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로 먹은 김밥

앞니가 좋지 않아 어금니로 먹는구나!

by 산들바람


회사를 그만두고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덕분에 엄마는 끼니를 챙겨주는 딸이 생겼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도, 카페에서 글을 쓰다가도, 엄마가 들어올 시간이 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엄마, 일찍 들어와, 내가 밥 차려 놨어.”

“허이구, 얼마나 가려구.”


엄마 식의 좋다는 표현이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만들어 준 음식은 새우젓으로 간을 내고 돼지고기와 애호박을 숭숭 썰어 넣은 된장찌개이다.


“엄마, 새우젓은 얼마나 넣어?”

“적당히”

“그러니까 적당히가 얼마냐구?”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뭐든 잘해, 라며 일생을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살았는데, 새우젓을 너무 많이 넣은 것인지 너무 오래 끓인 것인지 쓴맛이 났다. 머쓱해진 나는 조용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반찬하고만 밥을 먹었다. 그런데 엄마는 별말 없이 된장찌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 후로 백종원 김치찌개,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뿌린 김치볶음밥, 주특기인 삼겹살 구이, 훈제오리고기 월남쌈 등 여러 음식을 해드렸다. 얼마 전에는 김밥에 도전했다. 엄마가 먹어 보지 못한 색다른 김밥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고민 끝에 스팸마요 김밥과 충무김밥으로 정했다. 스팸은 집에 있고 마요네즈와 깻잎, 무순과 오징어와 어묵을 샀다.


“엄마, 집에 단무지 있어?”

“김밥 싸게?”

단무지라고만 얘기했는데 김밥을 알아맞힌 엄마의 내공에 머리를 조아렸다고나 할까. 엄마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기가 막힌 김밥을 해줄 테니 빨리 들어오라고 호언장담했다. 만드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다 싶었는데, 웬걸 밑 작업하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본게임에 들어가지도 전에 현관문이 열렸다. ‘망했다’ 엄마가 들어오면 밥상으로 떡하니 대령하려고 했는데 작전 실패였다.


“엄마, 고춧가루 어딨어?”

“매실액은?”


이왕 망한 거 엄마를 주방 보조로 삼아 이것저것 시켰다. 엄마는 툴툴거리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도 알아서 다 챙겨줬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엄마에게 TV를 보면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막장 드라마 주인공의 절규를 들으며 스팸마요 김밥을 마는데 마요네즈가 새어 나와 범벅이 되고 김밥 옆구리가 터지고 쭈그려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아프고 하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엄마의 핸드폰 울렸다. 친목회 아주머니들이 토란국을 먹자고 부른 것이다. 엄마는 친구들이 더 좋은 것인지 토란국이 더 먹고 싶은 것인지 나가겠다며 눈치를 봤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맛만 보고 가라며 붙잡고 늘어졌다.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빨리 만들라며 재촉했다. 예쁘게 말아서 예쁜 그릇에 담아주려고 했는데 김이 새어버렸다.

“이거(스팸마요 김밥) 먼저 먹고, 이거(충무김밥) 먹어”


엄마가 뭐라고 할까. 스팸과 마요네즈의 느끼함을 깻잎과 무순으로 달래고, 그래도 안 되겠다 싶으면 톡 쏘게 매운 충무김밥의 콜라보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서운함도 잠시 엄마 옆에 착 붙어서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는 앞니로 깨물어보다가 왜인지 입을 크게 벌려서 어금니로 끊어 먹었다. 왼쪽 볼만 빵빵해서 우물우물 씹어 먹는 모습이 교양미가 없어서 남 볼까 좀 창피했다.

“맛있어?”

“응응”

엄마는 대충 말하고 히히 웃으며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갔다.

“내가 다시는 해주나 봐라!”

긴축 재정에 만원이나 들이고 글 쓰는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들었는데. 토란국이 뭐라고. 허탈해서 글이고 뭐고 김밥 몇 개를 집어 먹고 자버렸다. 밤 10시나 됐을까, 멋쩍게 웃으며 엄마가 들어왔다. 그리고 김밥이 맛있었다며 계속 말했다.

엄마는 내가 만든 음식에 한 번도 맛있다고 한 적이 없다. 이건 어쩌고 저건 어쩌고 잔소리만 늘어놨다. 그런데 맛있다고 한 것이다. “됐어!” 팽하니 토라져서 말했지만, 배시시 새어 나오는 웃음은 참기 어려웠다.


다음 날에는 입맛이 없다는 엄마를 위해 토스트를 만들었다. 식빵에 달걀옷을 입혀 노릇하게 구운 다음 설탕을 뿌렸다. 식빵에 갈색 설탕 옷이 입혀지면서 집안은 캐러멜 냄새로 가득 찼다. 그리고 배, 사과, 대추, 찐 달걀을 마요네즈에 버무려 속을 만들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식빵에 아삭한 식감이 재밌는 토스트를 예쁜 그릇에 담고, 때에 맞춰 들어온 엄마에게 내밀었다.

앞니가 좋지 않아 어금니로 먹는구나!

뒤늦게 깨닫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배려심 기가 막히네, 자뻑 하면서 엄마 표정을 살피는데 토스트를 집어 들 때마다 속에 있던 배, 사과가 우수수 떨어졌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 것 빼서 먹지 말라며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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