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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남자 Mar 09. 2016

그 남자의 감수성

'4월 이야기'를 떠올리다


어느덧 3월도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SNS에서는 전국의 벚꽃 만개시기를 알려주는 게시글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음원사이트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봄의 전령이라 할 수 있는 '벚꽃 엔딩'이 순위권에 재진입했다고 하니, 그래. 바야흐로 봄이다. 


봄날의 저녁은, 공기가 다르다. 


보통 봄은 여자의 계절,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들 한다. 고백하자면, 나는 가을보다 봄이 몇 배는 더 좋다. 봄과 가을의 연평균 기온은 10~15도 정도로 비슷하지만, 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공기의 질감부터 바람의 냄새까지 모두. 나는 가을의 스산함 보다는 봄의 화사함이 더 좋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뜨뜻미지근하지만 습도는 포함되지 않은 청량한 따스함이랄까,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저녁은 내가 일 년 중에 제일 좋아하는 날씨다. 초여름이라 하기엔 약간은 이른 늦은 봄날의 저녁, 노란 톤의 노을이 붉은빛과 적절히 섞여 내려앉는 풍경은 꿈처럼 나를 설레게 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섬유유연제 향기가 은근하게 풍기고, 볕에 잘 말라 바스락 거리는 반팔 티셔츠를 꺼내 입고 근처 강변으로 나간다. 그저 앉아서 있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팔을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지도 후덥지근하지도 않다. 코끝으로 느껴지는 봄 향기 또한 잘 마른 빨래에서 나는 것과 같이 나를 나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충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간은 길지 않다. 기껏해야 1주일 남짓이랄까. 갈수록 봄/가을이 짧아지는 요즘의 기후는 그래서 더욱 아쉽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4월 이야기'


2012년. 버스커버스커가 1집 앨범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대한민국에서 봄을 상징하는 창작물은 (거의) 만장일치로 '벚꽃엔딩'의 차지가 되었다. 물론 나 역시도 봄이 오면 이상하게 그 앨범이 당겨서 찾아 듣곤 하는데, 그것은 마치 가을이 오면 전어를 찾는 심정과도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혹자는 이 노래의 히트로 -'벚꽃 연금'이라 불리며-꽤 많은 저작권료를 벌어들이고 있는 장범준을 향해 내심 시기심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벚꽃엔딩'은 3분가량의 짧은 노래 속에 '봄'의 이미지를 그대로 집어넣은 마법 같은 노래이다. 그것의 효능은 뭐라고 해야 할까, 두통이 일어났을 때 먹는 진통제와도 같다고 할까.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첫 소절인 '그대여~'만 들어도, 머릿속에서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즉각 반응이 일어난다. 지난봄에 보았던 흩날리는 벚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달까. 봄이 오면 '벚꽃엔딩'을 찾게 되는 것은 다들 저러한 이유 때문일 게다. 그러니까, 전 국민의 머릿속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재생할 수 있게 만들어 준 '벚꽃엔딩'의 저작자에게 빌딩 한 채는 전혀 과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껀 아니지만) 줄 수 있다면 몇 채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존재 그 자체로 봄을 상징하는, 니렌노 우즈키(마츠 다카코)


이렇듯 '벚꽃엔딩'은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봄의 전령이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봄의 전령'은 그전에도 이미 존재했었다. 그것은 이와이 슌지의 1998년작 '4월 이야기'이며,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봄 그 자체'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서른이 훌쩍 넘은 남자가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밝히는 것은 뭔가 쑥스러운 일이다. 마치 서랍 속에 숨겨놓았던 헬로키티가 그려진 지갑을 놀러 온 조카가 발견했을 때의 민망함이라고 해야 하나. 


" 어, 이거 뭐지? 삼촌 나 이거 가져도 돼? " 


"... 그거 내 건데.."


" 악! 삼촌이 왜 이런 걸 써? "


뭐 대충 이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이를 먹다 보니 나에게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말하기가 쑥스러워진다. 나는 언제부턴가 멜로 영화를 진지하게 보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때문에 나에게 남아있는 감수성이란, 한창 멜랑콜리하던 10대~20대 초반에 보았던 작품들이 대부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홀로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즈키.


