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족구왕'이 아니다.
며칠 전 일이다. 설 전날이라 부엌에서는 명절 음식장만을 하고 있었고, 아직까진 그 틈에 껴서 전을 부칠만큼 신남성(?)이 아니었던 나는 하릴없이 뒹굴거리며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친척 형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피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명절에 곧 마주칠 것이고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마땅히 둘러댈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기에,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면단위의 작은 시골마을에 본거지를 둔 나였기에, 몇 년 전부터는 동네 청년회에 가입하라는 주위의 권유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동네에 사는 친척 형이 처음 말을 꺼냈고,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 여겼는지 그 친척 형의 친구인 친형부터 엄마까지 나에게 청년회 가입을 권해 왔다. 그러니까 그 권유가 몇 년을 거쳐 숙성되어, 더 이상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 씨가 안 먹힐 때가 온 것이라는 느낌에 나는 등 떠밀리듯이 청년회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집결지는 동네 면사무소 족구장이었다. 이미 행사는 시작되었는지 반 갈라놓은 드럼통엔 장작이 타고 있었고, 어김없이 소주 몇 병에 단촐한 안주가 놓인 술자리가 펼쳐져 있었다. 청년회의 평균 연령이 내 나이보다 높고, 나는 거의 막내 포지션이라는 것을 익히 듣고 갔기 때문에, 마치 신병교육을 마치고 처음 자대로 배치되는 훈련병과 같은 심정으로 자기소개를 마쳤다. 종이컵에 소주를 반 정도 따라 주길래 허리를 90도로 숙여 받고 두 번에 나눠 마셨다. 그리고 어색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빨간 점퍼를 걸친 형님 한 명이 공을 들고 족구장으로 들어갔다. 아뿔싸, 족구를 하고 있구나. 게임 도중에 내가 온 거구나!
인원이 모자랐는지 주변에서 나에게 족구 경기 참가를 권유했다. 아니지, 권유가 아니라 강요였다. '이러면서 친해지는 거다', '못해도 상관없다'는 말들을 하며 막무가내로 나를 코트로 밀어 넣으려 했다. 지금 이 경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나는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놈이다, 과장된 비유이지만 마치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가, 그네들이 건네는 취향에 맞지 않는 음식을 넙죽 받아 먹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따봉을 해 줘야 하는 상황을 마주했다고 할까.
사실 나는 심각한 몸치다. 한창 '슬램덩크'와 '마지막 승부'가 유행하던 중학생 시절, 말도 안 되는 농구 경기를 몇번 한 이후로는 구기종목에 도전해본 역사가 전무할 정도이니까. 그렇게 체육시간을 그늘에서 보내던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더 이상은 구기종목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맞닥들이게 되었다. 바로 군인 시절, 그것도 이등병이었던 때. 트라우마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족구에 대한 아주 안 좋은 기억을가지게 된 사건이 그때 벌어졌다.
나는 남들보다 군대를 조금 늦게 간 편이다. 거기다 넉살이 좋은 성격도 아니었기에 선임들과도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그런 나를 고참들을 놀려먹기 좋아했고, 최고참인 정병장이 특히 심했었다. 정병장은 기아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었고, 보는 것 만큼이나 몸으로 직접 하는 걸 좋아하며 유독 승부욕이 강한 녀석이었다. 여자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먼저 뜯어보는가 하면, 내가 쓰고 있던 편지도 뺏어서 큰 소리로 내무반에서 낭독할 만큼 돼먹지 못한 놈이기도 했다. 그러니 '정병장님, 저는 운동을 잘 못합니다. 저는 족구경기에서 빠지면 안 되겠습니까?'같은 소리가 씨알이나 먹힐 소리였을까.
그렇게 원치 않는 족구 게임에 참여하게 된 이등병. 내 몸이 이렇게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구나.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날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넘어오는 공을 발로 살짝 받기만 하면 되는데도, 내 발은 무슨 삼각형으로 생겼는지 내 발이 닿은 공은 항상 라인 밖을 벗어났다. 아니, 받기는커녕 내 발에 닿지 않는 상황이 훨씬 많았다. 나는 얼굴이 벌게지고 진땀을 뻘뻘 흘렸다.
나 때문에 자꾸 실점하게 되자, 정병장은 미친 듯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이번 경기에 몇억 대의 판돈이 걸린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차별적으로 인신공격을 해 댔고, 더욱 주눅이 든 나는 평소보다 훨씬 저조한 경기력으로 경기를 망치기 시작했다. 차라리 전투준비태세라도 걸려서 이 경기에서 빠졌으면,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악독한 놈. 그렇게 욕을 해 대면서 나를 경기에서 빼주지도 않았다. 그날의 비참한 기분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의 기억이 더욱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날 경기가 끝난 후 나를 바라보던 정병장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정말이지 한심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깟 족구가 뭐라고, 사람을 그런 눈으로 쳐다봤을까.
그날의 기억으로 인해 족구라면 치가 떨린다, 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아무튼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것이 사실이다. 만약 내 친한 친구들 몇 명과 같이 족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별 거리낌 없이 못하는 족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면 상황의 문제구나. 처음 보는 어려운 사람들 앞에서 못하는 족구경기를 해야 하는 상황.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몸으로 버둥대는 꼴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물론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승부가 걸린 상황에서 한 번 두 번 자꾸 말도 안 되는 미스를 범하게 되고, 그 경기 안의 누구든지 '쟤 뭐야? ' 혹은 '병신같이, 저걸 못 받냐'라고 마음속으로 속삭일 것 같은 생각이 날 더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얼핏 그런 비슷한 눈빛이라도 감지하게 된다면, 아마 나는 몇 날 며칠을 자면서 이불을 걷어차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구구절절 이런 이야기를 처음 보는 이들에게 늘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다. '사실은요, 제가 족구에 트라우마가 있어서요'라는 말은 더욱 그럴 것이다. 별별 일에 트라우마를 갖다 붙이는 유약하고 재수없는 놈으로 찍힐 가능성이 99%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청년회 회장님으로 추정되는 -그 무리에서도 큰 형님뻘인 분들 두 명과 같이-, 모닥불 근처에 앉아 경기 관람을 했다. 경기 중에도 몇 번이나 코트 안에서는 나에게 참가를 권유했고, 나는 억지미소를 지으며 뭐라 뭐라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으며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코트 안에서 족구를 하는 이들이 나를 향해 보내는 불편한 메시지가 마음의 소리로 들리는 듯 했고-쟤는 나이도 어린 놈이 큰형님들하고 나란히 앉아서 뭐하는거지? 라는 식의-, 나는 십여분 정도 앉아 있다가 도망치듯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정말이지 계속 앉아 있다가는 공황장애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할까. 물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이런 어색한 상황에 내던져졌을때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때문에 아무하고나 넉살좋게 어울리는 이들이 많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깟 청년회, 가입하고 싶지도 않고 억지로 나간 건데 앞으로 안 나가면 그만이지. 정말로 나를 괴롭히는 것은 간밤에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소심한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그럴때면, 이불킥까지는 아니지만 나는 쉽게 잠자리에 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