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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18. 2020

가지, 고추, 깻잎 집들이

비 온 뒤 남은 것

이사 온지는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아직 안방엔 커튼도 안 달았어요. 늦잠꾸러기 일찍 일어나게 아침 햇살이 그냥 들이치는 게 좋다는 핑계로요.

오늘 저녁 아빠와 엄마는 갑자기 집들이를 하자고 하십니다. 집들이를 구실로 저희 집에서 다 같이 한 끼 먹는 거지요 뭐.

부모님은 고모네 밭에서 깻잎과 가지를 따오셨어요. 작은 순이 달린 깻잎이 털이 보송보송하고 너무 예쁩니다. 며칠 무서운 비를 맞았는데도 깻잎은 녹지도 않고 싱싱하네요.

저희 집에는 아침에 삼촌네 밭에서 딴 가지와 방울토마토, 가지가 한아름입니다. 물을 좀 먹었을 텐데도 싱겁지 않아요. 물기가 많아서 오히려 더 싱싱하네요.

아침에 연일 비중에 살피지 못했던 밭에 갔었거든요. 카모마일과 이탈리안 파슬리는 그동안 자취를 감추었어요. 상추 대도 다 넘어지고, 바질은 검게 녹았어요. 내일도 모레도 비가 더 온다고 하니 밭을 치워도 헛수고일 것 같아 그냥 두고 왔습니다.

벌써 채소값은 십몇프로가 올랐다더라 올해 김장 거리 가격 폭등이 걱정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언론에서 들려옵니다. 소셜 미디어 상에 농부님들의 소식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내려앉아요. 기후위기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수준입니다. 내가 누울 곳과, 내 식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생활 방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고기도 덜 먹어야지 합니다.

그렇다면 집들이 메뉴는? 엄마는 치킨을 시켜먹자 하십니다. 장마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저의 실천은 이렇습니다. 집에 가득한 채소로 냉파스타를 만들기로 합니다. 가지는 기름 많이 먹지 말라고 동글게 썰어서 소금 뿌려 물기를 뺍니다. 찬우물 농장에서 받아온 호박이 아직 있어서 썰어서 밑간하고 삼촌 밭의 오이 고추도 듬성듬성 썰고 방울토마토는 반을 갈랐습니다. 깻잎도 굵게 채치고요. 마침 감바스 오일 안 팔리고 남은 것이 많아서(불쌍) 그걸 베이스로 채소를 볶습니다. 시켜먹은 피자에 같이 온 고춧가루를 볶았더니 캅사이신이 들었나 눈이 너무 매워서 부엌 멀리 있는 가족들까지 재채기를 하네요. 미안.

암튼 맛있게 하려고 고추 향 낸 기름에 채소를 볶습니다. 감칠맛 나라고 이모가 고아준 맛간장도 넣어줘요. 스파게티는 삶아서 찬물에 헹굽니다. 그리고 볶은 채소와 깻잎채와 버물버물. 간이 모자라 심영순 선생님의 비법 유자 겨자 간장 소스도 더해줍니다.

이게 무슨 맛이냐?

입맛이 무난한 아빠는 소주 안주로 잘 드시네요. 엄마도 소영이가 식구들 다 재우고 밤에 혼자 오일 파스타 해 먹었나 보네 하시며 몇 젓갈 하시고요. 동생도 갸우뚱하면서 잘 먹어요. 조카는 물에 씻은 스파게티를 잘 먹네요.

우리 가족 요리사는 이렇게 채소를 듬뿍 먹이고 뿌듯해합니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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