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라디오스타, '주민이 직접 제작한다'
공동체라디오가 일반 방송과 다른 것 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것이다. 기존방송의 제작진들은 모두 전문가들이다. 진행자는 유명 탤런트이거나 전문 진행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PD나 엔지니어, 아나운서, 기자는 언론고시라는 어마어마한 관문을 뚫고 들어가 오랜 시간 도제식의 혹독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모두 그 방송사의 직원들이다. 작가는 비정규직이지만 메인 작가의 경우 대개 10년 전후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막내작가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 방송 현장에서 경력을 쌓아온 전문인이다. 게스트들 중에 간혹 일반시민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적은 수에 불과하다. 게스트들도 대부분 전문가이거나 유명인들이다. 잘 나가는 정치인, 잘 나가는 교수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 직업인 등등이다. 전문직업인이라고 모두 방송에 나오진 않는다. 전문직업인 중에서도 자기 분야에서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기존방송에 출연하여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99% 이상의 사람들은 단지 시청자나 청취자들이다. 이용자라고도 불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99%의 평범한 사람들은 방송에 나가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공동체라디오는 ‘마이크를 평범한 시민에게 돌려놓는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민들이 공동체라디오 제작의 주체인 것이다. 이는 실로 방송의 역사에서 코페르쿠스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단지 대상에 불과했던 시청자, 청취자, 이용자였던 사람들이 방송제작의 주체가 된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허용되었던 마이크가 시민들에게 돌려진 것이다. 늘 방송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한 번도 방송의 ‘진짜’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시민들이 방송의 '진짜' 주인이 되겠다는 시도인 것이다. 방송의 객체에서 방송의 주체로 거듭 나는 혁명적 사건인 것이다. 이렇게 공동체라디오는 만드는 사람이 다르다.
물론 공동체라디오라고 해서 모든 프로그램을 주민이 직접 제작하는 것은 아니다. 방송국의 사정에 따라 일부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이 아닌 전문적인 제작진들이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설립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운영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아르바이트나 비정규 제작진을 고용하여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곳도 있다. 방송국을 설립할 당시 설립 주체들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름의 이유와 역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회원이 없는 구조를 택한 방송국도 있고, 이사장이나 실무책임자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곳도 있다. 이들 모두 공동체라디오의 다양한 모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마포FM이 채택하고 있는 모델이 공동체라디오에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공동체라디오는 ‘공동체에 의한, 공동체를 위한, 공동체의 라디오’라는 이상을 현실에서부터 구현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공동체라디오 가운데 주민이 직접 소유하거나 직접 운영하지 않는 방송국이 있을 수는 있지만 프로그램의 제작만은 직접 주민이 참여하게 된다. 그건 공동체라디오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지만 공동체라디오가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동체라디오는 재정 규모가 매우 작고 인력도 몇 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적 조건 때문에라도 공동체라디오는 주민들에게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부족한 자원을 주민의 참여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공동체라디오가 속한 공동체의 수준에 따라 주민의 참여 정도는 결정되리라 생각한다. 또한 공동체라디오 운영진이 방송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어떤 존재로 보고 있느냐에 따라 참여의 정도는 달라진다. 시민들과 관계를 맺고 호흡하지 않으면 방송참여가 저조하고 활성화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에게 참여의 문을 ‘열어놨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방송국 중심의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방송국이 아닌 지역 주민들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면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역주민들이 방송국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참여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지역의 이야기, 우리 동네의 이야기, 평범한 소시민들이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도록 한 게 공동체라디오라고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직접 공동체라디오를 만들고, 방송국의 운영이나 관리 같은 전문적인 일을 주민들이 직접 하기가 어려우니 그 운영을 위해 상근활동가를 고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런 방식으로 공동체라디오를 세우기가 싶지 않다. 대개 공동체라디오의 설립을 추진하는 단체나 개인이 존재하고 이 단체나 개인이 지역 주민들과 지역자원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설립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라디오 설립을 주도한 단체나 개인이 방송국을 이끌어간다. 이렇게 설립된 공동체라디오도 지역주민을 위한, 공동체를 위한 방송을 만들어 나가게 되고 역시 공동체라디오라고 할 수 있다. 설립을 주도한 세력이 '공동체라디오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사실을 도외시 한 채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하게 되면 시민의 참여도 활성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동체라디오가 갖고 있는 활력과 장점을 놓치게 된다.
어쨌든 공동체라디오는 주민들이 직접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매체이다. 라디오방송 제작에 경험이 전혀 없던 주민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거쳐 방송에 참여하게 된다. 마포FM의 경우 4~5회의 기본교육과 서너 차례의 트레이닝을 통해 방송제작을 시작하게 된다. 전문방송인들이 들으면 기겁을 할 얘기겠지만 완벽하진 않지만 방송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라디오는 기본적으로 그리 어려운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익히게 되는 게 말하는 것이다. 너 덧살만 돼도 자신의 의사를 충분히 전할 수 있고, 이후로도 계속 배우게 되는 게 말이다. 말이 가장 기본적인 소통 도구이기 때문에 다른 미디어 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매체이다. 물론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세련되게 말하면서도 재미있게 말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과 연구가 있어야 하고 방송장비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한 기술과 전문성도 있어야 하지만 몇 번의 기본적인 교육을 거치게 되면 어쨌든 방송을 제작할 수 있다. 물론 청취자를 매혹시킬 수 있을 정도의 매끄럽고 깔끔한 진행이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 구성, 전문적인 방송기술을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 주민들이 참여하다 보니 웃지 못할 방송사고들이 많이 일어난다. 잊을만하면 방송사고가 한 번씩 일어난다. 특히 생방송의 경우 언제나 방송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마이크 조작이나 콘솔 조작을 잘못해 벌어지는 오디오 사고는 애교에 불과하다. 방송시간을 제 때 맞추지 못해 지각하는 경우도 있고, 게스트가 날짜를 착각해 방송을 펑크 내는 일도 일어난다. 방송녹음을 하다가도 실수로 몇 시간 애써서 녹음한 파일을 다 날려버리는 일도 있고, 방송장비에 커피를 쏟아 고장을 내는 대형사고도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