



고소한 땅콩 냄새 사이로 달콤한 잼의 향기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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