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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드 Nov 11. 2018

부채감에 책을 샀다.

오늘의 소비생활. (feat. 땡스북스)

#땡스북스 에 들러 책 세 권, 엽서 하나를 샀다. 일부러 왔다. 어느 때부터인가 홍대, 합정은 주 생활권과 거리가 너무 멀어 부러 찾지 않으면 잘 올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출판 스타트업인 #북저널리즘 의 팝업스토어가 여기 있다고 해서, 홍대에서 청첩장을 받고 미세먼지와 비가 얹히는 15분 정도를 걸어 땡스북스에 왔다.


나는 #츤도쿠 로 불리는, 책을 '사는 것만' 좋아하고 읽지 않는 사람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다. 책 사는 거 돈 아까워한다. 책 읽는 것만 좋아한다. 진짜 집에 꽂아두고 자주 읽을 책, 한 번 읽었는데 또 읽고 싶은 책들만 산다. 그나마도 이전엔 사지 않았는데 #전자책이라는 신세계를 만나고 나서부터 돈을 좀 쓰기 시작했다. 성격이 급해, 갑자기 읽고 싶은 책을 그때 그 자리에서 사서 읽을 수 있다는 건 꽤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 중 나와 비슷한 이들이 많다. 아주 예전에 어떤 친구와, 서점 가는 사람들은 방문 행위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씻는 거란 얘길 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츤도쿠는 책을 사며 부담감과 부채감을 씻는 것 같다. 쨌든, 그런 부채감이 없는 나는, 소비량 대비 책에 돈을 잘 안 쓴다.


그러나 오늘은 나름의 부채감을 나름의 소비를 통해 털어내는 날. 땡스북스에서 나는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와 #북저널리즘의 <오모테나시, 접객의 비밀>, 그리고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구매했다.


1) 땡스북스

Thank you for being here, ThanksBooks.

서점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출판업계를 응원한다는 사람이 책에는 돈을 안 쓰고 사고 싶은 책이 있어도 인터넷 최저가 + 쿠폰으로만 책을 산다는 부채감이 있다. 땡스북스는 이 업계에서는 그나마 가장 장사가 잘 되는, 핫한 독립서점이지만 여기에서 돈을 쓰는 건 매출에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일조하고 싶은, 부채감을 터는 행위다.





2) 오모테나시, 접객의 비밀

잘해놨다. 팝업스토어!

북저널리즘은 여기저기에 많이 말하고 다녔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또 돈을 많이 쓰는 건 아니다. 돈은, 급한 데 액수를 가리지 않고 먼저 쓰게 되는 법. 이전에 한 번 인스타그램에는 쓴 적이 있었는데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는 내게 '읽으면 좋은' 분류에 속하지 '읽어야만 하는' 분류로 다가오지 않았다.내가 사지 않으면서 남들 사라고 하다니 입만 산 거 같은 부채감이 있었달까.


그리고, Be my B 운영진 1기 사람들이랑 일본을 다녀온 후 각자 한 꼭지씩 맡아서 여행기를 썼었는데, 내 분량에 나는 이 책을 인용했다. 진짜 읽고 썼냐 하면 그건 아니고. 뭔가 레퍼런스가 필요해 책과 논문을 검색하는데 이 책이 걸렸었다. 그러니까 #꽁짜 로, 읽지도 않은 책을 내 글에 들이댄 것. 출처를 밝혔지만 뭔가 양심에 무리 데쓰.




3) 두 도시 이야기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이 책에 대해 아는 건 딱 하나. 아주 유명한 이 책의 첫 문장인 위의 한 줄 뿐이다. 나는 이 문장을 학창 시절 어디에선가 처음 접한 이후로 오래 기억했고, 어느 소개팅에선가 이 문장을 인용하기도 했었다. (아주 그냥 허세가 굉장하죠?)


하지만 읽어본 적은 전혀 없다. 읽을 계획도 변비처럼 묵혀 뒀던 게 소설 류는 잘 안 읽는터라. 그 부채감에 땡스북스에서는 제일 윗 선반에 있는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첫 문장을 넘어 다음 문장도, 그다음 문장도 참 좋았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들 천국으로 향해 가고자 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에 브랜드하는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며 주워 들었던 펭귄북스에 대한 부채감도 추가요.

펭귄북스. 출판하는 사람들은 여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4)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노트도 주신다. 책이랑 엄청 어울린다.

페이스북에서 봤다. 지나가다가 대형 서점들에서도 뒤적거려 보았다.  그때마다 아, 저 책 봐야지 싶었지만 사지 않았다. 여기저기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들에도 얘가 담겨 있는데, 역시 중요도와 급함에 밀려 매번 주문된 책이 되지 못했다. 오늘 처음으로 목차를 찬찬히 읽었고, 86페이지를 펴 “문학으로서의 이소라 - 이소라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를 조금 읽었다. 생각했던 그런 책이었다. 나머지 부분은 더 좋을 거 같았다. 그런데도 오늘 또 미루면, “다음에 사서 읽자” 하고 넘겨버리면, 정말 안 읽겠지 싶었다.


5) 마지막 부채감. 책태기.

나 요즘 아주 책태기다. 책이고 기사고 모든 활자에 권태기인 것 같다. 활자 중독으로 지나가는 간판까지 읽고 기억하는 사람인데 근래 내 일상에 텍스트가 뜸하다. 처음은 아니고,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은 역사가 기니 책과의 관계도 당연히 좋았다 나빴다 한다.


주로 책이랑 사이가 나쁠 때는, “읽어야만 할 책”들을 사놓거나 쌓아뒀는데 부담감이 쩔 때다. 샀고, 돈도 썼고, 중요하고. 읽긴 해야 하는데 읽긴 싫을 때. 그렇다고 다른 걸 읽으면 또 그 책 봐야지 하는 생각이 나니까, 책을 아예 멀리해버리는 거다. 책을 '유희'로 읽는다, 책은 내 '취미'다 자부했던 스스로에게 예의가 아니다. 의무로 책을 보라고 공부로 강제하는 건.


이러저러한 부채감을 털어내는 의미로, 오늘은 여기에서 (난 아직도 땡스북스다! 여기서 글 쓰는 중이다!) 그간 보고 싶었던 책을 당장, 할인쿠폰 같은 거 없이, 이거 사면 내가 다 읽긴 할까의 고민도 없이, 냉큼 사부렀다. 전자책 마냥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보기 시작해버릴 거다.


덧. 나는 책을 보관하는 사람이 아니다. 책장에 책 쌓여 있으면 중고 책방에 팔거나 누구 줘버린다. 오늘 이 글에 등장한 책 세 권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어필해 주시길. 다 읽은 후 조금 더러운 책이라도 상관없으시다면!



오늘 찍은 사진 중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역시 잘하는 북저널리즘. 스티커가 리뉴얼됐다. 노트북에 붙인 스티커는 구형이 되었다.
엽서도 자랑. 자극적인 노랑&빨강 색도 있었는데 이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얘를 골랐다. 두었다가, 소중한 사람에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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