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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건표 May 31. 2023

연극, 믿을지 모르겠지만

꼬리를 무는 출생의 비밀‘ 김이율 작, 최용훈 연출 <믿을지 모르겠지만>


최용훈 연출무대를 덜어내는 담백함     


최용훈 연출의 <믿을지 모르겠지만>(작, 김이율,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이야기다. 작품은 ’우리 연극 만들기' 열 네 번째 프로젝트로 공연된 후 76 페스티벌(2021)과 밀양 연극제, 서울문화재단 지원 시업으로 선정되면서 해마다 무대화되면서 지속해서 작품을 다듬어 왔다. 잠수부 머구리 마스크를 씌우고 치마와 넥타이로 무장시켜 포스터에 등장시킨 퀴어적인 남자의 이미지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투사하고 있었다.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 출품작까지 ‘머구리’를 쓰고 버티며 살아남으면서 생존력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담백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공간 활용은 배우들 연기와 작가의 이야기로 무대를 ‘연극다움’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최용훈의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마치 목수 장인(匠人)과 김이율 이야기꾼 재료로 견고한 집 한 채를 만든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연출은 무대를 채우려는 과함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용훈은 반대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려고 한다. 희곡을 배치하는 공간에 꼭 필요한 재료만 쓴다. 공간을 덜고 덜수록 만나지는 것은 연극의 본질적인 재료인 배우, 희곡, 무대 공간, 조명과 연출만 남게 되는데 무대의 허점을 기술과 설정의 기교(技巧)로 채우지 않고 오로지 의자 몇 개 오브제와 네, 다섯 가지 재료로만 무대를 채워가는 연출의 묵직한 노련함은 목수 장인이 대패와 망치, 못 몇 개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지난해 공연을 본 후 반가웠던 것은 최용훈 연출과 극단 작은신화가 90년대 세대교체를 이끌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연극적인 구조와 번역극들이 무대화되었던 90년대(1990~1992) 최용훈은 불필요한 것들은 걷어내고 무대 공간과 배우, 우리극 텍스트로만 현대적인 연극성을 보여왔는데 그 대표적인 출발이 <전쟁음?악!>시리즈와 같은 작품이었다. 창작 작품 무대는 구조물을 철거하고 오브제와 텍스트, 뛰고, 달리고 움직이는 현란한 배우의 표현으로만 공간을 채워냈고 극을 완주시켜 내는 무대는 우리 연극(창작극) 열풍과 배우훈련의 신호를 보내면서 극단 작은신화는 비전공자와 대학 연극반 출신들이 대거 단원으로 입단했다. 젊은 연극적인 도전적인 실험성과 패기는 마치 새로운 연극 질서를 형성하고 세대교체를 유도하는 잇따른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번<믿을지 모르겠지만>이 다시 한번 그때의 최용훈 표(票)다운 연극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 구라 6단 김이율의 ‘ 허구 같으면서도 현실 같은 이야기     



무대는 의자 8개가 구조와 형태를 만들며 다르게 놓여 있다. 중앙 상단 위는 간혹 에피소드의 이해를 도우려고 메시지나 등장인물의 대사를 자막으로 처리한다. ‘살인 충동보다 성적본능이 강하다.’ 마치 다큐멘터리 자막 타이틀처럼. 작품은 허구와 실재의 경계가 모호한 7개의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중첩되며 진행된다. 에피소드는 일인칭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서른 다섯의 한 남자의 출생 비밀은 대사로 시작된다. “믿을지는 모르지만…. 나의 아버지는 여자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출생의 비밀은 아버지의 죽음을 일주일 남겨두고 쪽지 한 장 남기고 노모의 엄마가 저수지로 사라지면서 SBS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처럼 연극은 시작된다. 이상한 문장을 남기고 저수지로 사라진 엄마의 비밀을 찾아가면서 밝혀지는 출생의 비밀과 충격적인 이야기는 현실 같으면서도 허구처럼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내용은 이렇다. “이것은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여, 시발” 엄마가 남긴 한마디 ‘시발’의 의미를 풀어야 한다. ‘시발, 시발’을 중얼거리며 잠수부들을 동원해 저수지 바닥 물길까지 뒤지고 잠수부들은 ‘시발’ 거리는 아들과 한판 붙으면서도 저주지 밑바닥에서 부처의 형상처럼 가부좌를 틀고 있는 이상한 형체를 봤다는 말에 이야기는 잠수부, 여의사, 지하철수사대, 민 대리와 마돈나 장면까지 꼬리를 물고 진행되면서 여섯 번째 에피소드 ‘트렌스젠더 마담’ 장면에서 한 통의 전화로 남자와 엄마의 비밀이 밝혀진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비밀은 이렇다. 저수지로 사라진 엄마는 한때 업계에서 트렌스젠더 ‘시발언니’로 통했다. 이 설정에서 김이율 작가의 구라 상상력도 상큼하다. ‘시발’은 대한민국 1호 시발자동차다. 1세대 트렌스젠더 시발 언니는 3대 독자로 ‘시발’로 불리던 사연은 이렇다. 3대 독자 아들이 트렌스젠더로 업소에서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아버지는 그 시절 시발 자동차를 타고 나타났다. 아들 머리채를 잡고 호적에서 파낸다고 하면서 그 이후부터 ‘시발 언니’로 통했다. 쪽지의 시발은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이름이었던 것.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멈추지 않는다. 시발 언니는 일본의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완전한 트렌스젠더로 살면서도 남자로 살아온 여자와 여자로 살아온 남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하게 된다. 마담은 ’시발 언니’를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저수지에 집 하나를 소개해 주었고 두 사람은 아들을 입양해서 키워왔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다. 마치 업계의 전설처럼. 믿을지 모르겠지만은 6장의 에피소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끝내면 재미가 없었을까. 김이율 작가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구라 연극, 환상연극’이라고 정의 한 것처럼 7장 ‘대작가와 신인작가’에피소드를 통해 꼬리를 무는 이야기는 반전의 마지막 전환점을 돌며 극에 재 스파크를 내고 출생의 비밀과 ‘시발 언니’의 기구한 인생이야기를 소설구조로 밀어 넣는다.

