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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Lee May 12. 2016

아빠 쇼핑

아빠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이 좋을까?

이제 30세가 된 당신, 여자로서 유래 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했으며 고액 연봉은 물론이고 자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뭔가 허전하다.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의 우월한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건 개인적 욕심이 아니라 역사적 사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편에서는 결혼 6년 차 부부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다. 어찌 된 셈인지 이들 부부에게는 아기가 들어서질 않는다. 좋다는 건 다해봐도 임신은 감감무소식이다. 아기가 없는 신혼생활도 슬슬 권태로워지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 시작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런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아빠 쇼핑이다. 아빠 주문 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나이, 사는 곳, 직업, 종교, 결혼 여부, 자녀수 등의 사회적인 조건과 머리카락 색, 눈동자 색, 인종적 배경을 보여주는 사진, 키, 몸무게, 병력은 물론이고 지능지수, 학력, 취미, 성격, 에세이와 같은 신체 외적인 조건도 선택할 수 있다. 최근에는 나중에 아이가 자라서 아빠를 찾기 원할 때를 대비하여 오픈 아이디(Open ID)와 같은 방식으로 인적사항을 공개한 기증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여느 쇼핑과 마찬가지로 베스트 프렌드를 동반하여 아빠를 고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예비 엄마의 부모도 함께 쇼핑에 나선다. 친구와 함께 쇼핑하는 경우에는 외모, 예술 및 문화적 감각, 취미 등이 중시되고 부모와 함께 쇼핑할 경우에는 기증자의 건강이 중시된다고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기증자의 수는 지역과 클리닉에 따라 다르지만 500 명이 넘는 후보 중에서 골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결혼할 때도 이만큼의 후보군에서 고르지는 않는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한 옵션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빠 쇼핑의 절차는 가장 먼저, 클리닉에 필요 비용을 지불하고 2~3 명의 아빠 후보를 선정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클리닉에서 간택된 후보의 정자가 사용 가능한지 검토한다. 규제에 따라 지역별로 사용 가능한 양이 정해진 경우도 있고 인기가 있는 후보자의 정자는 재고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사용 가능한 정자가 결정되면, 임신을 유도하는데 대개 2~3 차례 시도를 통해 임신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 쇼핑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용후기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30세에 엄마가 되고 싶어진 한 여자는 이탈리아인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클리닉을 방문해 이탈리아계 후보 중에 예술적 감각을 지니고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둔 미국 거주 기증자를 선택했다. 이때 에세이는 선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그녀는 자신을 비롯하여 친척들을 많이 닮아 예쁘고 유머 감각 있는 곱슬머리인 6세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곱슬머리가 기증자의 특징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 불임 부부의 선택 목록은 푸른 눈과 올리브색의 눈을 가진 부모를 닮은 올리브색과 푸른색이 혼합된 스페인계 기증자였다. 외모의 경우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배우나 모델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에세이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돈 때문에 정자를 기능한 경우는 제외했다고 한다. 또한 취미가 TV 시청인 사람보다는 독서나 음악감상을 선호했다. 이들도 예쁜 아기를 얻었고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 외에도 레즈비언 부부, 게이 부부, 재혼 부부도 기증된 정자나 난자를 통해 아이를 갖고 있다. 레즈비언 부부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완벽한 정자를 찾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게이 부부나 늦은 재혼으로 자신의 난자가 임신하기에 너무 늙은 경우에는 난자 기증자가 필요하고 당연하지만 게이 부부는 임신과 출산을 담당할 대리모까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난도가 높다.[1] 


정자은행을 통해 임신하는 비용은 대략 $10,000(약 1,200만 원)다. 육아의 경험을 위해서라면 아이를 입양해서 키울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DNA를 남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비교를 불허한다. 결혼을 통해서 후손을 남길 수도 있지만 거추장스러운 남편은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내 DNA를 물려받아 생물학적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개체가 있으면 충분하다. 최고의 목표가 더 많은 DNA를 남기는 것인 남자의 경우도 경제적 부담없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쌍방의 이해관계가 이처럼 맞아 떨어지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아기를 설계하는 행위라고 불리는 이와 같은 아빠/엄마 쇼핑은 나 자신은 물론이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 나은 방식이라고 이들은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면, 너무나 완벽한 재생산이 아닐 수 없다! 미래에는 정자은행이나 난자기증을 통해서도 완벽한 후보를 찾을 수 없다면, 유전자 편집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완벽성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동자 색깔의 옵션에는 세계 최대의 유전자 기업 몬샌토의 '몬샌토 블루'나 머리카락 색에는 최근 바이오 산업에 진출한 삼성이 제공하는 '삼성 피치 블랙'과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등장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증자의 정자와 난자를 사용하여 임신하는 것이 이렇게 완벽하기만 할까? 얼마 전 미국 애틀랜타에 위치한 정자은행인 자이텍스(Xytex Corp.)에서 분양받은 정자를 이용해 출산한 영국과 미국 가족의 법정 소송이 있었다. 문제는 정자 기증자가 정신질환과 범죄경력을 밝히지 않은 것이었다. 이 가족들의 주장이 아직 법정에서 증명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자이텍스에서는 정자를 판매한 사람이 제공한 정보를 검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족들도 알고 있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국의 가족은 자이텍스 웹사이트에서 매우 건강하고 똑똑한 IQ 160의 기증자를 선택했다. 또한 석사학위를 가진 기증자는 인공지능 분야의 박사과정에 있는 것으로 소개되었고 자이텍스 측에서 기증자에 대한 엄격한 건강검진과 선별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믿었다. 자이텍스는 법정에 제출한 서류에서 그 기증자의 정자는 가장 인기 있는 품목으로 매우 드물게 공급되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익명의 기증자 #9623으로만 알려졌던 그의 신원은 크리스 에겔스(Chris Aggeles)로 밝혀졌으며, 후속 조사 결과 절도 전과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분열증(schizophrenia) 진단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


