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줄 즈음, 회색 도시는 개나리꽃으로 점점이 물들고 있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겨울은 잎샘추위와 꽃샘추위를 불러왔다. 가기 싫다고 입을 삐죽이며 자꾸 몸을 흔들었다. 이 바람에 몹시 추웠다.
옛 명보극장 건물에는 맥도널드가 있었다. 나는 명보극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회사에 다녔다.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때울 때가 많았다. 주변 식당에 비해 빠르고 값싸서였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싶었다.
나를 보고 처음으로 예쁘다고 말해 준 남자. 나도 여자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란 걸 알게 해 준 첫사랑과 헤어졌다. 헤어진 지 일주일 되던 날, 며칠 밤을 꼬박 새웠더니 혓바늘이 돋은 데다 으슬으슬 춥기까지 했다. 일하려면 먹어야 했다. 마음이 허할 땐 든든히 먹어야 한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설렁탕 전문점 제일옥으로 갔다.
제일옥은 점심시간만 되면 늘 사람들로 붐볐다. 서두른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자리를 차지했다. 5분도 되지 않아서 설렁탕이 나왔다. 뚝배기를 어루만지며 언 손을 녹였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반들반들 윤기 나는 쌀밥 반 공기를 탕에 말았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머지 밥을 다 말아서 먹었다. 마지막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니 온몸에서 열이 났다. 살 것 같았다.
1988년, 초등학교 4학년 때이다. 옆집에 살았던 H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까만 눈동자에 짙은 쌍까풀이 꼭 인형 같았다. 그 눈으로 조용히 웃으면 어른들은 어쩜 그렇게 이쁘냐며 한마디씩 꼭 건넸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자면 배알이 꼴렸다. 숱 없는 눈썹에 쭉 찢어진 눈으로 H를 흘겨봤다. 성형수술로 외모의 경쟁력을 갖추던 시절이 아니었다. 열한 살, 내가 H를 이길 수 있는 건 공부,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마을 공터에서 H와 철봉 멀리 뛰기 시합을 했다. 처음엔 상대가 안 되던 H가 아주 멀리 뛰었다. 지기 싫었다. 다음 차례가 된 나는 철봉을 움켜쥐고 앞, 뒤 반동의 힘을 이용해 몸을 움직였다. 붕붕 내 몸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한 번만 더’하는 마음에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다리를 뻗었다. 놓아야 할 때를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철봉에서 손이 미끄러졌다. H가 지르는 날카로운 비명에 이어 내 몸이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몸이 아픈 것보단 자존심이 상했다. 보란 듯이 뛰고 싶었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은 듯 일어나려는데 이상했다. 손목과 손이 따로 놀았다.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가며 보니 오른손이 더 길었다. 오른손이 부러진 것이다. 나는 ‘내가 이제 병신이 됐구나.’ 하는 충격에 그냥 까무러쳤다. 집에 있던 엄마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내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고 입술은 파랗게 질려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기절한 나를 둘러업고 뛰었다. 내리막길을 달리다 넘어져서 무릎에서 철철 피가 났다고 한다.
병원에서 정신이 든 나는 차가운 침대에 누워 울먹거렸다. 무심한 얼굴의 의사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열까지 세어 보라고 말했다. 하나, 둘, 세엣 넷까지 세려는데 스르륵 잠이 들었다. 마취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였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검은 형상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무 무서운데 도망칠 수 없었다. 몸이 꼼짝하지 않아서였다. 두려움에 떨며 눈만 껌뻑였다. 그때 아스라이 말소리가 들렸다.
“정선아, 엄마야.”
부드러운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가 옆에 있어 마음이 놓인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일어나서 보니 팔뚝까지 깁스가 돼 있었다. TV에서나 봤는데 내가 깁스를 하고 있으니 신기했다. 손가락 끝으로 톡톡 쳐보니 “탁탁” 소리가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조심성 없다고 꾸짖는 대신에 내가 좋아하는 옥수수를 사줬다.
소식을 듣고 집에 들어온 아빠는 집에서 애를 어떻게 보는 거냐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서슬 퍼런 기운이 집안을 감돌았다. 엄마는 늘 그랬듯이 아무 말 없이 아빠의 화를 다 받아주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옥수수를 먹으며 재밌다고 TV 만화를 봤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방 한쪽에 밥상이 놓여있었다. 왼손으로 밥상 보를 열었다. 소금, 파, 김치가 있었다. 엄마는 우유 같은 국물에 작은 기름이 떠 있는 국과 흰 쌀밥을 가져왔다. 그리고 뽀얀 국물에 굵은 소금을 타더니 초록색 대파를 넣었다. 처음 보는 음식이라 먹을까 말까 망설였다. 엄마는 숟가락을 쥐여주며 말했다.
“약이다 하고 먹어!”
파가 정말 싫었지만, 느끼한 게 맛이 이상했지만 안 먹을 수가 없었다. 우리집 삼 남매가 고기반찬을 그렇게 좋아해도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구경할 수 없었는데, 이건 더 비싼 거라는 걸 알아서였다. 한동안 사골국을 먹었다. 다른 것도 좀 먹겠다고 투정부리는 나에게 사골국은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파를 건져내기도, 안 먹고 남기기도 했지만 어쩌다 씹힌 파 때문에 사골국이 덜 느끼한 걸 알고는 파를 건져내지 않았다.
첫사랑과 헤어진 후 몸과 마음이 허할 때면 제일옥에 가서 설렁탕을 먹었다. 주로 혼자 갔다. 항아리에서 적당히 익은 무와 그날 담근 겉절이를 먹기 좋게 잘라 놓으면 설렁탕이 나온다. 구수한 맛이 날 때까지 소금 간을 한 다음 씁쓸한 대파를 양껏 넣는다. 밥은 조금씩 말아 천천히 먹는다. 왼손으로 뚝배기를 받쳐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비워내고 나면 ‘후우’ 깊은숨이 절로 나온다. 막혔던 숨통이 트인다. 든든해진 배는 굽은 등을 세워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한다. 서비스로 주는 믹스커피를 한 모금 삼킨다. 세상 모든 게 달달해 보인다.
사는 게 힘들 때면 왜 설렁탕이 먹고 싶었는지 한참 후에 알았다. 마음이 약해져서 몸까지 아픈 날, 영혼이 허기질 때마다 엄마의 사랑이 들어간 사골국이 나를 불러 세웠던 것이다. “약이다 하고 먹어!” 몸이 약으로 기억하는 사골국이 본능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설렁탕이 생각나면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제일옥으로 향했다. 첫사랑과 이별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준 곳이 제일옥이기 때문이었다.
깊은 눈이 매력적인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지. 많은 설렁탕 가게 중에 왜 제일옥인지, 엄마도 첫사랑의 상처가 있는지, 엄마를 기운 나게 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잊을 수 없는 밥상은 언제 받아봤는지, 제일옥에서 설렁탕을 먹으며 얘기 나누고 싶다. 그리고 말해야지!
“빨라서 편한 게 아니라 시간이 걸려도 정성이 들어간 그런 값있는 음식을 엄마의 엄마 대신에 내가 해줄게.”
- 2019년 7월 19일, 산들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