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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Nov 13. 2016

Sorry, don't be sorry

영국 워킹홀리데이 #5 일 초창기의 정신적 압박

일을 시작했다.


글을 적는 지금은 가끔 내가 신입들을 가르치기도 할 만큼 꽤 능숙하게 일을 해낸다.

하지만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매일 가게 앞에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문을 밀고 들어갈 정도로,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배울 게 무궁무진했다. 매일매일이 새로웠고 적응해야 할 것들의 연속이었다.



가게 매니저인 Emma는 초반에 나를 교육시켜주느라 아침 일찍부터 가게에 나와야 했다. 그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일 하는 틈틈이 나에게 뭐든 알려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우리 가게에는 E-Learning 시스템이 있다. 꽤나 큰 회사에 소속된 펍인 우리 가게는, 고용된 사람 모두 가게에 대한 지식, 법 관련 지식, 서비스 교육, 화재 교육, 음식 위생 안전 교육 등 일에 관련된 모든 것을 인터넷 강의로 듣고 시험을 쳐서 패스해야 하는 절차가 있다. 엠마는 내가 E-Learnging 한 코스를 끝낼 때마다 내가 잘 알고 있는지 나에게 와서 체크를 해야 했다. 혹시라도 내가 강의를 들었는데도 모르는 게 생기면 다시 설명해주는 것도 엠마의 몫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자주 시키는 맥주 종류는 처음부터 나도 손님들께 헷갈리지 않고 잘 드릴 수 있었지만, 혹시라도 손님들이 위스키, 럼, 보드카 종류를 시키기라도 하면 나는 금세 우왕좌왕하며 다른 멤버들에게 꼭 '이게 뭐냐'고 물어봐야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칵테일 바에서 알바를 해봤다지만 그것도 고작 몇 달이었고, 술 종류도 지금 가게와 비교하면 현저히 적었다. 단 몇 시간 동안 들은 엠마의 설명은 일에 관련된 것이지 '술 종류'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E-Learning도 마찬가지. 이 두 가지 교육 만으로는 지금 내가 일하는 펍에서 취급하는 수많은 맥주와 양주 종류를 바로 섭렵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또다시 반복하는 말이지만, 많은 술 종류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일단 손님이 원하는 술을 파악하면, 그걸 올바른 방식대로 따라 주어야 했다. 예를 들어 위스키는 샷 잔에 나가지 않고 보통 언더락 잔에, 뜨겁지 않은 잔에(그렇지 않으면 위스키 맛이 상한다), 기호에 따라 얼음이 필요한지 아닌지 물어보고 줘야 한다. 이 모든 걸 알리가 없었던 나는 위스키를 작은 샷잔에 따르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 큰 잔에 따르기도 해서 손님들이 어처구니없어하며 웃는 모습을 여러 번 봐야 했다.


술 종류나 잔으로 끝나는 문제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한번 쓰는 표현이지만, 이것들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우리 가게는 가스트로 펍이다. 대충 식사로 때울 수 있는 버거, 치킨, 윙 같은 것들도 안주로 팔고 있다. 나는 술 보다 음식을 시키는 손님들이 더 어려웠다. 음식을 시키시는 손님들은 '이 음식이 어떤가'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는 한다. 일 한지 얼마 되지도 않고, 우리 가게 음식을 다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곤란 그 자체였고, 혹시나 바쁜 시간에 손님들이 그런 걸 물어보면 다른 손님들 주문을 받고 있는 멤버들을 붙잡고 또다시 물어봐야 했다. 또, 손님들이 음식을 시키면 '어디에 앉아 있나'를 여쭤봐야 하는데, 테이블 번호를 틸에 입력해 놨지만 가끔 손님들은 말도 없이 자리를 옮기고는 한다. 그럼 나는 그 손님들을 찾아 헤매가며 음식을 드려야 하고, 그 과정이 싫었다. 술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으니까.


틸에서 손님이 주문한 술과 음식을 찾는 것도 마찬가지. 말했다시피 우리 가게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맥주와, 병맥주, 양주 종류, 음식, 심지어 커피까지 있다. 보통 펍 보다 규모가 크고, 선택지가 많은 편이다. 그리고 어느 계산대가 그렇듯, 우리 가게도 손님이 뭔가를 주문하면 그 아이템을 틸에서 찾아 클릭해야 가격이 뜨고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이다. 손님들이 생소한 뭔가를 시킬 때마다 나는 어딘가에 숨어있을 그 아이템을 찾아 틸을 뒤져야 했다.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손님들에게 '일한 지 얼마 안돼서요, 죄송해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또 멤버들을 불러 물어봐야 했다.


