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팀장 Nov 12. 2022

파워포인트도 모르는데 기획자가 되었다

13년차 기획자의 프롤로그


입사가 확정되었습니다.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실까요?


연봉이나 처우조건 등에 대해 안내가 있었으나 잘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렇게 얼떨떨한 전화통화가 끝나고 IT기업의 기획자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사실 기획이 뭔지도 잘 몰랐다. 콘텐츠기획 업무라고만 알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짧게 정리하고 싶다. 인문대학은 갔지만 학문에 큰 뜻이 없었고, 군대가기 전에는 놀기에 바빴다. 제대 후에 우연히 시작된 호프집 아르바이트 생활에 젖어 3~4년은 밤생활을 하면서 ‘동네 형님’들과 함께 술집을 차리는 것이 젊은 날의 목표였다. 물론 그 길 역시 녹녹치는 않았고 다른 길을 찾던 중, 친척들이 있던 미국으로 이민을 결심했다.


미국에서는 흑인들에게 주얼리를 파는 일부터 세탁소, 네일 가게, 식당 서빙 등 이른바 ‘이민 1세대’들이 주로 하는 일터에서 주6일 12시간씩 일했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열리지 않았고 평생 이 곳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서른이 훌쩍 넘어 있었고 친구들은 과장이니 뭐니 다들 타이틀을 달아가고 있을 때 필자는 제대로 된 직장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친구가 점장으로 있던 삼성역 패밀리 레스토랑에 막내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1인 기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사장님이 유통업을 하고 있었지만 스마트폰 초기 시절이었던 당시에 본인도 앱을 만들어 성공해보겠다는 열망을 가지게 있었다. 필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물건 납품이나 배송처리를 하면서 짬짬이 App기획회의에 참여하여 아이디어를 냈다. 외주용역을 줘서 만든 앱이 앱스토어에 등록이 되자 신기한 마음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featured app(지금의 Today와 유사한 것으로 App store에서 눈에 띄는 앱을 선정하여 별도 탭에 베너형태로 띄워주는 식이었다.)에 선정되었다. 이게 필자의 인생의 여러 전환점 중 하나였다. 아직도 호주 Appstore 관리자의 연락을 받고 기뻐했던 순간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그렇게 작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필자는 ‘형님’들과 어울려 장사를 하기에는 너무 샌님이었고,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남기에는 너무 게을렀다. 그 흔한 토익점수도 없던 무스펙 소유자였던 필자가 어쩌면 공상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의 세계에 적합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 하나로 여기저기 지원을 하다가 드디어 한 회사에서 합격 통지를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부분은 영어회화 정도이기는 했으나 이것도 사실 생존을 위한 영어여서 소위 Broken English였다.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엑셀을 만지기는 했지만 일자별 출고량 정도 기재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13년 넘게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일을 해오고 있고 필자가 참여하여 개발한 4개 제품은 CES에서 기술혁신상을 받아왔으며, 현재 인공지능 스타트업에서 기획파트를 리딩하고 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 정도만 하는 것이 좋겠다.


브런치를 통해 이러한 노하우를 나눠볼까 한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필자가 쌓아왔던 노하우들은 모두 실전을 통해 쌓아온 노하우라는 것이고, 이것만 잘 마스터한다면 비단 기획업무가 아니라 할 지라도 대부분의 사무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한다고 믿는다. 필자의 글이 직장을 구하고 있는 취준생이나 입사초반의 'Newbie'이신 부분들에게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