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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소영 Aug 07. 2020

집 빵

못 만들어도 만드는 게 너무 좋아

 매주 토요일 밤은 빵을 반죽하는 날입니다.

 저는 제빵사는 아닙니다. 요리 학교에서 빵 수업을 들은 것이 전부이지요. 당시 스페인에서는 집에서 발효종을 키워서 빵 굽는 것이 유행했었습니다. 스페인도 그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빵을 사 먹었었어요. 동네 제빵사들이 직접 자신의 매장에서 굽기보다는 기업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생지를 구워서만 파는 일이 많았지요. 그러다 특이하게도 제빵사가 아닌 이반 야르사(Iban Yarza)라는 언론인을 중심으로 'Foro del Pan(빵 포럼)'이라는 커뮤니티가 생겨나면서, 집에서 빵 해먹기 덕후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의 빵 만드는 노하우와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렇게 삼삼오오 '집 빵'을 해 먹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는 운 좋게도 학교에서 이반 야르사를 초청해서 그분의 빵을 배울 수가 있었어요. 어렵지 않게 빵 맛을 월등히 깊게 하는 천연 발효종을 키워서, 반죽을 하지 않고도 시간으로 빵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제과점의 부드럽고 멋진 빵은 아녀도 향기롭고 구수한 빵을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보았지요. 덕분에 저는 그때부터 무서워하지 않고 저의 빵을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요즘은 찹쌀가루와 쑥을 넣은 한식풍의 치아바타 비슷한 것을 만들고 있습니다. 제가 다 먹지는 않고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도 만들어요.

 햇밀이 나온 요즘은 빵 만드는 재미가 더 있어요. 검은밀, 앉은뱅이밀, 호밀 등 다양한 밀의 향과 성질을 배우고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보는 재미도 있지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빵들을 망쳤나 몰라요. 얼마나 무식한지, 빵을 발효시키는 천을 그대로 오븐에 넣고 구워서 모든 빵들의 아랫면이 떨어져 나간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답니다. 도대체 빵인지 막대기인지 정말 딱딱하고 납작한 빵을 구운 적도 수없어요.

 어느 하루의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주일도 넘게 준비해야 해요. 발효종을 만드는 데는 1주일 정도 걸리고, 매일 밥을 주고 살펴야 하지요. 빵 반죽은 굽기 전날에 하는데, 발효종을 깨워서 밀가루와 물을 넣고 반죽해서 냉장고에 넣어서 천천히 발효해요. 이튿날엔 3~4시간씩 발효하고 모양을 잡아서 드디어 굽습니다. 

 전 행동은 느린데 성격은 급해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오래 기다렸다가 제 때에 재빨리 움직여야 하는 빵 만들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오로지 갓 구운 맛있는 빵을 먹겠다는 욕망이 제 성격도 넘는 것인가 봅니다.

 제 빵은 언제쯤 맛있어질까요? 오늘은 쑥빵 반죽으로 채우장에서 얻은 보나페티의 부추 페스토, 찬우물 농장의 가지, 호박을 올려서 치즈 없이 피자를 만들어봤어요. 부모님은 보통 제 빵을 먹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 이번만은 맛있다고 하시네요. 아이고 이렇게 뿌듯할 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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