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1일 신규 공동체라디오 20곳이 허가되었다. 3월 8일 신청공고를 낸 날로부터 하면 네 달이 넘고 2020년 8월 3일부터 시작된 공동체라디오방송 예비 수요조사로부터 하면 1년 가까이 되는 시점이다. 이번 신청엔 전국 22개 지역에서 신규신청이 있었다고 한다. 2004년 공동체라디오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소출력FM라디오' 신규사업자 모집 시 15곳이 신청했는 데 이를 뛰어넘는 숫자이다. 신청한 22곳 중 20개 방송이 허가 되었다. 단지 두곳만 탄락하였다. 방통위가 허가 신청 설명회에서 '기준이 되면 모든 신규공동체라디오를 허가하겠다'고 했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짧게는 네달, 길게는 1년 동안의 신규공동체라디오 허가신청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먼저, 공동체라디오 허가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여전히 공동체라디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신규로 준비하는 곳들 역시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을 포함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못하는 편이다. 셋째, 공동체라디오 허가절차와 기준은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고, 넷째, 공동체라디오 허가는 단계적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번쩨로 공동체라디오 허가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나 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하나씩 짚어보자.
첫째, 공동체라디오 허가기관인 방통위나 과기부가 공동체라디오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2005년 공동체라디오 개국 당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기사를 보면 공동체라디오는 '누구 집에서 밤새 송아지가 몇마리 태어났다'느니 '아무개나 자손이 결혼을 하니 마을회관 앞으로 언제까지 나와달라'느니 하는 마을에 밀착된 방송을 하게 될거라는 내용이 자주 등장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다. 이렇게 공동체라디오에 대해선 모두가 뜬 구름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마포FM은 <L양장점>이라는 파격적인 방송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었고, 이 프로그램은 방송가의 화제가 되었다. 당연히 그럴 법도 한 것이 <L양장점>은 레즈비언이 직접 만드는 레즈비언을 위한 방송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소수자방송프로그램이었다. 지금도 역시 지상파 뿐만 아니라 허가받은 방송을 통틀어 유일한 성소수자프로그램이다. <L양장점>은 마포FM의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지금도 역시 방송되고 있다. 당시 공동체라디오가 개국한 초기였기에 어떤 프로그램이 방송되느냐가 방송계의 관심사였다. 방송위(방통위 전신) 관계자들이 <L양장점> 소식을 들었는지 '이런 방송을 지상파에서 해도되나 하는 우려가 있다'고 하였다. 방송하지말라는 은근한 압력이었다. 공동체라디오는 방송에 접근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말할 권리를 주는 방송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보수적인 방송계의 시선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면 '공동체라디오를 지원하면 다른 라디오와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한다. 이 무슨 말인가? 그럼 공동체라디오는 민영상업방송이라는 말인가? 민영상업방송을 하라고 공동체라디오를 도입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정책착오라 할 수 있다. 도입 초기라면 이해가 되지만 지금도 정책기조가 크게 바뀌지않는 것을 보면 정책 부재라 해야 할 것이다. 이번 공동체라디오 신규허가 과정을 봐도 공동체라디오를 민영라디오로 보고 있다는 것이 명백하다. 허가절차나 기준 모두 기존 민영방송 허가와 거의 같은 절차나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담당부서의 태도에선 좀 더 우호적이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정책기조에선 크게 다르지않다. 17년 동안 그렇게 수차례 이야기 했는데도 말이다.
둘째, 신규로 준비하는 곳들 역시 공동체라디오의 현실을 포함해 이해가 대체적으로 부족해보인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최초로 공동체라디오가 허가된 이후 17년 동안 공동체라디오 신규 허가가 없었으니 정보가 단편적일 것이다. 운영의 어려움이나 고단함은 물론이고 공동체라디오의 의미, 목적 등에 대해서도 피상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허가받은 20곳의 이력을 보면 마을미디어 활동을 해오던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얼마되지않는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마포FM으로 경험을 듣고 싶다고 찾아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초기 공동체라디오방송국들이 품어왔던 환상이나 오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초기 공동체라디오들도 '허가만 받으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는 운영비도 지자체의 지원으로 쉽게 해결될 것이고, 지역주민들도 후원을 요청하면 당연히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줄거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신규 공동체라디오도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출력 10와트면 허가받은 지역에서 방송이 다 잘 들릴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역이 넓지않은 마포의 경우도 10와트로 마포 전 지역에서 방송을 다 청취할 수 없다. 현재 마포는 3와트로 방송을 하고 있는데 면적으로만 따진다면 자동차로 마포의 약 1/2 지역 정도에서만 '양호하게' 들을 수 있다. 만약 집 안에서 일반 라디오로 청취한다면 훨씬 더 좁아진다. 반경 2km 정도를 커버한다고 보면 된다. 10와트가 3와트의 3배이니 3배 넓은 지역을 커버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출력에 정비례해서 가청권역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10와트로도 다 커버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신규 공동체라디오들은 잘 알지못하고 있다.
