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물건은 잘 쓰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집에 안 쓰는 것들을 꽤나 많이 내다 팔았는데요 횟수로 살펴보니 2020년 3개월간 50건 정도 판매를 했더군요. 먼저 제가 진행하는 대개의 중고 매매는 구매가에 마진을 얹히는 되팔이의 성격이 아니라 좁은 집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함임을 밝힙니다. 다시말해 사이즈 미쓰 등으로 입지 않는 옷가지, 또는 구입했지만 집에 어울리지 않아 쓰지 않는 가구, 또는 선물받았지만 저희 부부의 취향과는 거리가 좀 있는 생활용품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저는 보통 직거래를 선호하는 편 이에요. 사이즈 미스 등으로 있을 반품 절차가 싫은데다가, 제가 살지 않는 동네에 가는 것도 재미있고, 어떤 분이 이 물건을 사용할지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거든요. 최근에 가장 멀리는 삼청동에서 출발해 40여분만에 상도동까지 갔었던 적도 있어요. 이들 중 몇 건의 인상적인 거래가 있어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해 드릴 분은 2만원에 K-ways(까웨라고 읽죠) 패딩 점퍼를 구매하러 오신 분이에요. 자기 사업을 하시는 분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A씨는 영업 종료후 직거래만 된다 하셔서 늦은밤 11시쯤에 만났어요. 가회동 마크 테토씨네 집 근처에서 만났는데 차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BMW X5를 타고 오셨더라고요. 이렇게 밤 늦게, 고작 2만원짜리를 구입하러 여기까지 일부러 약속을 잡으로 오셨다는 것에 좀 놀랐죠. 사실 중고거래 직거래를 하다보면 이런 경우는 종종 있어요. 지난주에 1만원짜리 WMF 식칼을 1만원에 구입하신 아주머니는 렉서스 신형 ES330을 타고 오셨었고, 집 앞에서 3만원짜리 스웨덴 모빌을 구매하신 아가씨는 메르세데스 E220을 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경우들을 종종 보아오면서 중고 거래를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구매력이 낮은 분들이 아니시구나, 하는 추론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TV에서 연예인들이 중고거래를 한다고 하면 별로 믿지 않았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허투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정말로 정말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언택트 가 일상화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연예인 으로 추켜세울 때에 그냥 일반인대 일반인으로 만나서 거래를 하면서 정을 느껴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 사실 요즘 어느 마트를 가도, 쇼핑센터를 가도 그냥 POS에서 바코드를 읽을 뿐 대화라는게 없잖아요. 그래서 이런게 트렌드가 되지는 않겠지만 중고거래를 통해 이런 익숙한 교감, 네고를 통한 재미, 그리고 득템을 통한 희열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중고 플랫폼 스타트업들이 계속 멀티플을 받고, 투자 자금을 확보해 나가는게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직거래가 아니지만요.
그리고 또 한 아가씨는 B양은 어리고 앳된 중학생이었어요. '어떻게 찾아가나요?'하시길래 주소를 찍어드렸더니 세상에 미아삼거리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온대요. 제가 위험하니 그냥 지하철 타시고 안국역에서 내리세요, 했더니 '운동도 할 겸 자전거로 가겠습니다.'하시더라고요. 거래한 상품은 고작 5천원짜리 나이키 트레이닝 드라이핏 티셔츠. 계산해보면 시간당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이 상품의 거래를 위해 B양은 한 시간 가까이 자전거를 타고 정말로 왔습니다. 10분 정도 늦게와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늦어서 죄송합니다'하고 90도 인사를 하는데 만약 주머니에 현금이 있었더라면 B양에게 와락 쥐어주고, '앞으로도 이렇게 목표를 위해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을게요. 조심히 가시면서 맛있는거 사 드세요.' 해주고 싶었지만 현금이 없어서 그냥 에너지바 하나 주었어요. 정말 실로 오랫만에 사람을 통해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노르웨이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이삿짐을 제가 직접 옮겼는데 스무번 가까이 왔다 갔다 하면서 옮겼거든요. 그냥 차 있는 친구에게 한번 도움을 청하면 되는데 그게 싫어서 그냥 서너 시간동안 제가 직접했었는데 그 때가 겹치더라고요. 저는 별거 아니더라고 이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것 부터 하나씩 이뤄나가면서 aim high 하던 젊은 시절의 열정. 아는 것도 실제로 해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죠.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분은 집 앞에서 거래를 하는데 1만원짜리 옷을 거래하면서 1만원 정도 되는 쿠키 세트를 선물해주시는 분 이었습니다. 저를 블로그로 알고 계신 분이라고 소개하셨던 C 아가씨는 저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쥐어 주시면서 '덕분에 아름다운 동네 구경 잘 했습니다' 하면서 되려 감사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만원, 이만원짜리 천원, 이천원 에누리 되느냐고, 택배비 포함해주면 안되느냐고 하는 등으로 소위 네고를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이런 말씀을 들으면 이개 중고 거래하는 나도 이럴진데, 사업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짜증이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돈 아끼고, 싸게 사서 얼마나 부자가 되겠다고 그러는지는 몰라도 이런 마음 하나 하나가 모여서 저같은 소시민들은 또 이 감사의 마음을 다른 방식으로 또 누군가에게 다시 베풀거든요. 만원짜리 쿠키를 사주신 분의 마음이 블로그로 저를 원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냥 친절함과 상냥함에서 온 자비로움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뒤로 저는 중고거래를 할 때에 뭔가 사연이 느껴지는 경우에 작더라고 선물을 동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쓰지 않는 물건은 바로 바로 중고로 팔아 유동화할 예정이에요. 이런 직거래를 통해 나름대로 여러가지 인생의 교훈을 배우고 있거든요. '서당개 10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요? 저는 '중고나라 10년이면 자영업자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 참고로 제가 쓰는 앱은 당근마켓, 중고나라입니다. 종종 블로그 마켓도 하지만 주 채널은 당근마켓이에요. 친추 부탁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