이 모든 것들 중 가장 자괴감이 들곤 했던 것은 가끔 손님들의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였다. 우리 가게는 관광지 한가운데 있지만, 주변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하고 한 잔씩 하는 손님이 많아 대부분 관광객보다는 로컬 손님이 대부분이다. 미국식 영어에만 길들여져 있던 나는 생소한 영국 발음에 적응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또 영국 발음도 내가 흔히 알던 한 가지 악센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사는 영국, 그 다문화의 한 중심에 있는 런던인 만큼, 모든 손님들이 각기 다른 악센트를 구사했다. 모든 손님들이 각양각색의 악센트로, 수많은 술 이름을 말해대니, 나는 꼭 한 번씩 되물어서 확실히 주문 내용을 확인해 봐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저지르는 일이 파다했다.

 


이 모든 게 싫었던 이유는 내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박히게 듣고 자랐다. 그래서 처음에 다른 멤버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옭아맸다. 내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다른 멤버들의 일만 늘리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오래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머리로는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미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성격 탓이었다. 그래서 첫 2주 동안은 'Sorry'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같이 일 하는 멤버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그리고 내가 일에 능숙해지고, 어디든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까지 이런 불편한 감정이 지속될 거라는 건 나 스스로가 너무 잘 알았다.





Don't be sorry


일을 시작하고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Sorry'라면,  동시에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Don't be sorry'가 아니었을까.



손님들께 늦어서 미안해요,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아요, 미안해하지 말아요'라고 답해줬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내가 일에 서툴었던 몇 주 동안, 나는 나에게 짜증을 내거나 독촉하는 손님들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 내가 술을 찾아낼 때까지, 혹은 틸에 그걸 입력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었고, 내가 위스키를 찾지 못하면 손가락으로 집어 가며 어떤 거라고 알려 주는 손님도, 심지어는 칵테일을 어떻게 만드는지 설명해주시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손님들도 그렇지만 같이 일하는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바쁜 와중에 싱크대 위에서 잔을 깨뜨려 가게를 더 정신없이 만들었던 적이 있다. 본능처럼 미안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네가 안 다친 게 중요하지, 손 좀 보자'며 날 바 뒤로 끌고 가 손을 체크해주던 Kam.


내가 처음 바 마감을 하던 날, 아무것도 모르는 나와 함께 마감을 한 탓에 혼자 넓은 바를 다 치우고, 정리하며 동시에 나에게 설명해주어야 했던 AK.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는데 그런 에이케이를 불러 세워 '네가 오늘 일을 거의 다했네, 미안하고 고마워.'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러자 눈을 내리깔고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나를 꼭 안아주며 '너도 수고했어 Jo' 해주던 에이케이. 에이케이는 내 성격을 금세 파악하고는 이때부터 항상 날 챙겨줬고, 지금도 날 신경 써주는 멤버 중 하나다.


바 스낵으로 감자칩을 산 손님에게 실수로 그걸 제외하고 계산해드린 적 있다. 그때 도움을 청하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날 쳐다보며 '네 잘못이 아니야, 저 손님이 멍청한 탓이지' 하고 웃던 Lukas. 기네스는 3분의 2를 채우고, 맥주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나머지를 따라야 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건망증이 심한 나는 기네스를 3분의 2만 따라 놓고 완성하는 걸 아직까지도 종종 까먹는데, 그럴 때마다 그걸 완성해주는 건 아직까지도 루카스다.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하면 '뭘 미안해, 너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거 다 알아.'라고 하던 루카스. 이제는 내게 '너 치매 걸린다 조심해라??????'고 장난스럽게 뭐라고 하지만, 언제나 내가 미안해할 때마다 '네가 왜 미안해하냐'며 오히려 그러지 말 것을 당부하고 또 당부해주는 고마운 멤버.


처음 2주 간 나에게 가장 많은 걸 알려줬던 Dom. 돔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마다 그는 웃으면서 'Anytime, Jo!' 하고는 했다. 아마 엠마와 더불어 나에게 펍 일에 관한  가장 많이 설명해 준 게 돔이다. 돔은 여기서 일한 지 2년도 넘은 터라, 거의 펍 일 전반을 관리한다. 그래서 내가 실수를 하거나 사고를 칠 때마다 그걸 다 해결하고 다닌 것도 돔이었다. '미안해하지 마'를 가장 많이 해준 것도 그래서 돔이 아닐까.




반복되는 '미안하다'는 말은 사람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반복되는 질문과 실수, 뻔뻔해지지 못하고 스스로가 끝없이 만들어내는 미안함.

내 성격의 못난 점이다.


하지만 이 못남을 보듬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안해서 작아지는 나를 잡고 날 위로 다시 끄집어 올려 주는 손길들이 있었다.

'괜찮아', '미안해하지 마'라는 말에 담겨 있는 온기를 느끼게 해주던 사람들.

포옹만큼이나 따뜻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눈길과 웃음들.

'내가 미안해하지 말랬지!'하고 눈 크게 뜨고 웃으며 쳐다보는 이들 덕에 나는 이제 'Sorry' 보다는 'Thank you'를 많이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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