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호텔에서 자니 잠이 잘 왔다. 대학생 때 아빠랑 여행다니면서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지만 지금은 돈도 벌거니와 혼자 여행하는 처지여서 값을 더 주더라도 괜찮은 숙소를 잡기로 다짐했었다. 덕분에 오만여행 다니면서 숙소 보안을 걱정했던 적은 없다.
따뜻한 숙소 안
호텔 로비에도 있는 술탄 카부스 초상화
체크아웃하고 호텔 로비로 나왔다. 이제 또 다시 무스카트로 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국제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이런 곤경은 겪지 않을텐데 운전을 못한다는 건 아랍국가 여행객에겐 참 불편한 것이었다.
수르에서 무스카트 가는 길
로비에서 1시간 가까이 동행을 찾았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버스정류장이나 택시 정류장을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무작정 캐리어를 끌고 큰 도로로 나왔다. 큰 길을 따라 걷는데 빵빵 클락숀 울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하이, 어디 가요?"
"무스카트요."
"타요 타! 내가 바래다줄게."
경찰복을 입은 아랍 남자가 신나하며 손짓했다. 이게 무슨 일? 무스카트 간다고?
"경찰이예요? 나는 멀리 가야 되는데 근무 중인 거 아니예요?"
"노우노우 오늘 쉬는 날이예요. 타요 타! 내가 바래다 줄게요."
그의 과한 친절이 약간 의심스러웠지만 경찰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차에 올랐다. 그는 내게 어디서 왔는지, 수르에선 뭘 하며 지냈는지 시시콜콜한 것들을 물었다. 중간엔 가게에서 밀크티를 두 잔 주문해 내게 건네주더니 내 왓츠앱 번호를 받아다가 친구로 등록도 했다. 호들갑스러운 반응으로 보아 그의 인생에 내가 첫 동양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같이 먹자며 주문한 밀크티
나는 대강 그의 대화를 맞춰주다가 그에게 `무스카트로 가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했다. 그는 우리가 그리로 가고 있다며 차를 계속 몰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작은 건물. "우리 집이예요! 올라가요!" 대환장 파티다.
나는 이만 가보겠다고 하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경찰은 당황하더니 "알았어요, 그럼 진짜로 갑시다"라고 하면서 다시 차를 몰았다. 이미 그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다음 큰 길에서 내리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는 내가 하는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무스카트는 다음에 가면 안 되나요? 시네마 좋아하나요? 커피는요? 같이 시네마에 갑시다. 여기서 오래 머물다가 무스카트는 다음에 가요."
"내 말 들으세요. 전 여기서 내릴 거예요!"
언성을 높이며 길가에 차를 세우라고 요구했더니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오우, 미안해요. 화 나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사실 나는 무스카트에 갈 수 없어요. 거기는 너무 멀거든요."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그는 언짢아하는 내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택시 정류장에 당신을 바래다 줄 수 있어요. 거기까지 바래다 줄게요. 그러고 나서 맛있는 커피 한 잔 해요."
경찰은 수르 도심으로 들어가더니 합승택시 정류장에 나를 내려줬다. 나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는 그와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아랍어로 택시기사에게 뭐라고 말을 하더니 내 표정을 살피다가 어색하게 인사했다. "왓츠앱으로 연락할게요. 안녕." 대기실에는 나 혼자 남았다.
여기서 두 가지 설명할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저렇게 매번 아랍 남자들이 들이대는 건 좀 현실적이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아무리 경찰이라도 저런 상황에서 차를 타다니 너무 무모한 짓 아닌가' 생각할 것이다.
첫번째로 아랍 국가에서 겪는 추파는 나라서 겪는 것이 아니다. 남녀를 엄격히 분리하는 아랍국가에선 남자들이 일상 속에서 여자를 만나 대화하고 연애상대를 찾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런 문화를 적용받지 않는 외국인 여성에게 관심이 지대하다.
특히 아시아인 여성에 대해선 신비감과 환상마저 갖고 있다. 그래서 아랍국가에서 아시아인 여성 혼자 다니면 누구나 이런 일을 한 번쯤은 겪는다. 나도 거기서 짧은 머리에 화장 한 번 하지 않고 거리를 다녔다.
그렇기에 두 번째는 인정해야 한다. 사실 나는 거기서 안전하지 않았다.