     

◆ 미궁으로 빠져드는 이야기진짜와 가짜의 경계 그리고 배우    

 


이야기는 또다시 미궁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마치 전유성의 ‘구라 삼국지’처럼 구라 작가 6단 기술을 보인다. 현실 같은 가짜, 허구 같은 실제 이야기로 반전의 기술을 시도하고 김이율의 구라 감각도 돋보인다. 대작가 장면 이야기는 이렇다. 서른다섯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시발 언니의 이야기와 남자 출생의 비밀 스토리는 2억 원 상금을 내건 대작가의‘소설서바이블 게임’에 응모한 소설이었다. 장면을 돌려 보면, 장면마다 소설지망생이 등장하는데 에피소드에 인물들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었다. 연출은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작가 지망생의 시선으로 소설이라는 암시를 주는데 대작가 장면에서도 ‘아, 작가한테 속았구나’ 할 때쯤 작가는 능청스럽게 한 발짝 더 들어가 구라 기질을 보인다. 대작가의 소설작품들을 신인 작가 아버지가 문을 걸어 잠그고 20년 동안 써왔던 것으로 밝혀진다. 대작가와 아버지의 악연은 20년 전 교통사고로 대작가의 딸을 숨지게 하면서 그의 소설을 대필해 왔고 유명베스트셀러 작가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믿을지 모겠지만, 연극이 이쯤에서 정리 되면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을 경계한다. 작가는 또다시 신인 작가 아버지와 여자이면서 남자로 살아온 서른다섯 아버지의 존재를 미궁으로 빠지게 만든다.     


소설 같으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시 영화구조로 밀어 넣고 작가는 구라 6단의 기술로, 연출은 무대의 현실적인 감각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진짜 같은 가짜, 허구 같으면서도 현실 같은 실제 이야기로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교란(攪亂)시킨다. 마지막에서는 등장인물 전체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밀어 넣고 스크롤 자막까지 띄운다. 여전히 한 남자의 출생 비밀과 ‘시발 언니’의 인생과 작가 지망생의 이야기는 소설 같으면서도 현실처럼 그려내는 김이율 작가는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희곡이 무대화된 작가 데뷔전임에도 그의 연극적인 구라 발은 상당하고 최용훈 연출은 작가의 구라를 배우와 의자 8개로 견고하게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 그의 감각은 어찌 보면 대패와 못 몇 개, 망치를 들고 현란함의 기술을 부리지 않고도 목재의 결을 살려내 장인의 가구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배우와 희곡, 의자 몇 개로 연극성이 강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가 에피소드를 관통시키지 못하면 극은 부러지고 모호해질 수 있는데도 극단 작은신화의 훈련방식으로 쌓인 배우들은 총체적으로 연기의 앙상블을 보였다.     


일인칭 독백구조의 독립된 에피소드를 배우들은 역할의 탄력적인 몰입감으로 인물을 살려내면서 캐릭터들은 살아있었고 정형화 되지않는 표현의 방식으로 작품의 몰입도를 높였다. 잠수부 역할을 맡은 배우 김기준은 에피소드를 웃음으로 몰아가면서도 배우의 설정방식으로 극중캐릭터를 모노로그 드라마처럼 살려냈고 트렌스젠더 마담 강지선은 인물형상화가 마지막 출생의 비밀 열쇠를 푸는것 처럼 대사와 대사사이는 유연한 긴장감으로 인생을 들어냈고 시발언니와 마돈나, 쏘냐의 삶과 괸계에서는 남자에서 여자로 살아온 트렌스젠더의 삶이였다. 이밖에도 소설지망생 박상훈, 여의사 박소아, 서른다섯의 남자 조민교, 민대리 권호조, 최검사 최광호, 대작가 서광일등도 각자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특히 의자 오브제 활용이 눈에 띄었는데, 의자는 장면별로 인물과 대상, 사물의 존재로 변주되었고 최용훈 연출은 오브제와 등장인물 사이의 구라 6단 김이율의 에피소드 간극(間隙)을 현실 같은 소설과 영화구조로 연결하는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 대작가의 장면을 에피소드들의 비밀을 푸는 것처럼 대작가 외 극 중의 인물들을 한 공간으로 몰아넣고 아버지가 자물쇠를 잠그고 골방에서 써 내려간 대필 소설 속 등장인물들로 묶어낸 것은 어찌 보면 설명적이어서 아쉬웠다. 영화구조로 또 다른 이야기로 겹을 이루며 꼬리를 물고가는 영화, 소설 같으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로 끝내는 방식을 선택했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마담 장면에서 사라진 엄마가 나타나는 장면과 대작가와 신인 작가의 아버지 이야기 정도에서 멈추었으면 어땠을까. 작가의 구라의; 신선함과  배우, 연출의 감각적인 무대였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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