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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Nov 19. 2024

오로라 빛 유리잔에 담긴 쿨피스 복숭아 맛

가장 행복한 순간 |

행복이라...

그것도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너무나 거대한 질문이다.

자서전에 들어갈 행복론이라면 나의 철학이 들어가야 하는데. 내가 행복했던 적이 있던가...


아! 살아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 있었다. 부모에게서 받은 적 없는 칭찬과 인정을 처음으로 들은 감격의 순간도 있었다. 아! 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구나, 알게 해 준 고마운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그건 지나간 과거라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할 순간'으로 미래를 상상해 볼까? "챗GPT와 함께 자서전 쓰는 노하우"브런치북으로 실제 자서전 쓰기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것?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성장을 도우며 뿌듯함을 느끼는 것? 내 자서전이 출판되는 것? 혹시나 작가로서 돈을 많이 벌고 명성을 얻는 것? 그래서 어느 작은 바다가 마을에서 한적하게 사는 것? 눈 내리는 창가에서 앞에서 핫쵸코를 마시며 글을 쓰는 것?


기분 좋은 상상. 그런데 이걸 가장 행복할 순간으로 꼽을 수 있을까? 상상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가능성에 올인하며 행복의 가치를 미래에 두는 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과연 가능하기는 하고@@


온종일 행복에 관해 생각했다. 하버드 대학교의 행복론.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데일 카네기의 행복론. 서은국의 행복의 기원 등등. 당대 지식인은 행복을 무어라 정의했을지 골몰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불행했다. 행복, 행복, 너는 지금 행복하니? 행복해야 하잖아! 이걸 채우면 행복할 거야. 그러니까 더 갈고닦아야 해! 너무나 불행한 순간의 끝에서, 나만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 떠올랐다.


과거 어느 때에 있었던 영광도 아닌, 미래 어딘가에 있는 무엇도 아닌 지금의 행복.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어야 한다! 지금 시간이 새벽 3시 30분, 오늘은 2024년 11월 19일. 드라마 도깨비의 OST를 들으며 글을 쓰는 이 순간. 모두 다 잠든 고요한 시간.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코 고는 소리가 정겹고. 완벽한 글을 쓸 거야.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멋진 글을 써서 보란 듯이 써서 성공할 거야. 이런 강박 없이, 헛된 욕심 없이. 날 것으로 나를 만나는 이 순간. 썼다 지웠다 Del키를 다다다다 눌렀다가 Backspace키를 두두두두 눌렀다가. 내 생각을 펼치고. 모으고. 파고들고 고르고 마침표를 찍는 바로 지금 이 순간.



아!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 정말 행복할 텐데... 읔 건강을 위해서 끊었자나ㅠ 대신에 쿨피스 복숭아 맛을 마셔야지. 오로라 빛이 감도는 유리잔에 이쁘게 따라서 맛있게 홀짝. 이런 순간, 순간의 행복들을 많이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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