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작성 |
나는 천만영화를 일부러 피한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하지 않았다. 맛집에서 줄을 서는 것도 싫어하고 '오픈런'은 상상도 하지 않는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상업영화보다는 인디영화가 취향에 맞았고, SNS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 많은 곳은 너무나 정신없어 피곤했기 때문이다. 내 경제력 안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해봤고, 덕분에 취향도 찾았으며 감사하게도 나를 고통에서 해방케 해주는 글쓰기를 만났으니, 앞으로는 편안할 일만 남았다고 자족했다.
이런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챗GPT와 함께 자서전 쓰는 노하우"를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면서부터다. 타로점을 볼 줄 알아서 자점을 쳐보니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응모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하루 5분 자서전 쓰기 60일 챌린지"를 시작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새로 만들어 매일 게시물을 올렸다.
예상했던 대로 반응은 없었다. 알고리즘 상 당연한 결과였지만, 나도 자서전을 쓰지 않으면서 남이 쓰기를 바라는 게 어불성설이었다. 그날부터 주어진 글감으로 나의 자서전 챕터를 써나갔다. 하루의 글감을 발행하고 하루의 자서전 챕터를 쓰던 어느 날,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내가 혹할 만한 광고가 떴다.
20, 30대가 주축이 되어 일 년을 회고하는 크루 모집 공고였다. ZA세대의 일 년 회고는 나의 자서전 쓰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궁금했다. 나이 차이가 걱정됐지만, 도전해 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얼굴을 익혔고, 두 번째 모임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됐다. 여기서 이 분들은 '찐'이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3년 차 회사원이 많았는데, 앞날을 고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그 고군분투하는 젊음이 눈부셨다. 이야기가 오가며 서로 맞장구치는 몽글몽글한 공간에서 나는 그들이 무얼 말하는지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마치 외국에 온 것 같았다.
나도 이런 때가 있었다. 라일락 향에 취해 일기를 쓰고, 작렬하는 여름 광장을 행진하고,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두고, 함박눈을 찍으며 손이 얼어가던 그때. 그 말랑말랑했던 감성을 잊은 채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나의 인간관계는 정리되고 정지됐다. 새로운 관계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기회를 폐쇄한 나. 유튜브와 넷플릭스 콘텐츠가 편향되어 있었다는 걸 그들을 통해 알았다. 더 심각한 건 과거의 경험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하겠다는 글쓰기로 내 안에 너무 함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모임에서 "자기 내면이 아닌 '자기 외면'에 대해서 글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자기 외면이란 뭘까? 너무 신선했다. 다음 3회 차 모임에서는 그동안 살면서 안 해봤던 짓을 하자는 취지의 회고를 갖기로 했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다녔던 나. 천만영화를 보지 않은 건 극장의 많은 사람들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TV나 PC나 모바일로도 볼 수 있으니까. 다만 사람들이 좋다는 영화를 보고 실망할 내가 싫어서였다. 다들 좋다는데 그게 싫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치기 어렸을 땐 상영영화라며 폄훼했다. SNS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건 사실 관계를 피하는 것이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 친근하게 다가오면 당황스러웠고, 온라인 우정?을 의심하며 경계했다. 나를 노출하는 게 겁이 났고 결국 계정을 비공개로 돌렸다. 맛집도 마찬가지다. 취향에 맞는 단골집이 있으니 굳이 새로운 곳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건 만나는 사람만 만나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그래서 그동안 안 해봤던 짓?을 버킷리스트로 작성하려 한다
1. 천만영화로 부상하는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볼 것
2.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에 서점에 나가 볼 것
3. 핫하다는 음식은 줄을 서서도 먹어 볼 것
3. 이런 경험들로 느끼고 배운 것을 애정하는 사람들과 나눌 것
10여 년간 글쓰기로 에너지를 수렴했다면, 이제는 그 에너지를 발산하러 밖으로 나간다. 20대의 몽글몽글했던 감성이 아니라, 40대의 지극한 감성을 찾으러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