아랍국가를 여행하다보면 어디까지가 여행의 묘미고 어디서부터 현실적 감각을 갖고 끊어야 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다이버와 단 둘이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 남자 택시기사가 모는 택시를 탈 때, 남자들만 사는 사막 캠프에 갈 때 등등 거의 모든 순간이 찜찜하다. 거기서 그만두면 사실상 여행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고, 계속하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제일 안전한 것은 렌터카를 빌려 자기만의 공간을 갖거나 검증된 여행사의 가이드 상품으로만 다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선 아빠와 다녔기 때문에 홀로일 때보단 덜 위험했고 이집트에선 가이드를 썼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오만에선 여행의 재미를 위해 사실상 위험을 감수한 면이 있었다.
차도 없이 여자 홀로 이 택시 저 택시를 옮겨다니며 아랍국가를 여행한다는 건 확실히 안전한 선택지가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잘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군가 아랍 국가를 여행한다면 이왕이면 남자 동행인과 함께, 차를 빌려서 여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경찰이 가고 나서 나는 그간의 내 행동이 안일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조금 더 강압적으로 나왔다면 나는 달리는 차에서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은 오만일지라도 이슬람교 특성상 여성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했다.
이런저런 후회에 혼자 속을 끓이고 있자니 정류장에서 택시와 손님을 중개하던 사람이 대기실을 열었다. 손짓을 하더니 멀리 서 있는 택시를 가리키며 저 차를 타라고 했다. 가까이 가 보니 택시 뒷자리엔 세 명이 이미 타고 있었다. 기사 한 명에 승객 네 명으로 구성된 택시였던 것이다. 택시 중개인이 내게 말했다.
"이 차가 무트라까지 가니까 무트라에서 택시를 타고 무스카트로 가."
무트라는 내가 묵은 호텔에서 무스카트까지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다. 거기까지만 가도 비싸지 않은 돈으로 무스카트까지 갈 수 있었다.
경찰을 만난 이후로 나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지만 어쨌든 내겐 이동수단이 없었고 무스카트로 가는 버스도 없었다. 이왕이면 홀로 택시를 타기보단 여럿이서 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합승택시 가격은 15리얄(1만5천원)이었다. 가는 데만 200km, 2시간이 넘는 거리를 가는 것치고 굉장히 값싼 돈이었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동승인 중 한 명인 노인이 내게 손짓을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거의 무트라 근처까지 가니까 가까이 오면 길을 알려주겠소."
그의 배려를 믿고 차 앞좌석에 올랐다. 오후2시가 다 돼 가고 있었다.
무스카트로 가는 택시 안
합승택시는 버스처럼 승객들을 간간히 떨구었다. 대중교통이 잘 다니지 않는 대신 합승택시가 사실상의 이동수단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오후2시께 출발한 택시는 오후5시가 다 되어서야 무트라에 도착했다.
아까 내게 말을 걸었던 노령의 승객은 상당히 친절한 사람이었고 영어도 잘했다. 그는 내가 혼자 여행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내리기 직전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은 작은 종이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택시기사가 당신에게 바가지 씌우려 하거든 내게 전화하시오."
실제로 택시기사는내가 내릴 때쯤약속한 것보다 돈을 올려받으려 했다.재빨리 종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SOS를요청했더니 택시기사가 마지못해원래대로 요금을 낮춰주었다.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던것인데 승객의 배려가 고마웠다.
무트라 시장에 들러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 줄 선물을 고르며 시간을 보내다 저녁 6시쯤 나를 데라러 와 준 J의 차를 타고 J 집으로 갔다. J가 닭꼬치를 포장해주어 와인과 함께 그것들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함께 먹은 닭꼬치
다음 날J가 출근하고 오전 10시쯤 일어났을 때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따가 혼자 시내로 나가야 했는데 지갑에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제 기념품 산다고 마지막 1리얄까지 다 써버린 게 이제야 생각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두 푼은 남겨둘걸. 난감했다.
