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에세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를 불러 앉혔던 것이다.

by 산들바람

88올림픽, 그때 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우리 집은 전농동 달동네에 있었다. 지방에서 장사한 아빠는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왔다. 애교 때문에 아빠 사랑을 독차지했던 난, 그 이유로 아빠를 많이 찾았다. 아빠가 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엄마가 온 식구 외출준비를 했다. 다 같이 외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가 많은 아빠, 친구들이 가족과 외출하는 것을 보면 샘이 날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느냐고 물으니 외식 간다고 했다. 도시락은 언제나 콩자반이나 시금치를 싸주던 엄마, 소시지나 햄은 꿈꿀 수 없었던 형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매일 해주는 밥과 반찬이 아니라 색다른 것을 먹으러 간다니 하늘을 날 것처럼 신났다. 아빠가 앞서서 걸었고 그 뒤에 엄마와 나와 오빠, 남동생이 따라갔다. 번화가로 나와 드디어 아빠를 따라 들어간 식당은 온통 빠알갰다. 눈이 똥그래지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빨간색. 바로 중국집이었다.


붉은색 식탁 위에 올려진 까만색 짜장면 다섯 그릇. 짜장면 위에 올려진 고명이 달걀 반쪽인지, 아니면 오이나 완두콩이었는지. 짜장면 맛은 어땠는지. 짜장면은 내가 비볐는지. 우리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는 게 없다. 6학년이었던 오빠는 간짜장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십중팔구 짜장면 곱빼기를 먹었을 것이다. 나는 양이 많아 동생에게 덜어주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막내는 입에 짜장 범벅을 했을 것이고 엄마는 우리를 챙기느라 짜장면 먹기가 바빴을 것이다.


짜장 밑에 면발을 집어 올리면 하얀 김이 안경알을 덮는다. 아차차 맘이 급하다지만 맛을 내려면 찬찬히 비벼야 한다. 짜장 냄새가 침샘을 자극하고 마침내 젓가락을 들어 한입 먹으면 진한 짜장과 탱글탱글한 면발이 씹힌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어느 순간 ‘음’ 하게 되면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느 행복했던 순간에 닿은 것 마냥 ‘좋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짜장면 or 짬뽕 앞에서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짜장’을 외쳤던 나. 알고 보니 그날의 짜장면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나를 불러 앉혔던 것이다.


3살 때도 아니고 초등학교 3학년 때인데 외식으로 떠오르는 첫 추억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지나간 순간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이 글은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그때 나는 모든 게 영원할 줄로 알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더듬는 마음 한편이 시리다. 올해로 아빠가 돌아가신 지 햇수로 10년이 되었다. 소문난 맛집 한 번 모시고 가지 않았던 무심했던 딸. 야속하지 않았을까. 두 번 후회하지 않기 위해 저녁마다 혼자 있는 엄마의 밥상을 살펴야겠다. 아빠는 없지만 남은 우리 가족이 마주 앉는 저녁 시간을 조금씩 되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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