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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6. 2021

나의중동여행기51_가자 거북이 보러

아흐메드씨 잘 부탁해요

창밖으로 보이는 바다

물놀이를 마치니 주인장이 근처의 작은 뷔페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뿔뿔이 흩어졌던 일행이 자리에 앉자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됐다. 주로 중동 어느 국가를 여행했는지, 오만엔 어떻게 오게 됐는지 그런 이야길 나눴다. 50대로 보이는 라틴계 부부는 이집트에서 먹은 낙타우유 초콜렛의 맛이 어떠한지를 실감나게 설명해 모두를 웃겼다.

"이 푸딩을 보니까 낙타우유 초콜렛이 생각나네"라고 라틴계 부부가 말했다.

배부르고 등도 따수워지면서 갑자기 무리와 이탈하는 게 무서워졌다. 혼자 먼 거리를 이동하려니 걱정이 밀려왔다. 이대로 그냥 차에 실려 무스카트로 돌아갈까?


하지만 산란하는 거북이를 보는 건 오만에 올 때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었다. 갔는데 거북이를 못 보는 건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아예 가지도 않는 건 아쉬웠다. 나는 용기내어 관광상품 가이드에게 여기서 헤어지겠노라 말했다. 옆에 있던 일행들이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행이 봉고를 타고 떠나고 홀로 식당 로비에 앉아 있는데 식당 직원이 택시를 불러줄지 물었다. 계곡이 있는 티위에서 거북이 생태구역 라살진즈까지 가는 길은 약 100km 거리다. 서울에서 천안 정도 되는 거린데 택시를 탔다간 와장창 깨지고 말 것이다. 시외버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었다. 이런 차량 중심 국가 같으니.

차로 1시간 반 거리. 버스는 없다

식당 직원은 내가 망설이는 동안 이미 택시기사를 한 명 불렀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쪼그만 남자아이 손을 잡은 중년의 남자가 "하이" 하고 다가왔다. 아흐메드라는 이름의 택시기사였다.


그는 거북이 생태구역 라살진즈까지 태워주겠다며 15리얄(4만5천원)을 불렀다. 콜택시로 서울~천안 거리를 가는 것치고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이스라엘에서 내내 버스 타고 다니던 나로선 아무래도 좀 비싸게 느껴졌다.

귀여운 아흐메드의 아들

차라리 길가로 나가서 오는 택시 잡고 흥정을 할까. 잠시 고민했으나 마음을 접었다. 여자 혼자고 돌아가야 할 집과 직장이 있다. 대학생 때처럼 궁상맞게 굴지 않기로 했다. 아흐메드는 아들과 함께니까 다른 택시기사보다도 안전할 것이었다.


"오케이. 갑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흐메드가 내 짐을 싣고 냉큼 차에 올라탔다. 아흐메드의 아들이 나를 보고 신기한 듯 눈을 깜빡였다.


다행히 아흐메드는 좋은 사람이었다. 오만에서 가이드로도 활동한다는 아흐메드는 중간중간 차를 세워 배 만드는 목공소와 낙타 키우는 막사, 염소 장 등에 데리고 가 줬고 그의 아들은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질을 한움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오가는 길에 꿀 섞은 빵과 밀크티를 마시면서 밖을 바라보니 경치가 그만이었다. 100km를 그렇게 내리 달렸다.

자 조개 너 가져!
길가의 표지판
메에ㅔㅔㅔ
꿀빵과 밀크티
이런 길을 끝없이 달렸다
벽돌로 쌓은 막사에 사는 낙타

거북이 생태구라살 진즈에 도착했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체험시간이 오후8시였으므로 시간은 충분했는데, 문제는 숙소였다.

라살진즈 근처에 있는 호텔을 알아보고 온 건데 막상 오니 그 호텔이 어둑어둑하니 불이 다 꺼져있었다. 아직 오픈하지 않은 호텔인데 인터넷 사이트만 예약이 되는 것처럼 해 두었던 모양이다.

낭패였다.

라살진즈 거북이 생태구역에 도착했다

아흐메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를 위한 숙소를 알아봐 줬다. 가족들과 저녁식사할 시간이고 서둘러 돈만 받고 갈 수도 있었을텐데 그에게 고마웠다.


라살진즈 내부에 딸린 숙소는 이미 다 예약이 차 있어서 차로 50분 거리에 있는 플라자호텔에 가기로 했다. 아흐메드가 라살진즈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그가 일이 끝나거든 나를 호텔에 태워다 주기로 약속했다. 사실 아흐메드의 친구일지라도 처음 만나는 사람의 차를 타고 가는 건 불안한 일이었지만 내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아흐메드 친구의 일은 오후11시가 넘어야 끝나므로 나는 8시에 시작하는 투어를 마치고 그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같이 가기로 했다.

괜찮은 호텔은 1시간 가까이 차로 나가야 했다

사실 그 때 나는 여차하면 거북이를 보면서 바다에서 밤을 샐 생각이었는데, 해안가의 밤 기온이 얼마나 빨리 떨어지는지 생각하면 정말 무모한 계획이었다.

그날 아흐메드가 친구에게 나를 태워가라고 부탁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해안가에서 덜덜 떨며 노숙하다 심한 감기에 걸렸을 것이다.