게다가 4년 전에는 자폐증의 한 종류였다가 최근에 자폐스펙트럼장애(ASD)로 통합된 아스퍼거스 증후군(Asperger's Syndrome)을 가진 남자가 정자은행을 통해 22 명의 후손을 가진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장애를 속이고 정자를 기증한 이 네덜란드인은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공식적인 절차를 우회하여 웹사이트를 통해 수요자들과 접촉했다. 공식적인 루트에 들어가는 많은 비용과 이성 부부를 선호하는 경향을 피해 싱글맘이나 레즈비언 부부들이 주로 이 남자의 정자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3]


이와 같은 허위로 밝힌 기증자의 정보나 질환 같은 직접적인 문제 외에도 여러 법적 문제의 소지가 다분히 있고 동일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형제자매에서도 상이한 특성을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원하는 후손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가장 인기 있는 기증자의 유형인 6 피트(약 182 cm)에 푸른 눈의 의사는 많은 후손을 가지는 영광(?)도 누린다. 실제 많은 경우 그 후손이 150 명에 달한다고 한다.[4] 영국의 경우, 한 사람의 정자 기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권장 후손의 수는 10 명인데, 그 이유는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들 간에 근친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숨어 있던 유전질환이 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반영하여 최근 영국에서는 정자 기증자를 제한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작년 말, 영국 최대 규모의 런던 정자은행(London Sperm Bank)은 '신경과학적인 상태(neurological conditions)'에 따라 기증자를 선별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여기에 포함되는 상태에는 난독증(dyslexia),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자폐증과 아스퍼거스 증후군 등으로 알려졌다.[5] 문제가 되는 상태를 사전에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것도 같지만 이면에 도사린 '우생학(eugenics)'적 접근에 경고를 보내는 사회운동가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은 주로 난독증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나마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는 난독증이 쉬울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또한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잡스와 같은 유명한 천재들도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어쨌든 식물이나 동물의 유전적으로 개량된 품종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우생학이 왜 문제란 말인가? 제대로 실천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지구 상의 모든 인류가 건강한 선남선녀들로 채워질 텐데... 


사실, 우생학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실천한 사람은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나치는 인간의 본성(humanity)을 싫어하지 않았다. 대신에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인권, 공산주의 등을 배척했는데, 그 이유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성을 높게 평가하고 개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다윈의 진화론을 접목시키면서 자연선택에 따라 부적응 개인을 도태시키고 가장 적합한 개인만 살아남아 재생산에 참여해야 한다는 신념을 전면에 걸었다. 그들은 인본주의, 인권, 공산주의와 같은 나태한 개념은 도태되어야 할 개체를 생존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재생산의 기회도 제공하여 자연선택의 원칙을 좀먹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인종적으로 순수한 아리안(Aryan)'을 선전한 나치는 열등한 유전자 풀에서 우수한 아리안족이 도태되고 결국은 인간이 멸종될 것을 두려워했다.[6] 이른바 슈퍼맨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 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따라서 우생학이 등장하는 대목에서 사회운동가들이 우려를 제기한 것도 당연하다.


자, 이제 당신의 컴포트 존을 확인해 보자. 자신이 정자 혹은 난자 기증자 선별 대상 목록을 작성하는 사람이라고 가정하면, 어느 선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 정신분열증은 제외해도 좋을까? 우리는 내쉬와 같은 천재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인구의 1.5%(한국은 2.6%)에 달하며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기도 하는 자폐성 장애인들도 도태시킬 것인가? 자폐성 장애인의 형제자매, 그 부모와 친척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1.http://www.cbc.ca/ontariotoday/2016/05/06/what-parents-dream-of-when-they-choose-a-donor/

2.  https://www.thestar.com/life/health_wellness/2016/05/04/uk-and-us-families-sue-sperm-bank-over-donor-with-mental-illness.html

3.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025900/Autistic-Dutch-man-fathers-20-children-sperm-donation-lying-health.html

4. http://singularityhub.com/2011/09/15/sperm-donor-has-fathered-150-children/

5. http://www.dailymail.co.uk/health/article-3377811/Britain-s-largest-sperm-bank-bans-men-dyslexia-autism-ADHD-donating-triggering-outrage-eugenics.html

6. Yuval Harari,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The Law of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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