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회사 통보-재검사-수술-비웃음-회복까지.
나이 스물아홉에 치질 수술한 썰 (1) 에 이어.
회사엔 일단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술의 이유는 “비밀”이라고 선언했다. 다행히 우리 회사는 프라이버시를 아주 존중한다. 대표님들은 “프라이버시 존중합니다”라며 잘 받고 오라셨다.
회사에 알리는 건 성공했고, 마음에 남은 딱 하나, '괄약근을 잘라도 되는가' 의사 선생님은 잘라야 한다고 했지만 몇몇 후기에서는 몇 년 지난 지금 굉장히 후회한댔다. 최대한 보존하랬다. 나 스물아홉인데, 앞으로 살날이 창창하다고 가정할 때 더 끔찍한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큰 병원을 가기로 했다. 레이저로 보존 수술을 진행하는 곳이었다. 전화를 걸어 먼저 사정을 이야기했는데 증세가 심각하면 별수 없이 1박 2일 입원 + 척추 마취 + 절개 수술해야 한다고 하셨다.
새 병원을 가기까지 일주일간을 아주 치열하게 보냈다. 삼시세끼 꼬박 지난 번 병원에서 받은 약 먹고, 연고를 아침저녁 투입하고, 좌욕도 하루 두 번씩. 그리고 마침내 토요일.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그 치욕의 검사를 받았다. 아, 검사는 두 번 한다고 적응이 되진 않는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다고 덜 기분 나쁜 것도 아니었다.
검사 결과 나는 레이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날 바로 수술하고 바로 집에 갈 수 있었다. 옷 갈아입으라며 침대를 하나 내어주셨는데 이상하게 조금 신나고 설렜다. (인생에 흔치 않은 입원이라고 신나는 내년 서른쨜)
수술도 정말 간단했다. 괄약근 절개술 후기에서 척수 마취가 부작용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무서웠는데, 레이저 수술의 경우 '반짝이'(이 단어가 궁금하시다면 이전 편 참고)에 직접 주사를 놓는 부분 마취였다. 약간 따끔한 주사 이후엔 레이저로 지져버리기! 뜨거우면 말하라 하셨고 그 부위에는 마취를 추가로 해주셨다. 괜히 땀나고 긴장하긴 했지만 수술 자체는 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체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수술 부위가 잘 보이도록 엉덩이 살을 테이프로 허벅지에 붙이는 수술 준비였을 정도.
친절한 간호 슨생님은 수술 부위를 잘 닦고 거즈를 붙여주셨다. 의사 선생님은 좀 누워있다 회복 후 가라고 하신 거 같지만, 괜히 또 괜찮다고 허세를 떨며 침대를 다 정리하고 나왔다. 근데 수납하려 나오니 또 그게 아니었다. 서있으니 뜨겁고 앉아 있으려니 의자에 그 부분 언저리가 닿는 게 아팠다. 전화로 급히 '엄마 찬스'를 사용했고, 엄마가 차로 데리러 오셨다.
기다리는 동안 병원에서 이것저것 추가 구매를 했다. 수술비까지 총 15만 원 정도를 결제했다. 참고로 1박 2일을 말씀하셨던 처음 병원의 견적은 약 30만 원 정도였다.
“다음 주에는 큰일을 볼 때 힘들 수도 있으니 변을 무르게 해주는 식이섬유를 드셔야 한다.”
“네 주세요.”
“좌욕을 오늘부터 네 번씩, 최소 두세 번은 꼭 해줘야 한다. 좌욕은 집에서 하는 치료다.”
“좌욕기도 주세요.”
후일 찾아보니 좌욕기는 인터넷 가격보다 두 배 정도 비싸게 산 것이었고 식이섬유도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혹여나 이 글을 '수술 후기' 같은 걸로 검색해 보고 계신다면, 더 저렴하게 구입하시길.
아이보리 색의 좌욕기를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이 좌욕기를 보자마자 엄청나게 웃어댔다. 그게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면서.
후, 동생아. 나도 이런 걸 이렇게 일찍부터 쓸 줄 몰랐지.
내가 쓰고 깨끗하게 씻어둘 테니 너도 하련? 이거 멀쩡한 사람들도 꼭 해야 한다더라. 좋은 거래.
“수술 후에 제일 고통이 적은 것이 치열”이라는 나무위키의 말과는 좀 다르게, 나는 좀 아팠다. 어느 방향으로 누워도 불편했고 똑바로 앉을 때는 뭐라고 말할 수 없게 요상꾸리한,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뭣보다도 속옷에 피와 진물(?)이 조금씩 묻어난다는 게 불편했다. 병원에서는 수술 후 2-3주는 거즈를 대고 있으면 괜찮대서 거즈를 산 건데, 가만히 있지 않는 나에게 거즈는 별 소용이 없었다. 피와 진물이 많이 묻은 속옷은 빨기가 어려웠고, 몇 개는 그냥 버렸다. 아끼는 속옷은 입지 마세요. (2주쯤 지나면서 노하우를 발견했는데, 여성분이라면 팬티라이너를 사용하시면 된다. 훨씬 편하고 쾌적함!)
수술 후 18일이 지났다. 뭐 얼마나 지났다고 아침저녁 좌욕, 연고 바르기, 약 복용에 게을러졌다. 즉, 살만 한 것이다. 피나 진물은 이제 거의 없고 식이섬유 때문에 장 운동은 이전보다도 건강하다. 칼이 몸을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아팠던 시간이 이렇게나 기억나지도 않게 까마득해졌다.
이 글을 시작하고 끌고 온 이유는, 인터넷에서 상세한 후기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부작용 난 사람들의 이야기만 너무 가득했다. 나 같은 쫄보는 수술하느니 피흘리며 자연 치유를 기다리겠어! 할 만큼. (응 그거 아냐.)
그러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자. 겁나고 부끄러워 병을 키울 때보다 일단 처리하고 나면 삶의 질이 200배 정도 상승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민망할 일도 아니다. 이런 수술을 받았다고 친한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생각보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놀래지도 않았다. 주변에 이미 이걸로 고생한 사람 한 둘은 있는 것 같았다. 성인 여성의 40~50%는 크고 작은 치질달고 산다니 말 다했지. 그러니 갑시다 병원.
더 궁금하신 점이 있으신 분들은 댓글/메시지 주시기를. 이전 글에서 검색 유입 비율이 최대 였어서 하는 말인데,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그러라고 상세히 쓰려 노력했다. 뭐가 앞에 있는지 상상이 안될 때 가장 무섭고 짜증나는 법이니까, 진단-수술 및 처치-회복 과정이 이 글로 조금이나마 머리에 그림으로 잡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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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괄약근 확장수술(절개술)을 받을지 레이저 수술을 받을지는 고민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여러 병원을 가 보고 괜찮은 의견을 따르면 된다. 이 수치스러운 검사를 또 해야 하다니, 귀찮게 다른 병원을 또 가야 한다니 하는 생각을 한두 번만 물리치시고 치료효과와 재발 위험과 부작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시기를.
덧2 ) 나이 스물아홉에 치질 수술한 썰 (1) 을 읽지 않으신 분들께 드리는 말. 치열은 치질의 한 종류입니다. 반짝이가 찢어져 피가 나는 병입니다. 반짝이란, 이 글에서 항문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