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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드 Sep 03. 2019

첫 러닝을 시작했다.

초보 러너의 10km 도전기 (feat. 나이키 러닝 클럽)

때는 바야흐로 아주 더웠던 8월의 초입.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간 나와 몇몇의 초보는 우르르 마라톤을 신청했다. 대회는 11월 3일, 10km를 뛰어야 한다.

러닝은 정말이지, 초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지만 힘 센 걸 좋아하는 나는 매번 웨이트만 했고 ‘여자들은 런닝 머신 위에서 걷기만 하지’라는 편견이 무색할 정도로 런닝 머신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한참 전에 다쳤던 무릎, 올해 초 크게 다쳤던 허리 등이 좋은 핑계가 됐다.

장비병부터 부려볼까 했지만 것도 쉽지 않았다. 퇴근 후 IFC몰에 두 번이나, 스포츠 매장은 있는 모든 곳을 갔지만 발에 맞는 러닝화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나는 200-220 사이의 신발을 신는데 일부 브랜드에서는 키즈를 안 팔고 여성 사이즈는 220, 230부터 시작하는 데다 키즈 사이즈를 파는 곳에서도 성인 러닝화 같은 기능성을 키즈에는 넣지 않는다고 했다. 10킬로나 뛰어야 하는데 좋은 신발 없이 내 무릎을 혹사하면 안 되지 하며 새로운 핑계를 댔다.

게다가 하고 많은 유산소 중 가장 끌리지 않는 게 러닝이었다. 달리기라니. 도대체 왜 뛰는 거지? 걸으면 파란 하늘이 보이고 요즘 킥고잉에 씽씽에 현대판 근두운이 얼마나 많은데. 강남 한복판에는 거리에서 러닝 하는 (시티 러너라 하더라) 외국인도 정말 많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고로, 공 하나 두고 쫓아다니면서 뛰는 축구도 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왜 저렇게 뛰어야 하는 거야 대체...

이렇게 겁이 나기도 했고 싫기도 했던 터라 이래저래 “9월부터 할 것이다!!!!”하고 미뤄왔는데 생일이 지나고 나니 금방 9월이 와버렸다. 마라톤을 취소하는 건 자존심에 내키지 않았기 때문에 10킬로를 뛰려면 이제 정말 시작해야 했다.

운동복 입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나이키 러닝 클럽> 앱을 깔았다. “러닝 앱”이라고 검색하니 제일 위에 나와서 그 밑에 거랑 이거 두 갤 깔았다. 목동 사교육 키즈 출신의 10학번 나이 최보금은 학원이나 코치처럼 초반에 누군가 가이드를 주는 것을 선호한다. 시행착오의 시간과 노력을 줄여야 빠르게 몰입할 수 있다.

집 코 앞이 공원이라 두 개의 앱을 모두 탐색할 시간은 없었다. 횡단보도 빨간 불 바뀌길 기다리면서 빠르게 나이키 앱을 훑었고 ‘러닝 가이드’ 탭에서 FIRST RUN 콘텐츠를 발견해 바로 재생했다. 이윽고 목소리가 낭랑한 아이린 코치님이 나타나, “지금 달리고 있죠? 그렇다고 믿을게요.”라고 했다. 머리 묶고 있었는데 들켰다. 뛰기 시작했다.

전혀 힘들지 않게, 가볍게,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만 뛰라고 하시길래 진짜로 천천히 뛰었다. 방금 밥을 먹고 나와서 속이 무거운 것도 한몫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뛰기 싫어서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에 드라마를 틀어 놓고 원래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먹었다. 인간은 멍청하다지만 어쩜 이렇게 한 치 앞을 무시하는 선택을 하는지.

사람들은 내 옆을 슉슉 지나갔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볍게 뛰는 게 첫 러닝이라고 하셨는데 진심으로 ‘이래도 되나?’ 싶었다. 경보하는 사람보다 나는 느렸고 강아지들보다 당연히 훨씬 느렸다. 흙바닥에 머리카락 양 옆으로 움직이는 내 그림자를 보면 뛰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땅바닥에서 발이 높게 떨어지지 않았다.

코치님의 목소리는 2-3분 간격으로 나타났고, 그 사이에서는 느린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비트 자체가 쿵짝쿵짝하지 않아서 더욱 천천히 뛸 수 있었다. 코치님은 물었다. “오늘 달리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마음속으로 “9월이 시작됐으니까요...!?”라고 대답하는데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이윽고 달리는 자체가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숨이 차고 몸이 무겁고 힘들었는데, 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가 마치 원래 상태였던 것처럼, 달리는 상태가 관성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빨리 달리는 사람이 아주 오래 달리고 나서야 “기분이 좋고 달리는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상태가 되는 줄 알았었는데.

벌써 ‘하프타임’이 되었다. 10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게 놀라웠다. 러닝머신 위에서 5분을 뛰는 게 힘들었는데. 배경음악의 비트와 무드는 몇 분 간격으로 바뀌었다. 그새 내 발은 지면에서 조금 더 높아졌다는 게 느껴졌다. 흙바닥의 말총머리 양옆으로 오가는 그림자도 각이 조금은 더 커진 게 보였다.

“몸이 아프고 힘들면 안 된다.”
“러닝을 할 땐 기분이 좋아야 한다.”

코치님은 내 편견을 깨는 말을 계속했다. 걷는 사람들이 나를 제치고 지나가서 여전히 조금 민망했지만 전문가가 페이스를 늦추는 게 똑똑한 거라고 귀에 대고 계속 얘기해 주시는 게 용기가 됐다. 내가 자극을 잘 받는 편이긴 하지만, 이.. 뭐랄까.. 미국식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북돋아주는 코칭 스타일은 정말 정말 마음에 들었다. 고작 십몇 분을 달리고 있을 뿐인데 최고의 ‘러너’가 된 것 같은 뿌듯함이 계속 올라왔다.

‘러너’라는 정체성 부여 역시 도움이 됐다. 글의 도입부에 썼듯 나는 본 러닝을 위해 “연습”하고 있는 “초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는데 나이키 러닝 클럽과 아이린 코치님은 벌써부터 나를 ‘러너’라고 호칭하고 있었다. 러닝 초보, 러닝 연습생이라고 생각했을 때보다 ‘러너’로 불렸을 때 내가 더 몰입하고 집중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20분의 러닝이 끝날 즈음 비트가 빨라졌다. 코치님 톤도 높아졌다. 강한 모습을 보여달래서 나도 피치를 높였다.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끝! 땀은 많이 흘리지 않았고 다리는 살짝 저린 정도였다. 이 정도 러닝이라면 두 세트는 더 반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장 몇 시간 후인 내일 아침에 다시 나와하고 싶었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코치님은 에어팟에서 계속 “이 러닝의 목적은, 러닝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여러분은 해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셨고 나 역시 뿌듯함이 코끝까지 차올랐다. 자랑하고 싶다!!!!!!!! 는 마음과 함께.

겨우 20분 러닝하고 글을 지금 40분을 썼다. 기록을 남기고 싶을 만큼 강렬하고 즐거운 기억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자극을 쉽게 받는 타입이고 새로 시작하는 모든 것들에 빨리 빠지는 사람인 것을 유의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은, 그리고 나이키 러닝 클럽은 나의 첫 러닝을 아주 산뜻하게 만들어 줬다.

이렇게 두 달 뛰면 10킬로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 단기 목표는 11월 8일 마라톤 대회에서 중간에 집 되돌아가지 않기, 장기 목표는 취미 러너 되기다. 내일은 <NEXT RUN>을 재생할 거다.

자, 완전 초보 ‘러너’의 데일리 러닝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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