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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쑤 Nov 26. 2016

아시아 여자애가 바에서 일하는 거 처음 봐

영국 워킹홀리데이 #6 생활하며 느끼는 '다름'

  

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다른 애들보다 ‘어디서 왔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          


굳이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우리 가게의 스태프들을 나누자면 난 가게에서 단 한 명뿐인 아시아인이고, 황인종이다. 호주에서 온 리카르도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유럽 출신이었다. 이들과 별 위화감 없이 어울려 지내다가도, 가끔씩 ‘내가 조금 다르게 보이는구나’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일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은 자주 오셔서 레드 와인만 시켜 드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새로 들어왔냐’고 운을 띄우시더니 ‘아시아 여자애가 바에서 일하는 거 처음 본다’고 말을 하셨다. 그 뒤로도 내가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면 ‘용기 있다’, ‘네가 가게의 마스코트 같다’는 둥 열심히 칭찬을 해주시려 노력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저건 칭찬을 가장한 실례였다. 나는 아직도 왜 다른 여자 바 스태프들과는 다르게 바에 ‘나에게만’ 바에서 일하는 게 용기 있는 일이 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Where are you from?’은 나에게 최소한 흥미를 가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전혀 기분 나쁜 질문이 아니다. 이 질문이 아니더라도 몇몇 무지로 비롯한 실례가 될 수 있는 말들에도 나는 남들보다 별로 기분 상해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래서 다짜고짜 나에게 ’니하오‘, ’곤니찌와‘, 그리고 ’사와디캅‘까지 던지는 손님들에게도 그냥 웃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안녕이라고 해!‘하고 웃으며 넘기는 편이다.      



때로는 ’Are you from Japan?’이라고 대뜸 물어보는 손님들도 있다. ‘Korea'라고 답하면 그제야 실례였냐며 미안하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기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이 나쁜 의도를 갖고 그랬다기보다는, 그게 좀 더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자 하는 일종의 시도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도를 넘은 무지와, 그 무지에 전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일본에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이라 답했더니, ’So, you are from Japan. Same.'이라고 답하던 할머니, ‘남한은 북한을 안 도와주고 뭐 하는 거야?’라고 진지하게 나에게 설교를 하던 할아버지. 이 둘을 만났을 때는 도저히 말이 안 통해서 더 반박할 힘이 없었다. 할머니는 자신에게 아시아 사람들이 다 똑같이 보인다고 해서 다 똑같은 나라에서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경우에는 자신이 타국에서 보고 들은 뉴스의 내용이 전부일 거라 생각한 체 자신이 나보다 북한에 대해 더 많이 알 거라고 자신만만해하셨다. 나는 누가 피부가 하얗다고 해서 이 할머니처럼 ‘미국에서 왔냐’고 대뜸 물어보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나는 북한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이런 타국의 민감한 사안에 대해, 그 나라 사람들에게 함부로 옳다 그르다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나를 다르게, 혹은 특별하게 보는 시각이 위에 언급한 것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나는 종종 ‘나만 듣기 좋은’ 칭찬을 듣는다.


일을 하다 보면 가끔 아시아인들의 국적을 외모만 보고 구분할 줄 아는 외국인들도 만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대충 다른 아시아인들을 보면 일본인인 것 같다, 중국인인 것 같다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한 번은 어떤 남자분이 나에게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한국인이라고 답한 뒤, 왜 그 두 나라만 꼭 집어서 물어봤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중국인이나 다른 아시아인들은 패션 감각이 최악이거든.’이라고 대답했다. 혹자는 한국에 대해 나쁜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저 대답은 나 역시도 이들 눈에 이들의 방식대로 재단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나의 말투와, 옷, 더 섬세하게는 메이크업까지 ‘한국식’이라고 말하며 ‘한국이 아시아 나라들 중에서는 가장 아시아인답지 않게 하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자기가 칭찬을 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은 예사로, 종종 나에게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 시끄럽다, 예의가 없다 등등 갖가지 불평을 늘어놓는 손님들도 있다.      


이런 종류의 칭찬은 심지어 내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나는 같이 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예쁘다’는 말을 수 없이 들었다. 내 자랑이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는 이렇게 잦은 외모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다. 단순한 외모 칭찬인 만큼 단순히 기분 좋아하면 그만일 수도 있는 문제를 내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까 싶었는데, 몇 주가 지나고 친구들과 친해지자 역시 이게 평소에 이들이 아시아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 친구는 술을 먹고 나에게 ‘보통 아시아 애들은 눈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게 생겨서 생김새를 구분하기 힘든데 너는 안 그래서 놀랐어.’라고 말하며 ‘예쁘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른 친구도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예쁘다고 생각한 아시아인은 거의 처음이야!’라고 웃어젖혔다.      



언어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내가 만났던 외국인들은 아시아인의 영어 실력에 대한 기대치가 굉장히 낮았다. 난 스스로 내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그렇기도 하다. 좀 더 자연스럽게, 막힘없이,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내가 영어 하는 걸 들으면 ‘영어 어디서 배웠어, 엄청 잘한다!’고 칭찬을 해준다. 처음에는 마냥 기분 좋기만 했던 칭찬이지만, 이제는 이 칭찬들이 이들의 ‘아시아인들은 우리와 굉장히 다른 언어를 쓰니까, 영어 배우기가 힘들 거야.’, 혹은 ‘내가 만났던 아시아인들은 영어를 못했는데, 얘는 조금 더 낫구나.’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 정말로 이들 기준에 내가 ‘어메이징한 영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낮은 기대치 덕분에 칭찬을 듣는 셈이다. 사실 이런 칭찬은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영어를 쓰는 입장에서 바라봐준다는 점에서 썩 나쁘지는 않고, 어떻게 보면 고맙기도 하다. 내가 당한 건 아니지만 때때로 부족한 영어 실력이나 악센트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놀리는 영어 네이티브들도 많이 봤다. 이런 칭찬을 해주는 사람들은 최소한 내 얘기를 인내심 있게, 귀 담아 들어준다.      



하지만 어찌 됐건, 다민족, 다문화의 결정체인 이 런던에서도, 가끔 나는 남들보다 조금 다르다고 느낄 때가 있다는 것. 때로는 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내 사진을 볼 때 느껴지는 외적인 다름보다, 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다름’이 훨씬 더 피부로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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