그 때 '혹시 한국의 카카오택시처럼 여기도 카드로 계산할 수 있는 택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웹서핑을 해 보니 가장 다운로드 수가 많은 택시앱 '카림'(careem)이 있었다. 중동 여기저기서 우버처럼 이용되는 택시 앱이라고 했다. 일단 앱을다운로드하고 카드 정보를 등록하려는데 엇!첫 거래 이벤트로 2리얄을 그냥 준다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혹시라도 이벤트가 취소되거나 모바일 지갑에 들어온 돈이빠져나갈까봐 곧바로 시내로 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J가 퇴근할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했으므로 시내에 있는 그랜드 모스크로 갈 생각이었다.덜커덩거리는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싣고 J의 집을 빠져나왔다.
모스크 내부는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여성 관광객에게 계속 히잡을 쓰고 다니도록 해 상당히 불편했고 또 불쾌했다. 안 그래도 훅훅 올라오는 열기가 히잡 때문에 더 뜨거워졌다. 모스크 천장에 걸린 샹들리에가 아름다웠지만 히잡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됐다. 밖으로 나올 때가 되자 냉큼 그것을 벗어다가 수납데스크에 반납했다.
아름다운 샹들리에
모스크 내부 통로
내부도 이렇게 화려하다
근처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먹은 뒤 볕 잘 드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시켜놓고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는 촌스러운 벽 문양에 아랍식 차 냄새가 나는 여느 아랍 다방같지 않았고 거의 서양식 카페 같았다. 무슬림 전통 옷을 입은 손님이 오지 않았다면 한국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오만에 이런 세련된 문화가 있다니 며칠 전에 여행하던 곳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무슬림룩을 입은 손님이 아니면 한국이래도 믿겠음
그 뒤로도 지난날과 비교할 수도 없이 고급진 무스카트를 즐겼다. 내가 지방에서 택시비 갖고 씨름하는 동안 다른 여행객들은 이렇게 지냈겠구나, 원래 무스카트 여행이란 이렇게 편안하고 쾌적한것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예를 들어 오만 시내에는 항구와 맞닿은 쇼핑몰 '워터프론트'가 있는데,여러 척의 보트가 떠 있는 바다를 옆에 끼고 화려한 빛을 내는 레스토랑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J의 소개로 마지막 만찬을 해보리라 하고 간 곳인데 아랍식 백반이 아닌, 제대로 된 레스토랑에 가는 건 오만에서 처음이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노천레스토랑 한 곳을 선택해 들어갔더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메뉴판에 있는 어떤 음식을손으로 가리키며 '이건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가 직원이 약간 당황하길래 더 묻지 않고 다른 걸 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와서 '치킨 앤 라이스'라고 설명해 준다. 이미다른 메뉴를 시켰는데도 손님이궁금해한 것을 설명해주러 오다니. 직원의 친절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조명이 화려한 워터프론트 거리 & 새우버터구이
디저트로 시킨 아랍간식 크나파
오만의 럭셔리한 멋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J의 손에 이끌려 '크라운 플라자'라는 호텔의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수영장과 고급스러운 바가 나타났다. 밤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였다.밖으로 난 테라스에 몸을 기대니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음료가 나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바다를 감상하는데 어떤 가수의 감미로운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가수를 초빙해 라이브로 노래를 듣는 무대가 마련돼 있었다. 무대엔 기타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도 함께였다.
가수의 허스키하면서도 애절한 목소리가 바를 가득 채웠다. 목소리가 워낙 좋아 누군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으나, 말해줘도 아랍어를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 포기했다. 대신 노래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힘껏 박수를 쳤다.
바닷내음을 맡으며 노란 불빛 속에서 노래를 듣는 맛이 그만이었다.
크으으으 경치
바의 분위기 넘치는 테이블
다음번에 또 오만에온다면이렇게멋진 경치를 즐기고고급 레스토랑 식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바다거북 본다고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고 흩날리는 밥을 사 먹었는데 정반대의 여행 방식도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 유럽인들도 많이 오거든, 주로 편하게 관광하려는 어르신들이 좋아해."
최근에 부모님이 오만에 오셔서 관광시켜드렸던 J가 말했다.심지어 오만 사막 투어는 뷔페에 간이식 소파까지 준비해 준다고 한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의 천막텐트에서 아빠와 오돌오돌 떨면서 날밤을 샜던 날들이 스쳐지나갔다.(아빠 죄송해여!)
밤11시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오후 8시에는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J가 차에 시동을 걸고 공항으로 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에 찍었다. 조수석에 앉아 가족들에게 카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