'4월 이야기'를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봄이었다. 지금이야 일본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풍경이 자연스럽지만, 적어도 1998년 이전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나름 영화에 심취해 있던 당시의 나는 용돈을 모아 다달이 영화잡지를 구매했으며, 하이텔이나 나우누리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화 게시판에서도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전설처럼 떠도는 작품이 존재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레터'였다. 나는 영화 게시판 중고장터를 열심히 뒤졌고, 감격스럽게도 '러브레터' 해적판 비디오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러브레터'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마도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영화일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내가 본 모든 영화를 통틀어 제일 좋아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통칭 '이와이 월드'라 일컬어지는 그의 영화를 그때부터 찾아보기 시작했다. 미리 말하자면, 지금처럼 구글에서 간편하게 '러브레터 토렌트'를 검색하면 몇 분 안에 작품을 구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경험한 세대이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아무리 화질이 떨어지더라도 당시 구해서 봤던 복사 테이프의 영상이 나에겐 훨씬 강한 잔상을 남겼다. 간단히 말해서 개고생 해서 손에 넣은 것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는 말이다.



'4월 이야기'는 이야기보다는 이미지가 부각되는 영화이다.


'4월 이야기'는 러닝타임이 60분대로 단편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스왈로우테일'이라는 (당시로서) 대작 영화를 끝낸 후였고, 쉬어가는 느낌으로 이 영화를 찍었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사실 스토리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간 후 '이게 뭐야?'라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에는 특별한 스토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짝사랑하던 선배를 따라 도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된 주인공 니렌노 우즈키(마츠 다카코)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과, 마침내 그 선배를 만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야기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치 CF의 영상같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4월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이 영화가 '봄 그 자체'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의 치밀함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봄' '시작' '설렘'과 같은 단어들이 이미지로 구체화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4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머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보는 영화라고 해야 하나. 서두에 '나에게 남은 마지막 감수성'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 영화를 보고 설렐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나에게 감성이란 게 남아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풍경. 그야말로 봄이다.


짝사랑하던 선배를 따라 성적에도 맞지 않는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고, 결국에는 목표하던 대학에 진학하게 된 우즈키는 이것을 '사랑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4월 이야기'는 배웅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떠나는 우즈키의 모습이 첫 씬을 장식하는데, 영화상의 계절로서도 물론이고 이는 겨울이 지나 봄이 옴을 상징하고 있다. 우즈키의 자취방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의 오던 장면에서는 벚꽃이 눈처럼 휘날린다. 입학식을 마친 우즈키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고, 이웃 주민은 처음엔 경계심이 가득했지만 나중에는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짝사랑하던 선배를 만나게 되고, 선배 역시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해한다. 이 모든 정서가 봄과 같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인 우즈키의 외모 그 자체가 봄이라고 할 수 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긴 생머리를 흩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봄의 여신과도 같다고 할까.


'4월 이야기'의 마츠 다카코는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벽에 걸어두고 싶은 영화'라고 했다. 보고 있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할까. 순정만화에 비유할 수도 있다. 나는 남자가 그린 순정만화와 여자가 그린 순정만화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4월 이야기'는 남자가 그린 순정만화 쪽이다. 비단 이 영화뿐 아니라 '러브레터'나 '쏘아 올린 불꽃, 옆에서 볼까 밑에서 볼까', '하나와 앨리스'같은 이와이 슌지의 영화들은 언뜻 여성 취향의 영화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들이 오히려 남성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영화평론가 하재봉이 이런 말을 했다. (정확하진 않지만)'이와이 슌지라는 감독은, 남자들이 쑥스러워서 말하지 못하는 간지러운 감성들을 잘 표현해내는 사람'이라고. 동감한다. 그의 영화에는 분명 남자들의 판타지가 듬뿍 담겨 있다. 단편적으로 영화 속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예쁜 소녀들만 해도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월이 머지않았다. 매화는 이미 만개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벚꽃도 지천에 피어날 것이다. 남들에게는 티 내지 않지만, 나는 이 시기가 되면 늘 조바심이 난다. 꽃은 너무 일찍 지고 봄도 순식간에 지나가기 때문이다. 봄은 여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 때문에 봄에 대한 환상을 나처럼 숨기고 있는 남자들이 많지 않을까? 분명, 많을 것이다. 다가오는 봄, '4월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며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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