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를 기억할게
브런치에 가끔씩이나마 고양이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건 다름 아닌 나를 위해서였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기에 -
그때그때 우리가 함께 한 순간을 글로나마 사진으로나마
많이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은비도 그렇지만 길에서 만난 아이들은 특히나 그렇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작은 생명이지만
그래도 우연히 길에서 연을 맺은 이 아이들을 통해 난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있다.
고양이뿐만 아니라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 삶을 대하는 자세...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래서 나에게는 참 특별하고 고마운 존재들이다.
토토를 처음 만난 건 2019년 봄이었다.
밤이와 토리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토토도 녀석들과 함께 나타났다.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온 거였을까.
어디서 왔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지만
그날 이후, 녀석에게 토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길냥이답지 않았던 밤이, 토리와는 달리 토토는 경계심이 많고 까칠한 성격이었다.
(토토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손에 상처를 입는 일이 다반사였고,
밥을 줄 때마다 극도로 경계하며 연신 하악질만 하다가 밥그릇을 뒤집어엎기도 했다.
그렇지만 토토는 늘 안쓰러운 존재였다.
심한 구내염을 앓고 있었고, 체구도 작아서 덩치 큰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기 일쑤였다.
괴로운 몸 상태와 고된 길 위의 삶 속에서 토토는 그렇게 살아남아야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토토는 점차 온순해졌다.
공격적인 행동도 잦아들고, 하악질도 하지 않게 됐다.
밥시간이 되면 쪼르르 달려와 자기도 달라며 '야옹야옹' 울어댔다.
토토는 여전히 거리를 두었지만 그래도 난 우리가 전보다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구내염 약을 먹이면서부터는 처음보다 보기 좋게 살도 올라서 토토가 그대로 잘 지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토토는 혹독했던 지난겨울 돌연 모습을 감췄다.
토리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일까. 낯선 뻔돌이가 불편했기 때문일까.
날이 추워질수록 녀석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이대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끝나가도록 토토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7월 중순에 토토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오지 않아서 영영 안 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도 놀라웠지만 더 충격적이었던 건 아이의 몰골이었다.
한눈에 봐도 너무나 말라버린 몸...
입이 또 말썽인 건지 뭘 줘도 편히 먹질 못했지만 -
그래도 한동안은 식욕이 있어서 먹으려고 하는 것들은 다 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토는 점점 기력을 잃어갔고...
8월 말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밥도 잘 못 먹기 시작했다.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어 토토를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던 건 녀석이 그냥 안아도 반항 한 번을 못 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까칠하고 사납게 굴던 녀석이...
병원에서 들은 소견은 참담했다.
토토가 많이 아픈 아이일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토토의 상태는 훨씬 더 좋지 않았다.
추측 나이이긴 하지만 이제 고작 서너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녀석은 가느다란 삶의 끈을 간신히 잡고 있었다.
당장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수액과 주사를 맞혀주는 것뿐.
안절부절하며 그날은 토토를 담요에 감싼 채 한참 동안 안아주었다.
안타깝게도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이틀 후, 토토는 고단했던 길 위의 짧은 삶을 끝내고 먼 길을 떠났다.
전날 한 차례 비가 내리고 하늘이 맑게 갠 날이었다.
토토를 한 번이라도 안아줄 수 있어서,
녀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이었기에 토토를 보내고 그날은 참 많이 울었다.
꼭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구름이 신기해서 그날의 하늘 사진을 찍어보았다.
길 위의 고양이들과 이별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
토토는 이 후유증이 한동안 좀 오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