셋째, 공동체라디오 허가절차와 기준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진행된 공동체라디오 허가절차나 기준은 2004년 최초로 공동체라디오를 허가할 때 절차와 기준을 거의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공동체라디오는 기존 방송과 모든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절차와 기준을 새로이 해야 한다고 누누이 말했는데요 말이다. 방송법 제9조(허가ㆍ승인ㆍ등록 등)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전파법」에 따른 무선국 개설과 관련된 기술적 심사를 의뢰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으로부터 송부 받은 심사 결과를 허가에 반영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공동체라디오의 경우 '공동체라디오방송사업을 하고자 하는 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경우 방송통신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에게 「전파법」에 따른 무선국 개설과 관련된 기술적 심사를 의뢰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으로부터 송부 받은 심사 결과를 허가에 반영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기존 지상파방송이나 별다를게 없다. 허가절차도 전파법의 기술적 기준도 크게 바뀌지않았다. 기존 지상파라디오와 공동체라디오는 방송국의 규모와 방송내용, 제작방법, 방송국 운영 등 모든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새롭게 정해야 한다. 공동체라디오는 기존 라디오와는 다르게 '일반 시민'이 참여해서 방송을 만들고 있다. 기존 전문가 중심의 라디오와는 정말 달라도 너무도 다른 방송이다.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매체'라고 생각한다. 기존 라디오와는 분명하게 차별점이 큰 '제3의 미디어'인 것이다.
넷째, 공동체라디오 허가를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나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를 준비하는 주체는 대개 평범한 시민들이다. 그중에 지역에서 미디어 활동을 하고있는 마을공동체미디어 관계자나 지역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개 공동체라디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방송경영, 방송제작, 방송기술 등 모든 면에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방송국 허가를 받아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방송국을 운영해야 한다. 더구나 인적, 물적 자원이 태부족한 공동체라디오를 말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송허가 절차나 기준이 기존 방송국의 수준으로 되어 있어서 허가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에서부터 방송시설을 구축하는 것까지 초기부터 낭패에 부딛힌다. 방송허가 처리 기한이 대개 1년이기 때문에 이 기한 동안 방송경험이 전무한 신규 공동체라디오가 이를 도움없이 진행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반복하게 되고 시간을 들이게 된다. 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중간지원조직이 만들어져야 한다. 시민들의 미디어활동을 돕기 위해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있듯이 공동체라디오 허가와 운영을 지원할 조직이 필요핟.
다섯째, 공동체라디오 허가는 단계적 절차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한다는 것은 단지 방송국 하나를 운영하는 것 그 이상이다. 미디어라는 형식의 공동체라디오를 훌쩍 뛰어넘었을 때 관계라는 내용의 공동체라디오가 가능하다.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한다는 것은 지역공동에서 소통을 만드는 것이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이며, 지역공동체에서 허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공동체라디오에겐 자원이 절대 부족하다. 인적자원도, 물적자원도 부족하다. 방송국을 운영하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벅차다. 그런데 공동체라디오는 방송국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않다. 자원이 부족하다보니 부족한 자원을 지역에서, 공동체에서, 시민들에게서 협력을 통해 채워야 한다. 지역의 다양한 영역과 분야와 관계 맺고 협력하지 않으면 애초에 공동체라디오의 운영은 불가능하다. 어찌어찌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동체라디오라 부르기 민망해질 것이다. 그래서 '좋은' 공동체라디오는 어느 날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양한 지역활동과 마을공동체미디어 활동이 바탕이 되어서야 공동체라디오가 가능하다. 물론 그런 바탕이 없더라도 공동체라디오를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관계를 만들고 협력을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에서 관계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지않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관계는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동체라디오는 예비사업자와 정규사업자로 나눠서 허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비허가 기간 1~2년 동안 예비사업자로 임시 허가를 내어준 후 충분한 경험과 관계를 만들고, 자원을 연결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한 후 정규사업자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예비사업의 절차와 기준은 정말 간소하게 하여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볼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 기간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충분한 준비를 한 후 정규사업을 하게 한다면 지금의 혼란과 어려움이 크게 줄어들 거라 예상한다. 물론 예비사업 기간 동안엔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