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의 제목 그대로, 나는 모든 면에 있어 소심하다. 그리고 그런 면이 특히 심해지는 장소가 있는데, 그곳은 바로 미용실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을 특히 불편해하는데, 모르는 사람과도 친구처럼 수다를 떠는 것이 디자이너분들의 직업 특성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나와는 상극의 존재들인 것이다. 아! 문득 내가 미용 쪽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내가 미용실을 고르는 기준은 타인과는 약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머리는 특출 나게 못하지만 않으면 된다. 다만 다섯 번 이상의 대화가 단답형으로 끝났는데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자꾸만 말을 걸어오는 디자이너분을 만나면, 나는 다시는 그 미용실로 가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디자이너와 나와의 관계란 참 오묘한 것이다. 자주 만나 봐야 한 달에 한번, 한 시간 정도 만나는 이와는 대체 어느 정도로 마음을 열고 관계를 맺어야만 할까. 물론, 디자이너가 축구광이라 어제 열린 챔피언스리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한 시간이고 같이 떠들어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디자이너와 일대일로 마주하는 한 시간이 정말이지 불편해서 못 견딜 지경이다. 왜냐하면 나는 기본적으로 적응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내 사생활이나 생각을 내비치는 것을 두려움 수준으로 불편해하는 소심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하는 미용실은 '아, 이 손님은 원래 말이 없는 성격이구나'라고 대충 눈치채고,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고 머리만 만져 주는 디자이너가 있는 곳이다. 나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조건에 딱 맞는 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을 알아냈고, 그곳은 대구의 D백화점 11층 코너에 있는 O미용실이다. 특히 KH 선생님이 머리도 잘하고 얼굴도 예쁘시니 대구에 있는 분들에겐 추천 해드린다. 아무튼 그 디자이너 선생님 덕분에, 나는 항상 '전처럼 잘라주세요'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도 미용실을 나올 때면 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라고 해서 미용실에서는 영 말을 안 하고 싶은 건 또 아니다. 특히나 염색이나 펌을 하면 서너 시간이 소요되는데, 주구장창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자면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다. 5년여를 다녔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아 입을 떼고 싶어도, 타이밍을 찾지 못하는 소심함이 내 발목을 잡는다. '어? 쟤 저런 캐릭터 아닌 거 같았는데?'라고 생각할까 두려워 입을 떼지 못하는 소심병 말기 남자가 나인 것이다. 하긴, 나는 머리를 자르다가 머리카락이 얼굴에 묻어 못 견디게 간지러울 때조차 손을 꺼내지 못한다. 내가 손을 꺼내면 디자이너분이 하던 일을 멈추게 되고, '불편한 데 있으세요?'라고 물어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이상하게 내 마음은 불편해진다. 차라리 안면근육을 이용해서 묻은 머리털을 털어내는 편이 피부는 덜 시원할지언정 마음은 편하다.
최근에는 대구 반월당까지 가기가 멀어서 집 근처에 있는 미용실을 새로 뚫었는데, S라는 남자 디자이너 역시 KH 선생님처럼 알아서 잘 해주는 스타일이다. 다만 남자다 보니 손아귀 힘이 세서, 머리를 감겨주며 지압을 해 주는데 거의 고문 수준이다. 나는 '흐으읍..'하는 신음소리를 거의 낼 뻔했지만 디자이너가 당황할까 봐 복부에 힘을 주며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지난번에는 가위질을 하다가 내 귀를 아주 약간 베인 일도 있었다. 생채기 수준이라 피가 살짝 나고 말았지만, 너무 죄송해하는 디자이너분을 보니 내가 오히려 미안해져서 "괜찮습니다"하고 웃으며 나오기도 했다. 사실 나는 작은 생채기 하나만 생겨도 호들갑을 떨면서 엄살을 부리는 성격인데도 말이다.
오늘은 또 어떤 일이 있었던가. 손님이 꽤 밀렸는지 속성으로 컷트를 끝내고 왁스와 포마드로 머리를 만지던 중이었다. 완성된 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드라이기를 이용해 뜨거운 바람으로 고정을 하는데, 두피 너무 가까이 다가왔는지 순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뜨거웠다. 다시 '흐으읍~'하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올 뻔했지만, 워낙 순간이라 어렵지 않게 삼킬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드라이기가 내 머리로 다가왔고, 그곳에서는 마치 추운 겨울날 뚜껑을 연 사발면에서처럼 김이 확 올라오고 있었다. 나나 디자이너나 둘 다 놀라기는 매한가지였다.
" 안 뜨거우셨어요? "
".. 아, 좀 뜨겁네요. "
" 진작 말씀을 하시지.."
그러게 말이다. 그게 뭐라고 이렇게 입을 떼기가 어려울까. 내가 맨 정신에 뼈에 묻은 독을 칼로 긁어내는 수술을 받았던 관우도 아니고 말이다. 근데, 이상하게 나는 미용실에만 가면 관운장이 된다. 관우도 수술을 하던 화타와의 사이가 뻘쭘해서 안 아픈 척하고 수술을 받았던 건 아닐까? 뭐가 어쨌든 간에, 관우도 수줍음이 많았던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아프다고 꺅꺅 소리 지르는 게 너무 쪽팔리고 창피해서 나처럼 복부에 힘을 꾹 주며 참았을 것이다. 에이, 적당히 갖다붙힌 제목에 억지로 연관을 지으려니까 좀 어거지긴 하다.
아무튼, 미용실은 내가 평소보다 몇배는 더 소심해지는 공간이다. 그것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물리적으로도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공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치 세신사 분들에게 알몸을 맡기고 '탁탁' 소리에 몸을 뒤집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는, 대중탕에서의 그것과도 비슷하달까.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그 상황에서도 세신사분들과 잡담을 하시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때를 밀 때는 눈도 뜨지 않고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