아흐메드에게 고맙다며 돈을 건네자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차에 탔다. 그새 정이 든 꼬마도 차 안에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후8시가 될 때까진 밖에서 별을 구경하며 놀았다. 거의 사막 한가운데나 다름없어 밤하늘 별이 쏟아질 듯이 많았다.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완전히 어두워진 라살진즈

투어가 시작될 때쯤 로비로 돌아갔는데 그새 거북이투어를 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이상하게도 거의 100명 넘는 사람들이 와 있었는데 동양인은 한 명도 없고 거의 다 백인들이었다. 이스라엘 교환학생의 데자뷰인가. 그들 무리 속에 혼자 있으려니 어쩐지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새까만 밤바다를 걸을 땐 가이드 목소리에 의지해 그를 잘 따라다녀야 했다. 걸으면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빠지기 때문에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일행을 놓칠 위험이 있었다. 가이드가 자기 앞으로 비추는 손전등만 보고 쉴새없이 걸었다.


가이드 가까이 붙어 있으면 설명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고 진귀한 것을 구경할 가능성도 더 크기 때문에 나는 그의 옆을 사수하려 애썼다. 옆에 있던 작은 여자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그를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졸지에 우리는 가이드 옆을 두고 눈치싸움을 벌이는 사이가 되었다.


가이드는 도중에 걷는 데 방해된다며 슬리퍼를 모래사장에 홱 던져놓고 마저 걸었는데, 이 광활한 데서 신발을 어찌 찾으려고 저러나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되돌아갈 때 잘 찾아서 신었다. 혹시 별자리를 보는걸까 하는 낭만적 추측을 해 봤지만 나중에 얘길 들으니 그는 현실적이게도  위치추적기를 이용하고 있었다.

어두운 해안가를 슥슥

거북이가 알을 낳고 있을거라 추정되는 구덩이를 몇 군데 들렀지만 다 허탕이었다. 가이드는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갑자기 바다를 보여주겠다며 우리를 데리고 바다 근처로 나갔다.


그 곳에서 본 밤바다는 잊을 수 없다. 바다 위로 작은 흰색 점같은 것들이 가득 덮여 반짝반짝 야광빛으로 빛났는데,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낮에 햇빛을 먹은 플랑크톤이라고 했다. 구슬처럼 조그만 빛들이 바닷가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해안가로 쓸려내려온 그것들을 손으로 슥슥 밀어보니 모래 위로 야광빛이 번졌다.

(인터넷에 Bioluminescent Plankton을 검색하면 어마어마한 사진들이 나온다)

내 카메라로는 잘 담기지 않았으므로 bbc credit 사진 참조
bbc credit 참조

한참 바다를 구경하는데 가이드가 다시 우리를 불렀다. 이번엔 정말 찾은 모양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거북이에게로 데려가기 전에 두 가지를 약속 받았다. 자신이 비춰주는 손전등 외에 카메라 플래쉬를 따로 터트리지 말 것, 거북이를 만지지 말 것. 산란을 하던 거북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위협을 느끼면 바다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이것을 다 지키진 않았고 대놓고 플래시를 터트리는 일행도 있었다. 그들은 가이드가 '노 플래시 노 플래시'하고 짜증을 내면 잠시 멈추었지만 그가 한눈을 팔면 또 다시 플래시를 터트리곤 했다.

알 낳는 바다거북.
사진 찍는 사람들. 가이드가 손전등으로 알을 비춰주고 있다

정작 바다거북은 알을 낳는 데 무척 열심이어서 우리가 알짱거리든 소리를 내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거슬리긴 하지만 일단 알 낳는 데 집중하려는 것인지도 몰랐다. 작은 알들이 구덩이 안에 쌓여있는 모습이 살짝 보였다.

작게 보이는 알들

람들이 거북이 가까이 가려고 소리없이 자리싸움을 해 대기 시작했다. 나는 거북이 뒤에 자리를 잡고 서 있었는데 뒤이어 온 일행들이 거북이를 둘러싼 사람들을 옆으로 밀치기 시작해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아까 가이드 옆자리를 두고 나와 경쟁하던 그 여자아이가 내 팔을 잡더니 동그라미 안으로 도로 집어넣어 주었다. "이 사람은 괜찮아." 그 여자아이가 내 팔을 잡고는 옆에 있던 부모에게 힘 주어 말했다. 우리, 벌써 친구가 됐나봐!


는 작은 목소리로 그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동그라미 안에 도로 자리를 잡자 아이가 팔 소매를 쥐었던 손을 풀어주었다.


알을 다 낳은 바다거북이 다리를 움직여 모래를 구덩이 안으로 슥슥 집어넣기 시작했다. 포식자가 알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 바람에 바다거북 주위에 서 있던 우리에게도 모래가 튀었고 바다거북 바로 뒤에 있던 내 다리도 완전 모래세례를 맞았다.


돌아오는 길도 푹푹 꺼지는 모래를 헤치고 걸어왔다. 1시간 남짓 되는 여정이었는데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어두운 밤바다를, 가이드에게만 의지해 걸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비로 돌아와 귀여운 여자아이와 바이바이하고 빈 의자에 앉았다.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서 씻고 잠들면 참 좋으련만, 아흐메드의 친구가 일을 다 끝낼 때까지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 별을 구경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하면서 시간을 느리게 흘려보냈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아흐메드의 친구(이자 라살진즈 직원)가 표 계산까지 다 마치고 일어난 시각은 오후 11시40분. 그는 손을 휘휘 흔들며 가자고 나를 손짓했다. 냉큼 그의 차를 타고 호텔이 있는 수르로 함께 갔다. 그의 집은 수르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 했지만 호텔 앞까지 친절하게 나를 태워주었다. 택시요금이라도 챙겨주려 했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플라자 호텔에 투숙했다.

플라자호텔 수르.

연달아 바닷물과 계곡물에 담근 탓인지 머리가 빗자루처럼 뻣뻣했다. 계속 샴푸만 쓰다가 사흘 만에 트리트먼트를 썼는데 기분이 상쾌했다. 벌서 새벽 1시였다. 안전하게 숙소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피로가 몰려들면서 잠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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